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7-06-1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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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
토끼와 거북 / 임정수

토끼가 길을 가다가 거북을 만났다.
"그렇게 느려서 어느 세월에 가니?"
"괜찮여, 까이거 천천히 가다보면 언젠간 도착하겠지 뭐."
"그럼, 천천히 오라구, 나 먼저 갈께."
"응"
토끼는 순식 간에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가서 거북이가 오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쯧쯧..느려터지긴...아함~ 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숨 자고 가야겠다. "
그리곤 눕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 보니 거북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 듯 했다.
무얼 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거북에게로 뛰어 갔다.
"에게...아직도 요만큼 밖에 못 왔어?"
"응, 물 속에선 빠른데 육지에선 잘 걷질 못하잖아."
"니가 물 속에서 빠르다고? 겨우 요만큼 밖에 걷지도 못하는데...솔직히 믿기지가 않는데..."
"정말이야. 참, 넌 물 속 구경도 못해봤지?"
"나도 물 속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응, 용왕님께서 허락하시면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가 있어."
"뭐? 그 거짓말 참말이야?"
"치..속고만 살았나. 절대로 거짓말 아냐, 못 믿겠으면 우리 내기하자."
"용왕님께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하잖아."
"당연하지, 내가 용궁에 도착하는데로 용왕님께 말씀드려볼께. 분명 허락하실거야."
"그러다 니가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용궁에서 영영 안 나오면 어떡해?"
"내가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겠니?"
"그러지 말고 용왕님껜 용궁에 도착하는대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간단한 내기를 하는 건 어때?"
"어떤 내기?"
"그건 거북이 니가 정해."
"무슨 내기를 하지? 음...달리긴 어떨까?"
"하하하, 이 숲 속에서 제일 잘 뛰는 나하고 달리기를 하자고? 그것도 몇 시간 만에 겨우 요만큼 걷는 니가."
"그래, 내말이 틀림없다는 걸 확인시켜 주기 위해선 오히려 달리기 시합이 좋을 것 같아."
"내가 먼저 달리기를 하자고 그런 것도 아니지만, 숲 속 동물들이 들으면 뭐라고 그럴까?"
"그건 염려하지마. 내가 잘 얘길 할께."
토끼는 분주히 뛰어 다니며 숲 속 동물들을 불러 모았고, 거북은 자신과 토끼의 달리기 시합을 발표했다.

토끼와 거북의 달리기 시합을 하는 날.
여우가 심판을 보기로 했다.
"지금부터 저 숲 속을 지나 무지개 언덕까지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거야. 자 준비 되었지? 시~작!"
토끼는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졌고,
토끼와 거북의 경주를 구경하던 동물들은 우스워서 배를 움켜 쥐며 나뒹굴었다.
한참을 달리던 토끼가 뒤를 돌아다 보니 거북은 그림자 조차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에 쉬었던 언덕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언덕 위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뛰었더니 피곤한데 거북이도 언제 올지 모르고, 잠이나 한숨 자다가 가야지.'
시원한 나무 그늘에 누우니 잠이 스르르 드는 것이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토끼가 거북이가 오고 있다는 생각에 오던 길을 둘러보니 거북이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아직 올려면 멀었군. 또 뛰다가 나무 그늘이 나오면 쉬다가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앞에서 거북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응, 널 이기려면 잠시라도 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렇게 쉬지않고 뛰는 중이야."
"지난 번엔 계속 그자리에 있었잖아."
"응...지난 번엔 길에 동전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걸 줍느라고 그랬던 거야."
"아..그랬었구나."
"어서 가. 부지런히 뛰어야 하잖아."
"응, 나 먼저 갈께."
"그려."
'이젠 거리를 많이 벌려놔야겠다고 생각한 토끼는 언덕이 나오자 쉬질 않고 달렸다.
다음 번 언덕에서 쉴려고 생각한 때문이다.
세번째 언덕이 보이자 얼른 가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언덕 위를 쳐다 보니,
이미 거북이가 언덕위로 기어 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내가 먼저 왔는데...'
"거북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있었어? 분명 내가 먼저 뛰어 왔잖아."
"으응...나도 잘 모르겠어. 난 그저 앞만 보며 뛰었거든."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한 토끼는 다음 언덕까지 뛰어가서 잠시 쉬기로 했다.
네번 째 언덕에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무 그늘에 풀썩 주저 앉았다.
'거북이가 이곳까지 올려면 아직 멀었겠지, 설마 나보다 먼저 왔을려구.'
그때, 나무 뒤에서 거북이가 나오며,
"푹 쉬었으니 이제 슬슬 출발을 해볼까."
"켁, 언제 왔었니?"
"벌써 도착해서 쉬고 있었어, 안그래도 널 기다리다가 안오길래 나혼자 출발을 하려던 참이야."
토끼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조금도 쉬질 못하고 또 뛰어야 했다.
다섯 번 째와 여섯 번 째 언덕이 나와도 거북이가 보이질 않자,
분명 먼저 출발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뛰고 또 뛰었던 것이다.
무척 피곤하고 지쳤지만 기진맥진하여 마지막 언덕인 무지개 언덕까지 거의 다 왔을 무렵,
도착 지점을 보니 거북이가 도착점을 향해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이게 도대체 뭔 넘의 조화여?'
도착 지점에선 이미 수 많은 동물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큰 소리로 힘을 내라고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젖먹던 기운까지 내어 열심히 뛰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거북이가 이기고 말았다.
"이젠 내말을 믿겠지? 내가 용궁에 도착하면 용왕님께 말씀드려서 토끼 니가 용궁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할께."
"그래, 고마워. 그리고 니가 이긴 것을 축하해."
거북은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용궁을 향해 걷고 또 걸었으며,
토끼는 개미보다도 더 느릴 것 같은 거북한테 졌다는 수치심에 더이상 숲 속에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숲을 벗어나 살기로 결심하곤 그곳을 떠나 버렸다.

거북이 용궁에 도착했을 때 용왕님은 깊은 병환으로 거의 절망에 빠져있었다.
"용왕님! 대체 어찌된 일이옵니까?"
"내 병은 아주 깊어서 용궁의 약으로도 소용이 없다고 그러네."
"그럼, 어찌해야 나을 수가 있답니까?"
"바다에선 구할 수가 없고 육지에서 구해야 하는데, 오로지 토끼의 간만이 내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다고 한다네."
"예? 토끼요?"
"응, 토끼를 본 적이 있는가?"
"예! 실은..."
거북이 용궁으로 오는 도중에 토끼를 만나 경주를 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용왕님은 반갑고 기쁜 마음에 어서 토끼를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토끼가 저한테 경주에서 졌다고 잔뜩 벼르고 있을텐데 쉽게 따라올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토끼의 얼굴을 아는 자는 너 밖에 없고 용궁을 구경시켜 주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따라오질 않겠는가?"
"그렇긴합니다만..."
"여러말 말고 어서 다녀오게. 토끼만 잡아온다면 이 용궁의 반은 자네에게 줄테니..."
"예! 알겠습니다."

거북이 지난 번의 그 숲으로 토끼를 찾아 들어갔지만, 토끼는 이미 그 곳에 없었다.
물어 물어서 어렵게 토끼를 찾았다.
토끼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토끼는 머리를 싸매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지난 번 승부에서 충격이 컸던 때문일까?'
"나 때문에 무척 자존심 상했지? 미안하네."
"아냐, 승부는 승부니까...근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대답해 줄 수 있겠는가?"
"어떤?..."
"어떻게 해서 날 이길 수 있었는지 그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네."
"아, 그건...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도저히 자네를 이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거북이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서 작전을 짠거라네."
"역시...그랬었군."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그려."
"아닐세.."
토끼는 거북과 함께 용궁으로 떠났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거북은 토끼에게 자신의 등에 올라타라고 했다.
토끼가 거북의 등에 올라타자 거북은 기다렸다는 듯 손살같이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정말 빠르군, 진작에 몰라봐서 미안하이."
"한 번도 바닷 물 속에 들어 와 본 적이 없는 자네이니 그럴 수 밖에...괜찮으이."
수심이 깊은 곳으로 다다르자,
"내가 숨을 쉴 때에 산소가 올라오면 그걸 받아서 숨을 들이키면 되니 그렇게 하게."
용궁으로 내려가니 용궁엔 이미 수많은 물고기들이 거북의 전갈을 받고서 대기하고 있었다.
토끼는 용왕님 앞으로 나아갔다.
"용왕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혈색이 좋질 못하시네요."
"으응, 내가 요즘 병이 깊어서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나을 거라는 의원의 말에 자네를 특별히 용궁으로 초대했다네."
'이런, 믿었던 거북이가 날 죽음의 길로 데려 올 줄이야...'
"네? 그러면 진작에 말씀을 하셨어야죠. 원래 토끼란 짐승은 털 가죽이 두꺼워서
혈액 순환이 잘 안되고 늘 소화 불량에 시달려서 수시로 간을 끄내어서 말리곤 한답니다.
마침, 오늘도 말리고 있었는데 거북이가 용궁 구경을 시켜 준다는 말에 간도 못챙기고 그냥 왔지 뭡니까."
"그래? 그럼, 어서 가서 가지고 와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잘 챙겨서 가지고 왔을텐데...간이 잘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당장에 가서 간을 가지고 오게. "
거북은 토끼를 등에 태워 육지로 올라갔다.
육지에 다다르자 토끼는 재빨리 뛰어 내리며 거북을 걷어 차 버렸다.
"내가 비록 어리석어서 경주에선 졌지만, 그렇다고 날 업신여겨 용궁으로 데려가 죽일려고 했어?
세상 천지에 간을 끄냈다 도로 넣었다 하는 짐승이나 동물이 어디 있어? 이 미련한 거북아.
아참, 지난 번 경주에선 자네가 이겼지만, 오늘은 내가 이겼으니 우리 승부는 일대 일 일세."
그리곤 제 갈 길로 가버렸다.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다시 용궁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는 거북은 그길로 산으로 들어 가 버렸다.

어느날, 토끼가 한가로히 풀을 뜯다가 지난 번에 만나서 승부를 겨루었던 거북이가 지나가는 걸 보게 되었다.
'지난 번엔 무승부였었는데...오늘 그냥 보내어 버리면 두번 다시는 승부를 가릴 기회가 없겠지.'
그래서 살금살금 거북의 등뒤로 다가가 거북을 뒤집어 버렸다.
"어어..."
거북이 놀라고 당황스러워 목을 길게 빼고 보니,
지난 번의 바로 그 토끼가 자신을 뒤집어 놓고 가버리질 않는가.
한참 후에 토끼가 다시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거북은 뒤집힌 채로 꼼짝도 하질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 이게 누구신가? 오랫만일세 그려."
거북은 토끼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으응...발을 헛디뎌서 그만 뒹굴고 말았다네."
"저런, 쯧쯧...내가 일으켜 세워줌세."
"고마우이."
"그래, 이번엔 육지로 무슨 행차이신가?"
"지난번 그일이 있은 후 자네가 가버리자 나도 용궁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네."
"그래? 앞으론 어떻게 살아갈 셈인가?"
"자네도 아다시피 내가 물을 떠나선 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이미 용궁으로 돌아가긴 글렀고, 조그마한 연못이나 호수가 있으면 들어가 살면 되겠는데...
혹시 아는 곳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게."
"내가 아침마다 옹달샘으로 물을 먹으러 가다 보니 연못이 있긴 있던데 그곳도 괜찮을란가 몰라."
"어디? 안내를 좀 해주게."
"그러지 뭐."

토끼는 거북을 데리고 연못으로 갔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 시원한 물 속에서 같이 헤엄이나 치지 않으련가?
이젠 용궁에서처럼 자네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을테니 안심하시게."
"그럴까 그럼...솔직히, 자네 등에 올라타서 물길을 헤치고 갈 땐 정말 좋았거든."
"어서 타시게."
거북의 등 위에 훌쩍 올라탔다.
천천히 물가로 다니던 거북은 차츰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뒤도 돌아보질 않고 거북은 깊숙히 들어 가 버리는 것이다.
깊은 곳에서 꽤많은 물을 마시게 된 토끼는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토끼는 무언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정신을 잃어 가면서도 본능적으로 꼭 붙들게 되었다.
토끼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이미 육지에 올라 와 있었고, 거북이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정말 무승부이지?"
"무..승..부...?"
"하하하하하..."
이렇게 해서 토끼와 거북의 경쟁은 오늘 날까지 무승부로 남아있게 되었다.

월척

21세기의 선녀와 나뭇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