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10-03 17:13

ㆍIP: 58.xxx.124

기적시리즈

#권영심의글
-기적-(2- 1 )

권영심

어느 마을에 있는 사회복지관은 매일 독거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 급식을 제공 하고 있었습니다.
음식만들기와 배식 , 설겆이까지 여러 봉사자들이 시간을 정해 하면서 하루에 약 400여명의 식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는 어르신들이 다 가난하고 독거 노인 이지는 않은 듯, 때로는 차림새가 좋은 분들도 있었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당에 앉는 노인들을 그렇게 눈여겨 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오래 서빙 봉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지요.

그 할머니는 항상 일찍 와서 먼저 배식 을 받고 식사를 하고 나면 주변의 노인 들의 시중을 들어 주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흘리는 분들의 저지레를 거두어서 버리거나, 물을 갖다 주기도 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어느새 우리들은 그 할머니를 미소할머 니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미소할머니는 생색도, 공치사도 하는 법이 없이 그렇게 우리들을 여러모로 도와주었지요.
봉사자가 예상보다 적게 나온 날의 할머니의 도움은 정말 고마웠답니다.
식반을 거두어 갖다주고 식탁을 깨끗이 닦고, 때로는 바닥의 음식물까지 쓸어 담아 버리는 그런 일은 미소할머니 외에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한 숨 돌리고 보면 미소할머니는 어느새 가고 없었지요.

어디 사세요?
왜 혼자가 되셨어요?
자녀들은 없나요?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우리들은 할머 니의 신상을 알게 되었고 그 딱한 사정에 공감하며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나이는 우리들 보다 겨우 열서넛살 많은 예순 둘.
남편은 아들 둘을 낳은 뒤 돌아가고 그 후 말 못할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대학까지 공부시켜 둘 다 결혼도 할 동안의 고생은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

그러나 두 아들 다 어머니에게 생활비 한 푼도 보조해주지 않고 며느리들은 아예 외면하고, 아들 둘이 다 직장인이 어서 수급자도 되지못하고, 단칸 지하
셋방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미소할머니.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고 자그만 몸은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것 같은데 언제 나 웃는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웃어야 산다우,
나는 웃음으로 살았소.
이래뵈도 아직 병도 없고 혼자 벌어서 쓸만해요.
이렇게 점심도 배불리 먹고 이렇게좋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나는 그저 감사하며 웃으며 산다오.
자식들은 저거 벌어 저거 먹고 얘들 키우고 살아야지.
나는 그저 고맙다우.
이제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걸-

복지관에서 먹는 식사가 아점이며 오후 3시에 시장의 야채 가게로 가서 밤 10 시 까지 야채 손질과 정리 일을 해서 버는 돈 사십만원이 전부인 미소할머니 의 웃음과 바지런은 우리에게 많은 느낌을 주었답니다.
사글세 십 오만원,
모든 공과금 약 삼만여원,
나머지 이십여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일이 가능한 것이 너무 신기해서 우리들은 이야기 하면서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습니다.
우리들이 미소할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식반에 한 국자 더 얹어 드리거나 집에서 챙겨온 여러가지 물건들을 남 몰래 드리거나, 어버이날 작은 선물을 해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참 변함없이 식반의 음식을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먹고 주변을 돌봐드리고, 웃고 그렇게 일년여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미소할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 하루 안나오는 날이 있기에 첨엔 그런가부다 생각했다가 일주일 뒤 갔을 때도(우리는 일주에 하루 봉사합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그 동안 계속 나오지 않았다는 영양사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틀림없이 병이 나서 안오는데 그럼 식사 는? 어머 !! 큰일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데!
엄마야 !집도 몰라.
이 동네 안 사나봐!
우리들은 주변의 시장 세 곳을 찾아가 샅샅이 탐문을 했으나 미소할머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언젠가 어디 사시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ㅇㅇ동에 산다고 했기에 아주 오지랖이 넓은 친구와 둘이서 그 동네의 허름한 집을 다 돌아보기도 했답니다.
친구는 망연자실해서 울면서 자기 가슴 을 손으로 마구 치더군요.
혼자 의식을 잃고 그대로 죽으면 어쩌냐 면서, 우는 친구를 보는 내 마음도 무겁 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이상한 소문 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소할머니가 어떤 노인과 바람이 났다 는 소문을 들은 우리들은 경악했지요.
우리가 보는 미소할머니는 여자라고 보기엔 전혀 아니었거든요.
머리는 거의 백발이고 나이보다 주름이 많은 얼굴에 더구나 아랫니는 거의 치아 가 빠져, 웃으면 그 모습이 대단히 희극 적이어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많이 놀렸습니다.
그러면 더 크게 웃고 그 웃는 얼굴에서 깊은 위안을 얻었음을 우리는 저마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손은 또 얼마나 거친지 그녀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남자와 바람이 났다?
우리는 그런 상상 자체가 기가 막혀서 마구 비웃었지요.
그 소문의 근거는 나름 구체적이었고
봤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멋진 노신사와 칫과에 온 것을 봤다는
말에 우리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복지관에 자주 와서 점심을 먹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 분도 미소할머니와 같은 시기에 복지관에 일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키도 크고 말이 없는 아주 점잖은노인이 어서 우리들도 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근사하게 늙은 사람도 혼자 되어 끼니가 간 곳이 없음을 가끔 이야기 꺼리로 삼아서 주고받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들은 더구나 말도 안돼!
이구동성으로 소리쳤으나 미소할머니 의 행동이 여러모로 수상했다는 말까지 번져 갔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기적시리즈

버스를 함께 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