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6-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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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와 당숙모

소고기와 당숙모

권영심

출산 예정일이 12월 10일이었는데 전혀 기미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21일 아들을 낳고 나흘 후 대신동의 전셋방으로 퇴원했다
친정은 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중풍으로 몸이 불편해서 산바라지를 하고 있을 수가 없어 내가 우겨서 집으로 갔다
부모님은 방도 있으니 친정에 오기를 바랬으나 출산하기 전 부터 이상스레 마음이 몹시 힘들었던 나는 그저 아기와 단둘이만 있고 싶었다
엄마와의 사이가 보통의 모녀같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집까지 따라온 엄마는 커다란 솥에 소고기를 많이 넣고 미역국을 가득 끓여 놓고 돌아갔다
미역보다 소고기가 더 많다고 할 만큼 그렇게 끓인 국이어서 나는 참 달게 먹었다
친정으로서는 처음 태어난 아기였기 때문에 꽤 큰 방은 아버지와 동생이 준비해준 아기용품으로 넘칠 정도였다

친가의 친척 하나 없는 친정 식구들에게 아기의 탄생은 너무나 간절한 기다림 이어서 출산 전에 유모차까지 준비되어 동네 사람들의 이야깃꺼리가 되었을 정도였다
지금과는 다른, 36년 전의 일이다
여동생은 기저귀를 세 종류나 준비해 주었다
겨울에 아기가 태어나니까 기저귀 세탁이 힘들다고 그 시대엔 귀한 종이 기저귀를 이 백 개나 사서 쟁여 두었고 소창 기저귀 ,일반 기저귀 해서 기저귀 장을 꽉 채워 두었다
오단 장을 준비해서 각종 옷들이며 온갖 싸개와 우주복들로 꽉 채워 놓았고 흔들침대며 아기바구니 등...
암튼 아버지와 여동생은 큰 시장과 도깨비시장을 다니면서 참 많은 아기용품을 들여 왔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손을 떨면서 그렇게도 기쁘게 웃으시며 물건을 사는 것을 보면서 여동생은 많이 울었노라고 했다
바로 한 해 전에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기에 가장 사랑하는 딸인 나에게서 태어나는 손자가 어떤 의미였을지 솔직히 그 때는 다 몰랐다
젖이 안 나와서 병원에서 초유를 겨우 두어번 먹였을 뿐 우유를 먹였는데 아기는 너무나 순하고 잘 먹고 잘 잤다
왠지 우울하고 슬펐는데 아기를 안고 있으면 불안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평화롭고 행복했다

그런데 집에 온 나흘 후 먼 시골에서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가 산구완을 해준다고 왔다
시가쪽으로 무슨 당숙모가 된다는데 알고 보니 친정아버지가 내 몸을 너무 걱정하셔서 신랑이 시골에 연락해서 온 것이었다
그 날은 엄마가 와서 다시 미역국을 끓이고 몇 가지의 반찬을 해놓고 간 뒤 였는데 마치 돌풍 처럼 들이닥친 당숙모의 무서운 탄식은 오자마자 시작되었다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의 그녀의 입담을 옮길 재주는 없고 나이는 오십 중반 이었는데 완전 할머니의 모습인 당숙모는 모든 것을 욕했다 (?)
저녁마다 집주인 언니가 아기 목욕을 돕기 위해 건너 왔는데 그녀는 아기를 만지려는 당숙모의 손을 보고 기겁을 했다
당숙모의 손은 너무나 거칠고 험했다
나 역시 그녀가 아기를 만지는 것이 싫었고 그냥 돌아가시라고 신랑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어차피 왔으니 며칠만 있게 하자고 해서 그냥 계시라고 하고 식사만 차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당숙모가 차려주는 미역국에 소고기가 없었다
맛도 없었고 맹탕이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끓여 놓은 미역국은 당숙모와 신랑이 먹고 나는 미역만으로 그녀가 새로 끓인 국을 준 것이었다
-산모가 먹는 국에 그렇게 고기를 많이 넣으면 아기가 탈이 난다
산모는 미역만 넣어서 끓여 먹는 법이다 -
당숙모는 그렇게 말하며 미역국을 두 그릇 씩 먹었다
나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고 그런 나에게 당숙모는 마치 지난 세월의 원한을 풀러 온 사람 처럼 온갖 말을 퍼부었다
그러니까 현재 나와 내 아기가 누리는 이 모든 호사 (?)가 그녀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것이었다
당숙모에겐 세 명의 며느리가 있었고 손자들도 이미 여럿 있었는데 막내 며느리가 임신중이라고 했다
기저귀 하나도 준비 안하고 있노라고 내게 퍼붓는데 참... 너무 기가 막혀 기어이 신랑과 싸움판을 벌리고 말았다

내게 그 어떤 도움도 준 적이 없는 시댁의 사람이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을 참을 부덕이 그 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다음날 아기를 안고 큰 방의 언니 방에서 우유를 먹이며 하소연을 했는데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 그 새까만 전라도 시골에서 알라 기저귀 하나 변변한 것 못 보다가 너거 방에 가득한 아기용품들을 봤으니 어째 맴이 안 이상하겠노?
곧 며느리가 알라를 낳을건데 생각해 보믄 얼마나 속이 시끄럽겠노?
그 나이에 그렇게 늙었으니 정말 가난하게 고생한 할무이 아니가?
집에 갈 때 알라꺼 좀 챙기 주그라.
경대는 금방 클거고 그 많은 아기 옷이며 앞싸개며 써 보지도 못하고 어차피 남 주게 될 것 천지빼까리 아이가? -
언니는 아기의 볼을 어루만지며 따뜻하게 웃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당숙모는 올 때 입고 왔던 차림이었고 시골로 가겠노라고 했다
그녀의 차림은 그 겨울에 한복 치마와 보풀이 가득한 낡은 스웨터 차림이었다
나는 하루만 더 계셔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큰 방으로 건너가 친정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내의 몇 벌과 두툼한 스웨터 등 옷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은 저녁 시간에 큰 보따리를 들고 왔다
당숙모님은 동생이 펼쳐 놓는 옷들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커다란 보자기를 꺼내어 기저귀와 양말 배냇저고리 ,누비옷이며 포대기 까지 여러가지를 터지도록 꾸렸다
-당숙모님
아직 한 번도 쓰지않은 새 것들이예요
우리 친정이 부자라서 이렇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외로운 집에 태어난 손자라서 귀히 여기신 아버지가 해주신 것들이예요
당숙모님의 손자라면 울 애기의 동생이나 마찬가지여서 나누어 드리는 것이니 며느님께 갖다 주셔요-
당숙모는 보따리를 받아 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다시 행복해졌고 그 뒤 큰 시누에게서 들은 소식으로 더 행복해졌다
시골로 내려간 당숙모가 내 칭찬을 주구장창 하고 다닌다는 소식이었다

그 뒤 다시는 그 당숙모를 보지 못했으나 나이가 들수록 그녀가 생각난다
소고기를 먹을 때 특히 생각나는데
-내 평생에 묵은 소고기가 니가 묵는 미역국에 들은 소고기만도 못할거다 -라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생각이 난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
특히 시골 오지에서 태어나고 평생 동안 그 곳에서 살아온 여인들의 험난한 삶이 그 한 마디에 함축되어 있음을 나이들어 가면서 깨닫는다
오늘 모처럼 소고기 국을 끓여 먹었다
독한 약을 많이 먹기에 좋은 단백질을 꼭 섭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더니 양 손 가락들이 하나씩 껍질이 벗겨지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나서 먹기 싫어도 먹을수 밖에 없었다
왜 예전 처럼 맛이 없을까?...
고기를 먹어야 하는 일이 이렇게 큰 숙제가 될 줄 몰랐다.

목요일 오후, 청춘 카페의 차 이야기

내가 만드는 맛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