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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6-26 20:14
ㆍIP: 223.xxx.147
진정한 돌봄과 헌신
#권영심의글
진정의 돌봄과 헌신

        권영심 ( 2021 , 6 , 26 )

지금은 소식이 끊어졌으나 십여년 전에
알던 의사가 있다.
그를 안 것은 어느 역에서 밥 봉사를 할
때였고 목에 걸린 청진기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를 다른 노숙자와 별반 다르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의사였고 마치 허준
처럼, 아무것도 없이 병만 가지고 있는
환자들 속에 항상 있었다.
그가 의사인 것만 알 뿐, 한 달에 두 번 와서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밥을 나누어주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알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의사가 말을 들어주고 청진기를 대고
진찰해서 처방전을 써주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없는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
이 되었는지 신이 알고 우리가 알았다.
그 곳에 봉사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거의 그렇듯이 자신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 로 나누고 함께 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일 년에 한 두달,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봉사회에서 오랜 시간 주방을 맡고 있던
수사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된 것이다.

그는 일 년에 한 두달,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 지원 봉사를 하고 돌아 온다는 것이었다.
십 년이 넘었다면서 진정한 선의 구현자
라고 수사는 성호를 그었다.
그 때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그와 말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어느날 간이 식탁에 혼자 앉아있는 그
에게 커피 한 잔을 갖다 주면서 보면 인
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나이를 떠나 굉장히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속내까지 털어 놓기도 했다.
일 년이 다시 지나고 그가 아프리카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너무나 힘들어 했다.
배식과 설거지가 끝나고 한가한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커피를 가지고
갔다.
그는 이제부터 아프리카에 가지 않을
것이며 밥봉사도 올해 연말이 끝이라고
하면서 커피를 단 번에 마셨다.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나는 가만히 그 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마치 혼잣말을 하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고 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데 그 이유
가 분노라고 해서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나는 아프리카를 가본 적도 없으나 그가
왜 분노하는지 알것 같아서였다.
그는 아프리카에 와서 구호 활동을하는 거대 봉사 단체들에 분노했고 아프리카 의 기막힌 빈민 국가들을 이용해 먹는 수 많은 커뮤니티에 분노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치료하고 도와줘도
절대 달라지지 않는 그 본래의 아프리카
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작년에 배가 부른 소녀는 올해 또 가 보면 여전히 배가 불러 있고 그녀가 낳은 아이들은 구호 원조로 살아가면서
카메라의 피사체가 되는 모습들이 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홍보 사진을 찍는 모델을 찾으면서 어떻
게든 더 병들고 더 뼈가 튀어 나오고 배
는 동산만한 아이를 찾는 그 잔혹함에
그는 절망했다.
아무리 치료하고 또 치료해도 돌림노래
처럼 아이들은 같은 병을 앓고, 아기를 낳은 여자들은 또 임신해서 배가 부른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는 무표정한 얼굴
이 그를 절망하게 했다.
그날 그가 두 시간 동안 쏟아놓은 충격 적인 이야기들을 다 쓸 수가 없다.
몇 번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으나 그렇게 적나라한 실상을 들
은 것은 처음이었다.

개선할 수 있다고 , 좀 더 나아질 거라고
믿으며 십 년을 넘게 다녔으나 그는 이제 자신을 위해 그만둔다고 했다.
아프리카를 완전히 잊고 경치가 좋은
아주 작은 도시에 병원을 개원하여 사람
의 삶을 살아갈 거라고 했다.
사람의 삶...
한적한 길 모퉁이에 작은 병원을 지어서
노인과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아주 좋은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아프리카를
잊겠노라고 했다.
이제 결혼도 할거라면서 허허 웃는 그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나는 그의 두 손을 잡아주며 진심으로
그의 생각을 응원해 주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의료 봉사를 했든지
그는 숭고한 헌신의 삶을 살아 왔음을
하느님은 알아줄 것을 믿는다.
여리고 예민한 심성으로 보게 되는 부조
리와 불합리한 모든 것이 얼마나 고통스
러웠을지 나는 너무나 느껴졌다.
그는 그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전번을 교환하지 않았으나 그는
내 번호는 적어갔고 편안해지면 전화
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전화가 오지 않았으니 그는 아직
도 편한 삶을 찾지 못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어느 곳, 아니면 그토록 지
긋지긋해 하는 아프리카로 아예 가버린
것일까?
요즘 아프리카의 구호지원을 요청하는 방송이 엄청 늘었다.
몇 단체에서 연이어 방송되는데 우리
연예인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들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 모습이 진심인가 아닌가는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인간 세상은 어차피 수많은 부조리와
오류 속에서 그나마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심정속에 진정한 헌신의 조각들이
존재하기에 아프리카의 고통이 조금은
줄어든다.
방송을 볼 때 마다 그 의사가 떠오르면 서 지금은 그저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검은 대륙에서의 불가항력적이었던
모든 것을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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