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염경희
ㆍ작성일	2022-03-03 11:31

ㆍIP: 121.xxx.72

꽃상여

글/ 염 경희

아! 개운하게 잘 잤다. 지난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서일까?
긴 잠에서 깨어보니 하늘엔 온통 꽃구름 잔치였다.
주홍빛 햇살은 덩달아 기지개를 켜고, 몸도 마음도 모처럼의 휴일을 맞는 기분 좋은 날
모닝커피 한잔 생각이 난다.
솜사탕 같은 하얀 눈망울이 소복이 쌓인 창가에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고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릴 듯 아슬아슬하다.

불현듯 그날이 떠올랐다.
아마 그날도 방축골(마을 이름)엔 살갗을 파고드는 매서운 동장군이 우뚝 서 있었을 게다
방축골 집집이 마당 귀퉁이엔 꽁꽁 얼어붙은 눈더미가 쌓여 있었으니까. 4~50년 전 고향 집을 기억한다.

할아버지 기일이었다.
필자는 망아지처럼 대문 안, 밖을 정신없이 드나들었고 사랑채 쇠죽솥에는 연시 장작불이 타고 있었으며
장손인 큰 오빠는 시뻘건 불덩이를 화로에 담아 마루 한 모퉁이 햇살 찾아 앉아 계신 할머니 앞에 가져다 놓았다.
엄마는 적 거리와 부침 거리를 준비해 화롯불 앞에 가져다 놓고 잰걸음으로 부엌으로 사라졌고
할머니께서는 수당(솥뚜껑)을 화로에 올려놓고 하얀 덩어리 하나 툭 던져 놓으니 기름 타는 냄새가
온 집안을 메웠다. 그것은 바로 정육점에서 적 거리를 끊어 오면서 덤으로 얻어온 소기름 덩어리였다.

그 때만해도 식용유가 귀하던 때라 그것으로 부침질을 했다.
음력 섣달 열흘!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기일에 올려 놓을 음식을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날이다
감기에 걸린 듯 그날부터 자리에 누우셨는데 닷새 되던 날 할아버지 곁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방안에 메주 떼어 밖으로 옮겨라~ 장롱 마루로 내어놓아라~ 등등
손수 여행 떠날 준비를 다 하신 후 그렇게 깨끗한 모습으로 가셨다.

소싯적엔 장례 치를 채비는 집에서 했던지라 마을 장년, 청년, 아낙네들이 분주하게 드나들었고
마루에서는 할머니가 타고 가실 꽃가마에 쓰일 꽃 접기에 한창이었다.
한지를 동그랗게 가위질을 한 다음 그 테두리를 잘게 잘라 오색 물감을 들이고 꼬챙이로 똘똘 말아
꽃 모양을 내어 가운데 구멍 내고 여러 장 포개 꿰매 놓으면 예쁜 꽃이 되었다.

꽃상여가 다 만들어지면 건장한 장년들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상여꾼들은 꼭 아들을 낳은 사람만이 멜 수가 있었는데 아마도 전해 내려오는 유일한 전통 풍습이었을 것이다.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거나하게 취기가 있는 구성진 가락을 읊어대면 동네 아주머니들 일손 멈추고
앞치마에 콧물 눈물 닦으며 함께 슬퍼했다.
상여 앞에서 소리를 메기는 소리꾼이 땡그랑 땡그랑 핑경(종)을 흔들어 울리며 동네 한 바퀴 돌면서
구성지게 선창하면 상여꾼들이 후창을 했다.

어허이~어허~ ”이제 가면 언제 오시려나.
어~어~이~~ 어허~ 어가라 영차 어가 어허~
내 새끼들 불쌍해서 어이 가나?
한번 가면 그만인데 내 새끼 눈에 밟혀 어이 갈까?
이런저런 푸념소리는 어둠을 가르며 밤 하늘에 울려 퍼졌고
소리꾼들은 점점 목청을 높여 온 동네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방축골에서 선산이 있는 곳까지는 지금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데
한 시간 넘는 길을 걸어서 묫자리까지 갔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겠지만 방축골엔 상여보관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기일 준비 끝에 떠나셨고, 몇 년 후 아버지께서도 지병으로 환갑도 못 지내시고
추석 명절 다음 날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아버지께서 철없는 막내딸에게 마지막 하신 말
“추석 지났냐? 동네 사람들 차례 모신 후 죽어야지 욕 안 먹는다.”
“아버지 어제가 추석이야 지났어.” “그래!”
예나 지금이나 시골에선 명절 앞두고 동네에 초상이 나면 차례를 안 모시는 풍습이 있었기에
피해를 줄까 봐 걱정하셨다.

나이는 어렸지만, 시집살이하면서 임종해 대한 귀동냥을 많이 했었기에 필자는
물수건으로 아버지 얼굴도 닦아 드리고 손톱, 발톱도 잘라 드리고
엄마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하얀 한복으로 갈아입혀 곱게 보내 드렸다.
옛 말씀에 임종 자식은 따로 있다고 했던가?
엄마와 오빠들은 마당에서 콩 타작과 깨를 털어 치우느라 일손이 바빴고
아버지를 돌보던 필자 혼자서 임종을 했다.

요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린 꽃가마! 장례 버스가 있었지만,
아버지도 동네 입구까지는 꽃가마로 모셨고 나머지 길은 장례 버스를 이용하여 모셨다.
아버지 생전에 늘 꽃가마를 타시겠다고 유언처럼 하셨기에 할머니 보내드릴 때처럼
고운 꽃가마 태워 할머니 품으로 보내 드렸다.
할머니는 정월 한가위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는 날에 떠나셨고
아버지는 팔월 한가위 대보름 달 밝은 날에 떠나 가셨으니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계실 거라 믿는다.

오늘은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첫눈이 소복이 쌓여가는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가는 아침
차 한 잔에 그리움을 달래본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있던 그때가 아주 그립습니다.”

염규식

2022-03-03 13:14

`염경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작가님의 아버지 생각에 저도 어머님생각이 나서 다음주일엔
산소에 다녀오렵니다 삶의 문특에 설때면 늘 그립고 보고싶은것이
부모님이죠 좋은 글 *수고하셨어요*


염경희	존경하는 작가님~~ 오늘이 벌써 또 금요일입니다 오늘부터 사전투표 한다고하니 사람 많이 모이기전에 소중한 한표 해야겠습니다 보이지않고 번져가는 오미크론 주의하시고 주말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3/4 09:17

유순호

2022-03-06 19:48

`염경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께서 올려주신 꽃상여를 읽고
장례문화의 변화에 아득한 옛날인 듯싶어요.
그 시절엔 꽃상여를 태워 보내드렸는데 .......
동네 어귀마다 상여집도 있었고, 상을 치르려면
온 동네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같이 슬퍼하고 장례를 치렀지요.
도시에서는 이웃집도 모르게 되는 요즘은 사람의 정을 찾기가
어려워요. 아버님을 그리워하시는 작가님의 효심에 감동이었습니다.


염경희	안녕하세요~~ 옛날에는 상여를 많이 보았는데 이제는 tv에서나 가끔 접할수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일손을 거들며 정을 나누던 때는 이제 볼 수가 없습니다 요즘엔 장례사업이 들어서서 도우미들이 있어 서로 일손을 나누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요 귀한걸음 해 주신 시인님 감사합니다	3/7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