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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4-27 03:26
ㆍIP: 223.xxx.51
내가 만드는 맛의 이야기
#내가만드는맛의이야기    4  

           권영심  

엄마의 팥칼국수 ,설탕국수

어릴 때 엄마가 자주 끓인 팥칼국수는 동네 잔치 음식이었다
전라도 광주 송정리가 고향인 엄마는 그 곳 여인들의 특유의 손맛을 타고나진 않았다
친정에서 보내 준 식모 언니가 거의 있었고 내가 많이 하기도 해서 그런지 엄마는 식구들의 식사를 맡은 적이 별로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엄마는 몇 가지 음식을 잘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팥칼국수였다
워낙 부모님이 면을 좋아해서 하루에 한 끼는 냉면 ,국수를 먹었기 때문에 식구들도 팥칼국수를 좋아했다
그러나 설탕 국수는 절대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설탕을 잔뜩 넣고 찬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엄마를 이해할수가 없었다
엄마의 자랑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가 자신은 한 번도 사카린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부잣집에서 설탕이나 꿀을 감미료로 먹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설탕물에 말아 먹는 국수라니?
나는 보기만 해도 비위가 상했다
그러나 음식과 관계된 공부를 하면서 설탕 국수는 전라도 지방의 어엿한 음식인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설탕이 옛날엔 무척 비싸고 귀한 것이었고 여름에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 설탕을 넣고 국수를 말아 먹을 수 있는 집은 부잣집이었다
놉을 사거나 두레를 할 때 새참으로 설탕 국수를 만들어 내어 오면
대환영을 받았다
별다른 단맛이 없던 시대에 달콤하고 배부른 설탕 국수가 힘든 일을 하고 난 몸에 활력과 원기를 주었을 것이다

엄마는 여름이면 냉동고에 얼음을 채워 넣고 소면을 잔뜩 삶아 언제라도 설탕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반찬은 소주 두세잔.
그 힘으로 밤 11시 까지 장사를 하면서 시장 사람으로 즐겁게 살았다
아버지의 소천 후 엄마는 팥칼국수를 끓이지 않았고 딸들의 몫이 되었다
가끔 허천이 든 듯 팥칼국수가 먹고싶을 때가 있다
한 솥 끓여서 뜨거울 때도 먹고 식은 뒤 먹는 것도 별미다
한 번 끓여 볼까나...
예전에는 국수를 밀었는데 시중에 별별 면이 다 나와 있어 끓이기가 무척 쉽다
레시피도 간단하다
그런데 팥을 삶는 데 요령이 필요하다
준비  팥 1K  칼국수면 소금 설탕 땅콩

1   팥을 그릇에 담고 박박 문질러 씻어 버리고 두세번 더 씻는다
2   냄비에 찬물과 팥을 넣고 팔팔 끓여 얼개미에 부어 물을 버린다
첫 물을 버리지 않으면 기분나쁜 쓴 맛이 감돈다
3   물을 팥의 세 배 정도를 붓고 소금을 조금 넣어 끓어 오르면 중불로 줄여 30분 삶아 불을 끈다
4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30분 정도 둔 다음 다시 중불로 30분 끓인 뒤 그대로 뜸을 들인다
이렇게 하면 팥칼국수를 할 정도로 충분히 잘 물러진다
5   옛날에는 면보에 팥을 담아 소만 짜 내고 팥 껍질은 버렸지만 지금은 믹서에 넣어 전체를 갈아 낸다
여성에게 좋은 성분이 팥 껍질에 많이 있으니 버리지 말고 전체를 잘 갈아서 쓰는 것이 좋다

성능 좋은 믹서는 너무나 곱게 갈아주기 때문에 제대로 잘 삶는 것이 중요하다
준비된 팥을 솥에 넣고 물을 부어 농도를 맞춘 뒤 저어가면서 끓인다
끓어 오르면 칼국수 면을 넣고 푹 익도록 끓여 그릇에 담아 낼 때 , 땅콩 조각들을 얹어 내면 보기도 좋고 먹을 때 식감이 훌륭하다
설탕과 소금을 준비해서 각자 식성대로 넣어 먹는 것이 좋은데 울엄마는 큰 수저로 서너개씩 넣고 먹었다
뜨거울 때 먹어도 맛있지만 식은 뒤 숟갈로 떼어 먹는 맛도 그럴듯 하다
나는 팥을 참 좋아해서 많이 넣는 편이기 때문에  팥의 양은 각자 짐작해서 하시도록.
팥칼국수를 끓이면 내 기억은 리셋되면서 모든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 먹던 그 저녁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 그리운 시간... 몸부림치며 울고 싶도록 그리운 그 시간은 이제 내 생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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