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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5-26 21:53
ㆍIP: 223.xxx.58
그 옛날의 따뜻한 마음 그릇
#권영심의글
그 옛날의 따뜻한 마음 그릇

       권영심  ( 2020 ,5 ,25 )

지금은 다른 세상으로 갔으나 어릴적 동무의 어머니 한 사람이 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했다
요즘은 공장에서 만든 것을 많이 팔지만 예전의 반찬 가게는 달랐다
김치에서 콩자반까지 동무의 어머니는 모두 만들었고 낮에 놀러가면 넓은 마당에서 항상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집은 반찬을 사 먹는 집이 아니었는데 동무의 어머니는 나만 가면 콩자반을 한 그릇씩 주었다
싫다고 해도  -아버지 드려 - 하면서 주는데 안 받아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콩자반을 잘 드셨고
맛있다고 했다
반찬 가게와 우리 가게는 가까이 있었고 동무의 엄마는 참 장사를 잘했다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웃음소리가 넘치는 동무의 엄마가 장사를 잘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반찬들을 어떻게 다 만들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찬꺼리를 다듬어 주는 아줌마 한 명과 함께 매일 만들어 팔았는데 그 당시엔 공장에서 만든 반찬들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묵볶음 콩자반  풀치볶음  멸치볶음
파래무침  깍두기 석밖기김치  ...
반찬의 종류는 요즘과는 달리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서민의 찬들을 팔면서 동무의 엄마는 저녁이면 가게에 딸린 조그만 부엌에서 밥을 지었다
집에 못 가기 때문에 가게에서 식사를 해결했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혼자 먹기엔 너무 큰 솥에 밥을 했는데
반찬 가게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뒤에 찾아 오는 다른 손님들을 위해서였다
그 때는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걸인들도 있었고 가구를 메고 다니며 종이나 쓸만한 것들을 수집해서 고물상에 팔아 먹고 사는 상이 용사들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 사람들이 찬가게의 손님들이었고 그들은 밥과 반찬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반찬 팔아 남는 것은 다 거지들 입으로 들어 간다느니,
활인 부처가 났다느니 ,
시장 사람들은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나 먹는 밥 조금 더 하고 팔다 남은 반찬 주는 건데 뭐 대단하다고... -
동무의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 때는 몰랐다
그 일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일인지 살아 가면서 깨달았고 아버지의 그 넘치던 덕담이 왜 있었는지를 이제는 안다
중학교 2학년 무렵에 그 동무는 멀리 이사를 갔고 반찬 가게는 다른 사람이 인수 받아서 여전히 영업을 했으나
늦은 저녁의 손님들은 오지 않았다
만드는 반찬들이 점점 사라지고 상품으로 나온 다른 먹거리들이 매대를 채워 나갔다
반찬이 오래 됐느니 시었느니 맛이 갔느니 하는 시비 다툼이 끊임없이 있다 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동무의 엄마가 할 때는 단 한 번도 없던 시비였다
팔고 남은 모든 찬을 ,하다 못해 싱싱한 김치까지도 모두 주어 버리고 빈 양푼들을 와그락 와그락 소내리며 씻어 놓고 문을 닫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으니 시비꺼리가 있을리가 없었다

동무의 엄마가 이사를 간 다음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리워 하고 이야기 하면서 눈물짓고 그녀의 미담은 매일 매일 커져 갔다
이사가면서 서로 연락이 없었으나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찬 가게를 보면 동무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몇 년 전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고 지인을 통해 우연히 소식을 들었는데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 어렵던 시절에 한 끼 밥이 절실한 사람들을 거두어 주던 따뜻한 마음 그릇은 그 밥과 찬을 먹은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릇에 또 다른 따뜻함을 담아 다른 이에게 줄 것을 나는 믿는다
오래간만에 어르신들께 도시락을 갖다 드리면서 동무의 엄마를 떠올리면서 이 글을 쓴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 그릇을 소중히 기억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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