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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8-19 14:26
ㆍIP: 223.xxx.159
평화를 잃은 아이는 잠을 잔다
평화를 잃은 아이는 잠을 잔다

       권영심

나는 수 십 년을 밤에 깨어 있는 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입원 생활에 가장 괴로운 점이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이다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소음을 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뜬 눈으로 밤을 밝히는 고역은 나름 힘들기 짝이 없다
망막 출혈이 일어나기 전에는 밤새워 책을 읽으면 되었고 또 그 때는 입원을 거의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의 입원 생활도 잠 때문에 고생이었다
그나마 아들이 태블릿피시를 주면서 보라고 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화에서부터 예능까지 별별 것을 다 볼 수가 있어 몇 시간을 잘 보낼수가 있었다

찾는 재미가 있어 요것 조것 찾으며 보았 는데 오늘 새벽에 세계의 다큐에 접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게 된 충격적인 다큐의 내용이 하루 종일 내 마음을 휘저어 도무지 놓아지지 않는다
체념 증후군...
이 기막힌 단어의 증후군도 처음 들었거니와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난민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2000년 이후 난민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어느날 부터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잠들기 시작하면 그 어떤 물리적 행위에도 반응하지 않으면서 잠만 잔다는 것.
음식도 넘기지 못하고 관을 통해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며 삶의 모든 것을 가족들이 대신해 주어야  했다
아이들은 그저 잤다
백 년 동안 잠 자는 공주님 처럼 그저 잠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거의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데 유독 스웨덴의 난민 가정에서만 이 체념증후군이 몇 백 건이 발생해서 미스테리라고 불리우는 아이들의 잠자기병은 갑자기 찾아오진 않는다
부모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거나 가족이 추방당하는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삶을 포기하듯이 아이들은 음식을 거부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것 외에 모든 생체 반응은 정상이다
그 모습은 너무나 예쁘고 마치 일어나기 싫어 투정부리는 아기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큐를 보는 내내 소리죽여 울면서 나는 아이의 심정이 내 심정에 겹치듯 느껴졌다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황망하면 저 깊고 깊은 잠의 세계로 도망친 것일까...
그것밖에 아이가 할수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랴?
전쟁과 굶주림과 무자비한 피의 보복을 피해서 목숨을 걸고 도망쳐 온 나라에서 또 다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린 아이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 사선을 넘어 온 트라우마가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안락한 생활을 하는 스웨덴에서 마저 추방된다는 공포가 아이를 잠재웠다
난민 지위가 주어지지 않으면 가족은 바로 추방되어야 한다
부모보다 먼저 말을 익힌 아이는 통역 하기도 전에 지위가 거절되었다는 말을 알아듣고 그 날 부터 음식을 거부했다
아이는 잠들어야만 살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된 것이다
스웨덴은 유럽의 나라들 중 난민 정책이 가장 뛰어난 나라이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와 갈등이 생기고 지금은 국내의 커다란 국민증오의 감정 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난민 가정의 어린아이들인 것이다

인류의 아이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약한 존재였다
아마 인류가 멸망할 때 까지 그러할 것이다
그 약한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사랑스러우며 그렇게 연약하며 그렇게...
치명적으로 절박해지는 것이다
가장 아이답게, 아이만이 할수있는 방법으로 잠자는 공주와 왕자들이 되어 무저항으로 자신들을 내어 놓는다
건강한 아이들의 삶의 시기는 가장 역동적이고 활발한 시기이지만 평화를 빼앗긴 아이들의 삶은 죽음이나 다름 없다
죽을 수 없기에 잠을 자는 것이다
가엾다는 말조차 할수없이 이 지구촌 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이 참상에 나는 그저 기도로 침묵한다
외치기 시작하면 비명을 지를 것 같기에
평화를 주소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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