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6-14 17:55

ㆍIP: 223.xxx.115

학대 ,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고통

학대 ,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고통

권영심 (2020. 3. 15 )

술을 마시는 행위는 많은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아프기 전 까지 술을 즐겨서 ,그리고 많이 마시는 주당이었으나 어떤 술자리든지 취해서 나를 놓아본 적이 없다
술 마신 다음날 속이 아프지도 않았고 해장국에 의지해 본 적도 없어 지인들은 매우 신기해 했다
거의 매일 술자리가 있었으나 그런 나도 절대 안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오히려 반대의 경우에 해당했다
혼자서는 절대 마시지 않고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도 마시지 않고 불편한 사람들과도 마시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지켜온 나만의 법칙이다
혼자서 마시는 술은 세상 맛이 없었고 고통스런 마음에 술을 마시는 것은 견디지 못할 정도의 아픔만 가중시켜 주었기에 입에 대지도 않는다
불편하거나 어려운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재미가 없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되었기에 사양했다
술로 푼다라는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함께 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웃음과 이야기가 넘쳤다

그러나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60%가 힘들 때 오는 듯 하다
40%는 모임과 대화를 위해서 오고 그런 자리는 왁자지껄.. 나름의 대화와 웃음, 활기찬 소란으로 재미가 넘친다
몇 명이 되었건, 홀로 오건 불편한 심정으로 오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이상해지는데 폭력까지 가지 않도록 딱 멈추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말 냉정한 태도로 나갈 것을 요구하면 거의 사고없이 끝나서 복장 터지는 일은 지금까지 거의 생기지 않았다
혼자 오는 손님은 대부분 나쁜 상태에서 오는데 슬프거나 괴롭거나 외롭거나 우울 상태에서 그것을 술로 풀기 위해 오는 듯 하다
그럴 때 나는 마주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나 또는 친구 , 상담사가 되는데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사장님은 정말 특별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주인 첨 봤어요
전부 매상 올릴려고 난린데...-
손님들은 그렇게 고마워 하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지금은 몸이 아파 술을 전혀 마시지 않기에 마주앉아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그 아픈 삶의 이야기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손님 가운데 꼭 함께 오는 부부가 있는데 여자는 나를 언니라 부르고 남자는 누님이라고 부른다
남자는 주량이 맥주 한 잔, 여자는 대여섯 병은 마시는데 거의 정기적으로 오지 싶다
남자는 참 유쾌하고 반듯한 성품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이야기 할 때 조차 유머스럽게 표현했다
그는 단 한 잔의 맥주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여자와 나는 호응을 해주면서 들어 준다
근래의 일 이야기, 아내와의 사소한 다툼 , 군대에 있는 아들이야기에 이어서 반드시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때 부터 아내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처음에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원도 영월 깊은 산골이 그의 고향이었는데 아무리 사오십 년 전 옛날이라고 해도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에게그런 말도 안되는 학대를 할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매일 구타하는 것은 물론이요 다섯 살 때 부터 지게를 지워 나무를 해 오게 하고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겨울에도 발가벗겨 얼어붙은 개울에 집어 던져 버렸단다

한 번은 아버지가 여름에 그를 개울에 던졌는데 비가 온 뒤라 개울물이 불어 물에 빠져서 죽었다가 살아났다
조금 큰 뒤로는 자전거 체인으로 마구 후려 갈겨서 어머니가 그를 감싸 안다가 머리가 터져서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국민학교 사학년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각오하고 철길에 누웠는데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맨 발로 뛰어 와서 기차가 오기 직전에 그를 끌어냈단다
죽겠다고 소리지르는 그를 끌어 안고 어머니가 울면서 귀에 속삭이기를
-아그야 어서 크거라
어서 커서 니 아버지를 이겨 불거라
아들이 크면 아버지는 힘을 못 쓴다...-
마치 자장가를 부르듯이 어서 커 달라고 울면서 말하는 어머니의 말이 그를 살리고 깨어나게 했단다
술만 마시면 그 폭력이 더 잔혹해졌기에 그는 아버지의 낌새를 살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무조건 숨었다고 했다
그가 풀어놓은 그 많은 잔인한 학대의 이야기들... 나는 처음에 말할수 없이 울었고 그도 같이 울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울어준 사람은 누님이 처음이오
저 사람은 무서워 했지 울지 않았거든.
근데 누님이 그렇게 울면서 아..하느님 하는데 그만 내 속에서 뭔가 확 녹아 내리는 것 같았소 -
그게 단골이 된 이유라고 나중에 그가 말했다

그가 아버지의 가혹한 학대에서 벗어난 것은 중학교 이 학년 때.
술에 취해서 부엌에 있는 어머니를 향해 체인을 내리치려는 아버지를 붙잡아 그대로 마당에 집어 던졌단다
그는 그 때 이미 쌀가마니를 너끈히 질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체격도 아버지보다 컸다
-인자는 더 이상 하지 마소!
아부지가 또 이러면 쌍놈의 새끼라는 소릴 들어도 아부지를 기둥에 묶어 놓고 말끼요 -
이를 악물면서 노려보고 하는 말에 아버지는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고 그 날로 폭력은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 처럼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한 달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열 네살의 몸으로 세 동생을 거느린 가장이 되었고 그 무서운 고생담은 애간장을 녹이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버지 처럼 되지않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았고 그런 그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끝에 가서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하는 말이 있다

-얼마나 그 날을 후회하는지 몰라요
내가 아버지를 집어 던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일찍 가시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자식에게 당한 충격이 아버지를 그렇게 허무하게 가시게 한 것이 아닌가..-
어깨까지 들먹이며 우는 그를 위로할 말이 이 세상엔 없다
말을 하는 입은 웃는데 두 눈은 젖어 있는 그의 고통은 아마 살아갈 동안 영원할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자식을 진심으로 학대한다고 한다
그것을 업이라 말하기엔 당하는 자식의 고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보니 유년의 행복한 기억이 천군만마보다 더 힘이 됨을 알겠다
내 아들에게 너무나 화가 났을 때 조차 어릴 때 한 번도 체벌하지 않았음을 위안으로 삼을 때가 있다
때리고 키웠으면 지금보다 더 잘하고 살수 있었을까?
설령 그렇더라도 내 새끼를 때리지 않고 키운 내가 더 좋다
평생의 상처를 가슴에 새긴채 살아가는 그에게 나의 진심의 위로가 닿기를.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수 백, 수 천 번 되풀이 할지라도 나는 그 때 마다 진심의 공감으로 들어줄 것이니.

엄마와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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