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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6-12 17:40
ㆍIP: 223.xxx.197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엔 그렇게  ( 40 )

       권영심 ( 2021 , 6 , 12 )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 그 때 그 시
절엔 많았다.
그중에 움딸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기겁을 할 일이지만 움딸 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완전한 가족으로
인정 받았다.
움딸이 무엇인가?
결혼한 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거나
병으로 죽었을 때 사위와 외손자들만
남게 된다.
그 때 누구보다 먼저 사위에게 새장가를
권유하고 나아가 신붓감을 구해 장가를
들이는 사람이 바로 가시어미다.
죽은 딸은 아랑곳 없이 , 그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새장가를 보내고 아이들
을 보살필 어미를 앉혀주어야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뒤돌아서 피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뉘가 알까?
그 때 후처로 들어오는 사람을 움딸이라
고 불렀다.
죽은 딸의 그루터기에 움이 터서, 이윽 고 무성한 나무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딸이 먼저 가고 사위와 아이들만 남은
집을 돌봐주는 것도 대부분 장모의 몫
이었다.
외가가 있는 한 친가는 일부러 아는 척
을 안 했는데 나름의 배려였다.
아이들을 키우고 사위를 거두면서 장모
는 부지런히 매파를 찾아 움딸이 될 여자를 부탁하며 마음이 급하다.
그것은 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움딸이라는 이름 처럼 새로 시집오는 여인이 자신의 죽은 딸, 대신이 되어준 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겠지만 무엇보다
딸이 남기고 간 외손주들을 키워줄, 심성 고운 여인을 찾아 사위의 짝으로
맺어줄 일이 급했다.
예전, 그 때 그 시절의 계모의 악독한 소
행은 전설따라 삼천리의 이야기처럼
많고도 많았다.
그러니 딸을 잃은 어미는 말로나마 움딸
이 되어줄 여인을 찾아 그저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어미의 자애를 베풀어주기 를 소원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먼저 선을 보고 전후사정 이야기
를 다 하고 심성이 그만하면 되었다고
판단되면 사위를 만나게 한다.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장모가 직접 구해온 신붓감을 거부하는
사위는 거의 없다.
친가에서도 받아 들이면서 자연스럽게
먼저 죽은 며느리가 죄를 씻는다고 여기
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놔 두고 죽는 여인은
천하에 몹쓸 죄를 짓는 존재였다.
움딸은 그렇게 먼저 죽은 딸의 생을 이어 받으면서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 도 무리없이 동화되어 살아간다.
그 움딸을 보살피는 어미의 정성은 남달
랐고 그 마음 덕분인지 아이들이 계모 설움을 그리 겪지 않으면서 자랐다.
내 동무 중에도 움딸의 계모를 맞이한
아이가 있었다.
-우리 어매는 죽었는데 그 아지매가 울
어매 대신이라 카더라, 계모가 아니고 울 어매 대신이라카면서 울 어매 대하드
끼 해야 된다꼬 할매가 그카더라 -

계모가 아니라 죽은 엄마의 대신이라고
강조한 외할머니의 말을 혼란스러워 했던 동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모를 몹시 따랐다.
죽은 엄마는 맏딸이었던 동무에게 일도
많이 시키고 동생을 돌보게 했으나 계모
는 일절 시키지 않았고 몹시 위해주는
것이 우리 눈에도 보였다.
생각해 보면 참 기이한 일이었다.
그 동무의 아버지는 술도 많이 마시고
부부 싸움도 많이 하던 사람이었는데
재혼한 이후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서
보기에도 단란한 가정을 꾸려갔다.
아이 하나를 더 낳았는데 동무는 친 동생보다 그 아이가 더 이쁘다면서 그렇
게 사랑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보살피고
큰 언니의 책임을 넘치도록 다 했다.
놀랍게도 동무는 죽은 엄마의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고 움딸은 그 가정을
아름답게 꽃 피우면서 그 소임을 다 했다.
죽은 엄마를 아주 잊지는 않았겠으나
움딸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다.
일찍 죽은 딸을 대신할 여인을 찾아 사위에게 맺어준 어미의 심정이 어떠할
지는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우리의 옛 여인들의 미덕이란 지금의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들이
많다.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희생해야만 이루
어지던 한 가정이나 가문의 번성과 평화
에 남자들이 보태는 것은 거의 없다.
오로지 그 가문에 시집 간 여인들의 희생과 덕행만이 있을 뿐이다.
골격과 주춧돌만 있으면 집을 세워 가문
을 일으키는 것은 여인들의 힘이다.
움딸은 그와 다르겠지만 큰 맥락으로 보
면 다르지 않다.
한 가문에 시집보내서 일찍 죽은 딸을
애통해 하기보다 그 가문에 폐를 끼쳐서
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더 큰, 옛 여인들 의 심정이 애달프다.
오늘날 만약 죽은 아내의 엄마가 재혼할
여인을 구해준다면 남자들은 기겁할
것이다.
외가와 연을 끊거나 재혼을 위해 아이들
을 맡겨버리는 경우는 있다.
무엇이 더 나은 것일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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