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9-22 15:21

ㆍIP: 58.xxx.93

기적시리즈

-기적-(3-5)

권영심

아이를 영어학원에 데려다 주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서둘러 가다가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교차로를 막 지난 길에서 사중 충돌이 일어났는데 그녀의 차는 세 번째 서 있다가 부딪히게 되었지요.
튼튼하기로 이름 높은 외제차여서 그랬는지 차는 멀쩡했는데 그녀는 차 안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내는 잠이 든 것 처럼 보였고 외상은 한 군데도 없다고 의사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재 임신중이셔서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안정해야 합니다.
지금 임신 초기여서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캄캄해지는 의식을 그러모았습니다.
그녀를 일인실로 옮기고 간병인을 오게 하는 등 침착하게 행동하는 그의 표정이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 의식을 차린 그녀 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아저씨 나 많이 다쳤어?
갑자기 어지러워서 기절한 것 같은데...-
그녀는 자신이 기절해서 교통사고가 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그저 많이 자고 쉬어야 한다고만 말했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몸이 안 좋았어요,
자꾸 어지럽고...밥도 먹기 싫고...
술 마시면 구역질도 난다니까.
아저씨 나 큰 병 걸린거야?-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으리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건강 검진을 다했습니다.
아내는 별다른 이상 없이 건강했고 임신 5주 째 만 확인 되었습니다.
남편인 자신이 직접 말하겠다고 의사에 게 말해 놓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돌봐 주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는 장식장에 가득한 양주들 중에 아무거나 들고 와 생전 처음으로 폭음을 했습니다.
그는 평소 술을 좋아하는 정도였고 술자리를 만들어 음식을 먹고 음담패설 을 하며 즐기는 애주가일뿐.
혼자서 술을 폭음하지는 않았습니다.
포기했지만 기적처럼 생긴 아이...
그러나 이 아이는 그에게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 부터 한 두달에 한 번 정도.
부부생활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약을 먹고 가능했기에 아내는 그가 원하면 언제나 웃으며 응해주었고 그는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그의 아이는 아들 하나로 끝났고 그 아들이 무사히 어른이 되어 평생 원하는 삶을 사는 것만이 소원이었지요.
그 옆에서 아내가 언제까지나 있어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축복 처럼 생긴 아이...
이 아이는 그의 핏줄이 아니었습니다.
핏줄일리가 절대 없었습니다.

울면서 술 두 병을 마시고 실신한 그는 아침에 아들의 목소리에 깨어 났습니다.
-와아! 아빠 냄새나!
왜 혼자서 술 마셨어요?
삼촌들이 또 속 썩였어요? 얼굴이 완전 늙었다!
아줌마한테 꿀물 타달라고 할께.-
이미 자신의 키에 거의 근접하는 아들을 와락 껴안으며 그는 또 다시 심장이 옥죄어 왔습니다.
이 아들을 위해 그녀는 용서되어야 했습니다.
이 아들도 그녀가 준 것이었기에.
이제 이 아들은 그의 존재 이유였기에.
아들을 슬프게 하고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 어떤 것도 그는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일지라도.
아들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는 아빠의 등을 때리며 햇살 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웃음.
이 웃음을 잃는다면 그는 숨이 멎어버릴 것입니다;

-엄마에게 가야해,
스쿨버스 타지 말고 있으렴.
삼촌이 데리러 갈거다, 너에게 동생이 생겼단다.
너의 동생이 생긴거야-
아들의 환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답니다.
마치 그렇게도 기다렸다는듯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동생이 생겼다고 소리치며 웃음을 터트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그녀를 완전히 용서했습니다.
그는 아내가 좋아하는 노란 장미 백 송이를 들고 병원으로 가서 임신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낙태하겠다고 소리치며 장미 꽃다발을 집어 던지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마구 던졌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서는 그녀를 두 손으 로 잡아 그녀가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무서운 힘으로 눌렀습니다.
그녀는 알았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책하지 않고 언제나 봐주었다는 것을.
-아저씨...당...신-
그녀의 입에서 당신이란 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답니다.

-아기를 낳아.
내 자식이야. 내 아들의 동생이야.
아침에 아이에게도 알렸어.
너무나 기뻐하고 좋아해.
당신에게서 태어났으니 내 자식이야.
제발...낳아 줘.
앞으로도 당신이 계속 다른 녀석을 만나 도 나는 지금까지 처럼 당신을 변함없이 대할거야.
당신은 그 놈들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난 알아.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보호하고 있어.
당신이 다치거나 잘못되면 내 아들도 나도 살 수가 없어.
당신이 지금 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마음껏 무엇이든지 하며 사는 것만이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오직 유일한 한 가지야.
당신이 그 날 내게 선물로 왔을 때 나는 당신이 죽으라면 죽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지금 택해줘.
아기를 낳든지,
나를 죽으라고 하든지...-
그가 흘리는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적시고 그녀의 눈물과 합해 졌습니다.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 안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그녀는 때려도 울지 않고 더 말갛게 쳐다보는 것을 끔찍히 미워했었습니다.
그녀는 울지 않는 아이였지요.
우는 대신 웃었습니다.
웃으면 사람들이 이뻐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아주 어릴 때 부터 알았습니다.
그도 웃음으로 얻었고 웃으면 무엇이든 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슴에서 눈물 흘리는 그로 인해 이제는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된다는 것 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쪼개져 무언가가 나오는 것을 느꼈고, 처음으로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그 무엇으로 남편의 피딱지진 입술에 키스했습니다.
...하느님,
이 아이가 제발 제발 이 사람의 아이 이게 해주세요, 제발...

자,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만
그냥 끝나면 화나실까요?
ㅎㅎ
그녀는 여자 아이를 낳았고 아들과 남편은 미칠 듯이 기뻐했으며 그녀의 생전 처음의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딸을 처음 본 순간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핏줄임을 알고 정말 심장이 터져 죽을뻔 했답니다.
아들은 엄마를 그대로 닮았으나 딸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였으니까요.
마치-아빠!
나 이제 아빠에게 왔어,
나 사랑해줄거지?- 말하는 것 처럼 아기 는 그와 꼭 닮은 외꺼풀 눈으로 똘망 똘망 바라보았답니다 ㅎㅎ.
지금 이 가족은 캐나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두 아이의 안전한 삶을 위해 그 먼 곳에 보금자리를 택했고 한국을 왔다 갔다하고 있습니다.
참!
그녀는 그를 위해 정말 완벽한 아내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더 그를 사랑한답니다.
정말 그에게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
그렇게...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심장이 옥죄어진 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기적을 찾으셨나요?
부디 그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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