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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9-14 20:45

ㆍIP: 58.xxx.93

화상 제사

화상 제사

권영심 ( 2021 , 9 , 14 )

나는 그야말로 기계치이기 때문에 회의
를 할 때 마다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요즘은 모든 회의가 비대면의 화상 회의
를 하기 때문이다.
줌을 설치하고 그 날에 오는 내용을 받아 클릭하면 회의 초대가 되는데 항상
음소거 부분에서 헷갈린다.
며칠 전에는 가게에서 관계자와 함께
대규모 여성 회의에 들어 갔는데 화상에
서는 거대한 원탁 회의에 내가 있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더 진화 하겠구
나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가끔 만나는
지인이 찾아와서 한 참 자랑하는 내용이
놀라웠다.
이 지인은 칠 남매의 맏이에게 시집가서
넷 째부터 본인이 시집 장가보낸, 그야 말로 기가 막힌 시집살이를 치른 사람이다.
특히 제사가 많아서 음식 장만하기에 골이 빠진다고 표현할 만큼 힘들어 했다.
칠 남매의 식구들이 모두 맏이 집에 모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소연하는 내용을 들으면 믿기
힘들 정도이다.
동서들이 도와 준다지만 어마어마한 음식 장만에서 잠시도 쉬지 못 하고. 차려내는 술상, 밥상에 엄청난 설거지까
지, 그녀는 제사나 명절을 지내고 나면
며칠은 앓는단다.
며느리를 둘이나 맞이했으나 다 직장에
다녀서 도와줄 엄두도 못 내고 아예 시
키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와서 비밀스럽게 속삭이는
말이 차라리 코로나가 고맙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모이지 못 하게 하니 음식을
적게 하고 설거지도 없고 그러니 너무
편안해서 혼자 웃는다고 했다.
그런데 드디어 제사 음식에서 완전 해방
되었다고 만세란다.
아이들이 모여 서로 의논하기를 올 추석
부터 화상 제사를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화상 제사?
그러나 나는 금방 알아 들었다.
수 차례 줌 회의를 해보았고 그게 가능 함을 나는 알아 들었다.
칠 남매 모두 줌을 설치하고 명절 당일,
아이들이 주도해서 각자의 집에서 한복
으로 다 차려입고 절을 하기로 했단다.
제삿상은 프로그램으로 근사하게 만들
고 돌아간 사람의 사진도 마치 생시 처럼 만들어 미리 보았노라고, 너무 좋고 신기해서 죽겠다고 웃었다.
명절에 식구들이 휴가를 가서 그 곳에서
인터넷으로 제사를 지내는 집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보다 화상 제사가
훨씬 낫지 싶다.
성인도 시속을 따르라는 말이 있으니 이
제 혼백도 이 현실을 따라가야할 모양
이다.
흠향하시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혼백은
음식을 직접 먹는 것이 아니라 그 향기
와 정성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으로 만든 제삿상에서
혼백은 무엇을 흠향할까?

이제 혼백도 인터냇을 배워 줌 안으로
들어가야할 시절이니 어찌 할까?
너무 좋아하고 아들을 기꺼워하는 지인
에게 초를 칠 수는 없고 그저 들어 주면
서 잘 됐다고 말해주었다.
수 십 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리 좋을 까 하는 연민도 들었다.
형제가 많은 집의, 그것도 제사나 행사
때 며칠 밤을 고생하면서 음식을 만드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허리 한 번 못 펴고 수없이 차려내는 모습을 예전에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었으나 결국은
모두 여주인의 몫이었다.
이제 그런 세대는 사라지고 코비드가
없어져도 화상 제사가 더 성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 명절 전 날의 가장 큰 느낌
은 음식 냄새였다.
온 동네가 지지고 볶고 굽고, 혼령은 기
름 냄새를 따라 오는 것이라면서 식용유 를 아낌없이 써서 전을 그렇게 부쳐
내었다.
시간이 지나 다 못 먹어도 걱정할 필요 가 없었으니 냄비에 남은 것을 몽땅 넣고 끓여 먹으면 되었다.
그 냄새가 사라질 즈음에 명절이 끝나감
을 알고 사람들은 다음 명절을아쉬워
하면서 기다렸다.
이젠 모두 흘러간 옛 사랑의 노래가 되었으니 아쉬워 함이 서글프다.
매일 먹는 밥도 배달시켜 먹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제 명절 음식이란 말도
사어가 될 날이 머지않은 듯 하다.
지인은 화상 제사를 지내고 식구들과
함께 뭐든지 배달시켜 먹을 거란다.
참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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