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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7-05 20:55

ㆍIP: 223.xxx.211

비오는 날이면 그대를 찾아 헤멘다

#권영심의글
비 오는 날이면 그대를 찾아 헤멘다
권영심 ( 2021 , 7 , 5 )
그는 토끼띠여서 아직 예순이 안 되었다.
가게에 다니기 시작한지가 몇 년이 되었
으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는 소주와 감자전과 냉커피를 시켜 놓고 혼자 구석진 곳에 앉아 길게는 두
시간을 머물렀다.
그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라는 것 을 언제부턴가 느끼게 되었는데 가끔
낮에도 일찍 문을 열고 음악을 틀어 놓으면 어김없이 그가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반드시 늦게라도 왔다.
그는 혼자 구부리고 앉아 말 한 마디 없이 술을 마시고 갔다.
아니, 술을 마시면서 흐느껴 울고 그 어깨가 들먹이는 것을 나는 보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손님이 있으면 이삼십 분 있다가
가고 아무도 없으면 그랬다.
아마 다른 가게에선 주인이 화를 내거나
울지 말라고 타박을 했을 것이다.
울면 재수없다고 하는 것이 업소들의
지키는 법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싸우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지않는 이상, 손님들이 잠시 엎드려서
자더라도 그대로 놔 둔다.
그러니 비 오는 날이면 와서 혼자 울음 과 함께 술을 마시는 그를 나무랄 일이
없다.
몇 달 씩 안 올 때도 있지만 그는 몇 년
동안 그렇게 비와 함께 찾아 왔다.
몇 주 전, 오후에 예약이 있어 일찍 문을 열고 준비를 하는데 그가 왔다.
그러더니 날더러 커피든지 뭐든지 한 잔
가지고 잠시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궁금했던 차라 커피를 들고 마주 앉았는데 나이며 여러가지를 다 말하더 니 내 가게에 오는 이유를 말했다.
처음엔 음악에 끌려서 왔고 지금도 그렇
다고 하면서 느닷없이, 비 오는 날에 아내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홉 번 이사 다니다가 아파트를 사서 들어가서 네 식구가 그렇게 행복해 했었단다.
직장에서도 승진해서 이제야말로 사는
듯이 살아 보겠다고 했는데 어느 가을의
비 내리는 날, 아내가 아파트에서 그냥 투신했다.
그렇게 아내가 가고 나서야 아내가 오랜
시간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닌 것을 알게
되었단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딸이 중학교1
학년 때의 일이었고 처가에선 사람 취급 을 하지 않으며 인연을 끊었다고 말하면
서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수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미치겠단다.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에 가기도 하고
온 도시를 헤메며 비를 그냥 다 맞고 다닌다는 그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 아이들은 다 커서 집을 떠났는데 그 혼자만 사랑하는
그대를 찾아 헤메고 있다.
아내를 사랑했고 고생시킨 데다가 그런
병을 앓고 있은 것을 전혀 몰랐던 죄책
감까지 더해서 그는 영원히 잃어버린
그대를 심장에 묻었나 보다.
나는 죽은 아내에게 그대라는 호칭을
쓰고 그 죽음을 십 년이 지나도록 애도
하는 남편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오늘 비오는 날, 그가 또 왔다
그는 원래 그랬듯이 구석진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었다.
나는 소주와 감자전을 만들어 주었고
커피를 들고 그의 앞에 앉았다.
그는 소주 반 병을 마신 후에야 입을 열
었는데 그대가 있는 곳에 다녀오는 길이
라고 했다.
왜 아내를 그대라고 부르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그렇게 호칭하는 것을 좋아했는
데 살아있을 때는 잘 불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눈물부터 흘리면서 아내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 결혼했으며 아이를 언제 낳고 어디
서 이사하고... 그리고 죽어서 사라져
버렸다.
아내가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보고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
의 진심이 녹아들듯이 느껴져 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아내의 영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 것인지
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랑도 있다.
웃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 만 결코 함부로 비아냥거려서는 안 된다.
비가 내리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잡아 끌듯이 도시를 헤메고
다닌다.
이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그대를 찾아
헤메다가 지친 몸으로 내 가게에 와서
한 잔 술과 음악으로 그나마 위안을 얻고 간다.
아무도 없는 집에 쓰러져 자고 눈 뜨면
모래 사막에 버려진듯이 무서운 공포에
쌓여 그대의 사진을 보며 또 운단다.
이 세상에 없는 그대,
사랑했던 흔적만이 남아서 어이할까?
어느 시인은 가장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자라고 노래했던가...
그렇다면 죽은지 십 년이 지나서도 잊혀
지지 않는 그대는 행복한 여인인가?
비가 올 때 마다 그대를 찾아 거리를
헤메는 그대의 남편은 대체 어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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