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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재덕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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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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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8-01-25 2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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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2
244.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2 (수필)
운중 김재덕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나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군 복무 10개월 만에 의가사제대로 전역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여의고 덩그러니 남겨진 빈집만 평생을 함께했던 주인을 잃어버린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농작물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두 분은 계시지 않았다. 농사에는 젬병인 내 앞에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로 쌓였다. 전답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곡식의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당연한 순서로 농사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허무한 가슴을 술로, 달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게 수전증이 찾아왔다.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는 식사도 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것을 핑계 삼아 밥 대신 술로서 세월을 보내는 나날이었다.
읍내에서 술을 마시고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집마다 환히 불을 밝히고 가족의 훈김을 품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더더욱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집이 마주 바라다보이는 어귀쯤에 있는 바위에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훔치며 두 분이 계실 때의 온기를 그렸다. 혼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무섬증과 함께 싸하게 끼쳐오는 섬뜩함이 자꾸만 바깥으로 내몰았다.
어느 겨울,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던 그 날도 읍내에서 술을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새운난" 허허벌판을 걷는데, 마침 탈곡하고 길가에 남겨 놓은 지푸라기 더미가 나를 끌어당겼다. 눈을 걷어낸 나는 몸을 뉘었다. 포근하게 와닿는 감촉이 나를 위로했다. 내리는 눈이 얼굴의 열기를 식혀주는 평온함을 즐기며 미처 의식할 틈도 없이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동네 형에게 발견된 나는 의식을 잃고 거의 동태가 되어 있었다. 깜짝 놀란 형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형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모질고도 질긴 것이 인간의 목숨이었다. 그 형이 아니었더라면 나 또한 부모님의 곁에 잠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네 생명의 은인'이라 하신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나날을 보내는 내게 천사의 손길이 따스하게 뻗쳐 왔다. 그 천사는 다름 아닌 윗집 동생이었다.
해가 지면 우리 집에 불을 켜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기를 돌게 했다. 그리고는 내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몇 번을 삼켰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수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그 동생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항상 그립고 고마운 사람 중의 한 명으로 내 가슴에 자리 잡은 동생이다.
끼니를 거른 체 술로만 수개월을 보냈던 나의 몸은 파리하게 야위어 가며 폐인의 지경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친구의 어머니께서 밥상을 들고 집으로 오신 것이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이런 네 모습을 지켜보시며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냐. 이젠 정신을 차려라.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모든 것 잊고 머리가 있으니 차라리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냐? 네 동생은 농사일할 줄 아니 차라리 서울에서 내려오라 해라." 시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셨다. 호된 질책을 하시는 친구 어머니의 지청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내게 비친 나의 모습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초라한 내가 서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경주에 사는 누나와 의논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많이 힘들지? 그래, 좋은 생각이다. 여기 와서 학교에 다니면서 너의 앞날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며 흔쾌히 응해줬다. 동생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동생을 설득하였다.
"이 시간 이후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은 다 네 것이다. 형은 공부해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보련다. 넌 나보다 어리고 혼자 있다 보면 형처럼 될지 몰라 안심이 되지 않는구나. 사귀는 여자 친구 있으면 일찌감치 결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너라."
이 말을 들은 동생은 정말 19살에 사귀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 것이다. 동생과 제수씨를 남겨두고, 굳은 결심을 다진 나는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며칠을 친구 집에 머물며 이것저것 준비를 한 나는 경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몇 년 동안 책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삶이 또 다른 나의 길을 방해하고 달려들 거란 것을 몸소 체험하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느끼며 회한에 젖어 후회를 곱씹는 시간이었다. 도서관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십 분을 버티지 못하고 놀이터에 앉아 하늘만 쳐다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하지만, 이래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이왕 하는 것 제대로 부딪혀 보자'는 결심을 다졌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코피가 터져 책과 노트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공부에 매진한 결과, 합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뿌듯한 가슴을 안고 부모님의 산소 앞에 엎드린 나는 수없이 많은 감사를 눈물과 함께 드렸다.
'아버지, 어머니 보살펴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며 시작한 캠퍼스 생활이 내게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실의에 빠져 내 인생을 포기했다면 아마 부모님을 따랐을 것이고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방황했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암울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한다.
지금 여기 이렇게 떳떳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한다면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는 삶의 지혜를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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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만
`김재덕`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재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