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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7-07 17:28

ㆍIP: 223.xxx.153

나는 무엇이 괴로운 걸까?

나는 무엇이 괴로운 걸까?

권영심 ( 2021 , 7 , 7 )

열 명이 넘게 모여서 대형 꽃꽂이와
백 개가 넘는 코사지를 만들고 있었다.
큰 티비를 틀어 놓았었는데 나는 커피
핑계를 대고 몇 번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
었고 티비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너무
힘들어 자리를 비우곤 했었다.
어느 사극을 연달아서 계속 보여 주었는
데 그 내용이 내게는 너무 힘들었다.
왜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는데 악독한 여자가 어느 왕세자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그 내용을 안 봐도
환히 알고 있는 것을 드라마로 재구성
해서 보여주는 것은 보기가 괴로웠다.
그것이 내 병 중의 하나다.
정신의학적으로도 병명이 있다는데
그것은 모르겠고 암튼 나는 모든 불행하
7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의 동물 이나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 한다.
피 흘리고 고문 당하고 갇히고 괴롭히는
폭력적인 상태의 어떤 장면도 못 보는
것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볼 수가 없다.

그 사극의 주인공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
는 정조대왕이었다.
정순왕후와 화완옹주의 악독한 짓거리
가 너무나 싫고 괴로웠다.
그러니 그녀들이 나오는 장면에 일어서
서 나올 수 밖에.
다른 사람들은 엄청 재미나게 보면서
일했다.
다른 것을 보자고 할 수도 없었고 또
그래서도 안되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애저녁에 포기했고 재생해서 보는 것은 내가 편집해서 본다.
어떤 장면이 나오면 바로 그 뒤의 것이
예견되기에 휘리릭 초고속으로 돌려
버리고 내가 보기에 편안한 장면만 보는
것이다.
꽃꽂이를 할 때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
는 몇 번이나 휴게실로 나와 앉아 있는
데 회원 한 사람이 뒤이어 나와 커피를
뽑아들고 마주 앉았다.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뒤이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정조대왕을 굉장히 좋아 하시죠?
정말이지 나는 너무나 놀라 입만 뻐끔거
리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조대왕을 너무나 좋아해서 드라머에 서라도 그가 핍박받는 장면을 못 보고
자꾸 밖으로 나온 것 아니냐고 계속 말
하는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나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또 역사이야기
를 회원들과 나누지도 않는데 마치 집어
내듯이 내 마음을 맞추는 그녀에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바로 그런 병이 있기에 눈치 채었다고 말해서 우리는 일도 잊고 한
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모든 동물의 영상을 못 본다고
했다.
실생활에서도 동물이 싫은데 영상으로
보는 동물의 모습은 너무나 괴로워서
병원에까지 갔었다고 했다.

뭐가 계기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
데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의 영상도
보기 힘들어 괴로움을 많이 겪었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받은 위안은
말도 못 한다.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종류는 다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또 어떤
것을 못 견뎌 할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많이 있지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엔 잔혹하
고 무서운 악령 영화나 호러 영화를 무리없이 보았었다.
무서워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못 볼 정도
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안 보고 볼 생각조 차 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 내가 그 주인공인듯 고통스럽고 무서우니 , 그냥
영화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내겐
소용없다.

그러니 행복하고 즐겁고 웃음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만 보게 된다.
요즘 시즌 3에 들어간 어느 드라마는 인
기가 많은 모양인데 나는 일부러 전혀
한 장면도 안 본다.
거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귀
신보다도 더 무섭다.
내용도 무섭고 사람들도, 심지어 학생으
로 나오는 사람들도 소름이 돋도록 무서
워서 채널을 다다다 돌려 버린다.
이 상태가 비정상이라는 것, 나 스스로
알지만 굳이 병원에 가서 치료할 생각은
없다.
무서우니까 안 보면 되지,
실제의 무언가는 전혀 무섭지 않다.
내 심정에 닿아 파문을 일으키는 감정 중에 어느 것은 남달리 파장이 심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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