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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8-12 13:41

ㆍIP: 223.xxx.17

상처입은들 꽃이 아니랴

상처 입은들 꽃이 아니랴...

권영심

55세 정도까지는 징그럽도록 건강했다
아니 건강하다고 생각했었다
며칠 밤을 새워 놀아도 끄덕없었고 봉사 현장에서 백 인분 짜리 솥이나 냄비를 번쩍 번쩍 들고 음식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실비 보험이나 다른 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아프다고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픈 것의 개념조차도 인지 못했었다 고나 할까...
두통이 심할 때가 가끔 있었는데 진통제 한 알이면 나아졌기 때문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신기해 할 만큼 그렇게 건강 했었다
그러나 열로 쓰러지고 난 후 내 몸 구석 구석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알았다

현재 확인되어 있는 진단명만 해도 일곱 가지이다
아침 저녁으로 먹는 약만 해도 한 웅큼.
약만 먹어도 배불러 살 지경이다
이런 몸으로 살아야 하나...
절망에 가까운 비감함이 온 마음을 물들이면 그야말로 숨이 막힌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 오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모른다
인간의 정신이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연약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면서 나를 붙들 수 있는 것은 나 뿐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
진료를 받으며 한숨과 함께 내뱉은 내 말에 담당의는 나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안경 뒤의 그 눈빛은 냉엄하도록 차거웠다

- 이 세상에 불치병이 얼마나 많은줄 알아요?
태어나서 바로 암에 걸려 생사를 헤메는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몇 명이나 될 것 같아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듯 했다
-아주머니는 엄청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렇게만 아세요 -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너덜한 내게 의사는 운이 좋단다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그렇게 눈물이 흘렀다
내 교만함으로 피 흘리는 상처에 스며 드는 눈물은 끝 없는 회한을 만들어 내었다
왜 내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서는 안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잔인한 교만이었다
지구에 태어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살해당하고 어린이의 상태에서 전쟁으로 죽어 간다

사람으로 태어나 무사히 어른이 되어 천수를 다 하고 죽는 경우는 이 현대 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태어나고 자라고 병에 걸리고 늙음으로 고통받으며 아픔을 극복하고 나의 의지와 가족과 지인들의 사랑으로 회복 해서 인간으로서의 길을 가는 존재.
그 위대한 여정을 가는 것은 누구나 같다
왜 나에게만?
나만이 아니라 수 십억의 인류 누구나 겪고 있으며 감당해 내는 것을 나 혼자 만 겪는 것 처럼 그렇게 유난스러울 필요가 없음을 깊이 깨닫는다
내게 병이 생긴 것은 온전히 내 책임이며 당연한 일이다
병 또한 내게 주어지는 나만의 몫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생의 길을 가는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하는가라는 생각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지금 이 시간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고비 에 넘나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병명도 몰라 약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헤아릴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맞는 말이며 그 운 좋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 어떤 아름다운 꽃도 상처입고 시들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꽃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현재 병이 많고 아픔이 있다 해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랴?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는 사람 이며 그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할수있는 것을 다 할 것이다
아름답지 않다고 ,건강하지 않다고 살아갈 자격이 결코 없지 않으며 이 세상은 연약하고 가련한 이들의 용기와 의지로 가득하다
그것이 진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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