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9-18 17:12

ㆍIP: 58.xxx.93

기적시리즈

-기적-(3 - 1 )

권영심

그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서 버려져서 고아원에서 모진 고생 끝에 16세에 도망나와서 거리의 아들로 살았지요.
작달막한 키에 사나운 눈빛과 모질어 보이는 입매의 얼굴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별별 일을 다하면서 점점 어른으로 성장한 그는 얼굴에 새겨지는 흉터로 인해 더욱 무서워졌습니다.
왜소한 체구는 여전했으나 설흔이 넘자 그는 어느새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위 사채업자로 악명을 날리고 마흔이 되어갈 즈음에는 사무실이 세들어 있던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빌딩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돈을 다 벌리라 마음먹은 것 처럼 사무실 구석에서 먹고 자면서 잔인하고 냉혹하게 채무자들에게 군림 했지요.
그 누구도 그에게서 빌린 돈을 갚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오로지 그 재주만 타고난 것 처럼 그는 다른 그 어느 것에도 관심도 흥미도 없이 돈에만 집착했습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 직원들은 매일 그가 오는 시각이면 얼어붙을 정도로 긴장해서 지레 늙을 지경이었습니다.

엄청나게 쌓이는 은행 잔고를 등에 업은 그의 모습은 아무 관계없는 사람도 그냥 피해갈 정도로 무언가 알수없는 기운이 느껴졌지요.
그가 나타나면 쩔쩔매는 지점장과, 직원 들을 상스런 말투로 하대해도 아무도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는 그 은행에서 가장 많은 돈을 예치 한 고객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두 명의 직원들과 아침의 업무를 보고 나서 그는 항상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지점장이 시켜주는 짜장면 곱배기를 먹고나서야 은행을 나왔답니다.
그 이후 채무자들을 찾아다니며 받아낼 돈을 받고 밤 늦게 사무실로 돌아와 티비를 보다가 간이침대에서 웅크린채 로 잠들었지요.
그 어떤 것도 그의 흥미와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돈 이외에는.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돈귀신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날도 그는 은행으로 갔습니다.
문을 열자 -어서 오십시오-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 다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어서 오시라는 인사의 목소리들 가운데 낯선 음성을 감지해 내었던 겁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 게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지점장이 옆으로 왔으나 그의 차거운 눈빛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고 있었습 니다.
그의 눈은 고객을 응대하고 있는 한 여직원에게서 멈추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저 여직원이 언제 새로 왔소?-
-아 예... 오늘부터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
지점장의 말을 무시하고 그는 그 여직원 에게로 갔습니다.

여직원은 다른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고 그가 창구 앞에 오자 활짝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앉아서 좀 기다리세요 아저씨,
이 분이 먼저니까요-
지점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의 얼굴이 노래졌습니다.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 직원은 그녀가 처음이었지요.
허둥지둥 다가오는 지점장과 직원들을 손으로 제지하고 그는 참으로 오랫만에 대기자 명단에 용무와 이름을 써서 내고 앉아서 기다렸답니다.
(그 때의 은행은 차례가 되면 손님들 이름을 불렀지요)
팔짱을 끼고 앉아 여직원을 노려보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숨막히는 긴장 속에 지켜 보았답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김ㅇㅅ씨-
여직원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마흔 다섯이 되도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심한 통증 비슷한 것이 가슴을 휩쓸고 지나감을 감지했습니다.
창구 앞으로 가자 여직원은 활짝 웃으며 용무를 물었습니다.
아주 어려보이는 여직원은 웃으면 볼에 깊은 보조개가 폭 패이면서 치아가 희고 가지런해서 참 예뻤습니다.
그는 말 없이 낡은 손가방을 창구에 내밀었습니다.
여직원은 가방을 열어 돈다발을 꺼내면 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어느 여직원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와! 아저씨 대단하시다
이렇게 많은 돈을 다 다렸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사실 그는 사무실에서 티비를 보면서 다리미로 돈을 다리는 일이 낙이라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구겨진 돈을 다려 반듯해질 때의 그 냄새를 너무나 사랑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채고 말해준 사람은 그 여직원이 처음이었지요.
입금을 다 하고 돈을 보낼 곳에 보내고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여직원은 종달새 처럼 종알종알 말을 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에게 묻지않았던 질문들을 그렇게 스스럼없이 묻고 웃고 ...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 듣고싶어 더듬더듬 대답하고.
그가 은행에서 짜장면 곱배기를 먹지 않 고 나온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그 날 이후 은행의 직원들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 났습니다.
그는 상스런 말로 하대를 하지도 않았고 지점장실에 가지도 않았고 엉뚱한 트집 을 잡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창구에서만 업무를 보고 그녀만 보고 갔습니다.
그랬지만 그녀에게도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안심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그녀와 서툴게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웃고 입매가 웃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별다른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녀는 다른 고객 누구와도 그렇게 이야기를 잘하는 성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시작되고 있었답 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화점에 가서 돈다발을 내밀고 직원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상상치도 못했던 거금을 쓰면서도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를 도무지 몰랐습니다.
-엄마야! 아저씨
양복이 참 잘어울려요 멋있어요-
그를 보고 그녀가 손뼉까지 치면서 웃자 그는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기적시리즈

나마스테,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