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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6-25 12:40

ㆍIP: 223.xxx.125

이 놈의 유월이 또 오네

이놈의 유월이 또 오네

권영심 ( 2021 , 6 , 25 )

아이고, 이 놈의 유월이 또 오네!!
어느날 문득 달력을 보다가 엄마가 큰
소리로 내뱉는 말이다.
아버지가 옆에 있으면 그 목소리는 더
커졌다.
아버지는 그 말에 대꾸를 하는 일 없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따라 나온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같이 걸었다.
아무 말 없이 걷기도 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태종대를 가기도 했다.
그 때의 태종대는 입구에서 내려서 걷기
가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또 그 곳은 봄 가을에 이북오도 도민 위안 잔치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게 걸었으나 나
는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다리 아프다 고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태종대의 숲과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북돋우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서
몇 시간동안 물빛만 바라보면서 그렇게 있었다.
나는 혼자서 그 주변을 다니거나 가만히
바다만 바라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중국집에 가서
나는 탕수육, 아버지는 짬뽕과 빼갈을
마시면서 그때서야 입을 열었다.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처럼, 이북에 있
는 고향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 , 제사나
의례를 지낼 때의 번성함, 음식이나 옷의 이야기를 마치 어디선가 꺼내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버지는 끝내 눈물
을 보이곤 했다.
나는 알수없는 안타까움으로 아버지의
곁에 있었으나 그 이야기 속에 서리서리
얽켜 있는 그리움의 한 가닥도 위로하지
못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 듯 했다.
돌아와서 엄마의 쏟아지는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으나 아버지는 마리야가
옆에 있어서 멀쩡하게 돌아온 줄 알라우
, 그렇게 소리치며 노래를 불렀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방에 누워서 가만히 부르는 그 노래는
온통 눈물이었다.
숨 죽이는 흐느낌이 노래로 변한 듯 그렇게 들려 엄마는 몸서리쳤다.

그렇게 유월은 하루하루 무겁게 지나갔다.
유월은 아버지의 어깨가 무너지는 달이 고 아버지가 침묵하는 달이고 아버지의
눈물이 멈추지 않는 달이었다.
혼자서 술상을 앞에 놓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면서 , 그이들이 보고싶어 울면서 아버지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
어 유월이면 아버지를 어딘가로 이끄는
듯 했다.
그 어딘가... 그 어딘가는 분명 이 땅에
있건만 아버지는 절대 갈수 없었고 그
고통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의 옆에서 가만히 있었
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나를 끌어 안고
황소 울음을 울거나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물새우는 강 언덕...물새 우는 고요한 강
언덕에를 부르는 아버지의 음성은 눈물
의 강이었다.

늘 부르는 노래는 두만강 푸른 물이었다.
아버지의 노래 속에 있는 물새 우는 강
언덕과 두만강을 나는 꼭 가 보겠노라고
약속하곤 했다.
아버지가 몹시 기뻐하기 때문이었다.
- 그래? 가 보갔네? 내가 걷던 그 언덕과
두만강변을 마리, 니가 가 보갔네?
암, 그렇고 말고, 나는 이제 못 가더라도
너는 갈 수 있을 거이야, 내 고향 뒷 동산
에도 갈수 있디... -
갈 수 없는 고향에의 그리움과 두고 온
가족을 향한 애절함이 사람의 창자를
에이게 하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까?
아버지를 비롯한 이산 가족 1세대는 얼
마나 깊고 깊은 고통을 안고 살아간 것
인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의 참담한 슬픔을 지켜 보았건만
그 애절한 그리움의 한 조각이라도 안다
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6.25가 지나면 아버지는 탈진한 사람
처럼 며칠을 앓았다.
그러니 엄마가 유월이 얼마나 싫었을지
이제는 그 심정을 알겠다
.
이제 우리는 모두 잊고, 잊어가고 있고
6.25는 별다른 날이 아니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동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고
어느 원수들보다 증오했던 그 전쟁을 잊
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 옳은 일일까?
나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남침인 것을
분명히 안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로 봐서도 그 때
남한이 북침을 할 여력도, 필요도 없었
음을 알고 있다.
정치적 영향이나 사상적인 색을 전부 배제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다.
그 진실조차 묻히면서 정치인들이 대답
을 회피하는 이 기막힌 시대가 무엇을
위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유월은 곧 지나가고 또 오고, 그렇게 시
간이 흘러 우리는 무엇으로 그 날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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