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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6-08 14:32
ㆍIP: 223.xxx.43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에 그렇게  (38)

        권영심 ( 2021 , 6 , 8 )

지금은 몇 명 되지 않는 친구들 접대도
맛집, 식당에서 하고 집들이도 미니 뷔 페를 불러 음식을 차린다.
시댁의 어르신들이 와도 밖의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러나 그 때 그 시절엔 모든 것을 집에
서 만들었다.
환갑 잔치는 물론이요 결혼식 잔치도
집에서 하고 장례식도 그렇게 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무슨 일이든지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음식이다.
빈부를 떠나 사람이 모이면 무엇이라도
먹을 것이 있어야 하니 음식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각자 잘 하는 것으로 음식 부조를 하고
들어오고 만들고 살 것은 사고 하면서
너무나 분주했다.
당사자들은 평소엔 잘 알아도 막상 일이
닥치면 황망하고 어지러웠다.
그 때 과방이 필요했다.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저씨가 그 집 과방이란다 하고 잔치 소식과 함께 이름
이 알려졌고 그렇게 되면 규모가 대번에
짐작되었다.

과방을 보는 일은 , 과방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온 동네의 신임과 인정
을 받는, 보증수표라는 말이다.
여자라면 음식 솜씨와 공정한 마음씨, 너른 두량이 있고 인정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든지 인정하는 사람에게 그 잔치의 과방을 맡긴다.
친척 일가가 맡는 일도 있지만 그 사람 이 인정을 받고 안 받고는 금방 드러나
기 마련이다.
남자 과방은 암암리에 동네 주민들의 이
목이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
어느 집에 장례식이나 혼례식이 생기면
과방부터 챙기는데 과방의 주도가 그 때
의 행사의 규모를 만들기 때문이다.
같은 예산으로 얼마나 규모있게 행사를
치룰 수 있는지가 과방의 역량하에 달렸
고 두고두고 말꺼리가 되는지 안 되는지
도 달렸다.
상을 내갈 때는 독상을 주어야 할 사람,
두레상을 받을 사람을 분별해야 하고
수없이 밀려 드는 각설이패를 비롯한 공
짜 과객들을 얼마나 두량을 하는지도
남자 과방의 역량에 달렸다.

그래서 장례나 혼례를 치루는 주인공들 은 아무 잔 걱정없이 행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버지의 장례 때 우리집엔 여자 넷만
있어 넋을 놓고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하
지 못한 채 일을 치를 뻔 했다.
친가 친척은 아무도 없었고 외가 친척도
번족하지 못 했으니 엄마와 딸 셋은 그저 망연자실했다.
그 때 멀리 출장 가 있던 남편이 계원들
을 비롯한 친구들을 데려와서 온갖 잔 일들을 했고 시장 안의 몇 사람들이 과방을 맡아 주도를 해서 그때서야 장례
는 규모를 갖추어 움직였다.
손님을 대접하는 온갖 음식도 여자 과방
이 주도해서 착착 준비되었고 나중에
장례를 마치고 그들이 내민 계산서를 보
고 지불하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는 그 때 일을 두고두고 고마워 하면서 잊지 못 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누구든지 와서 몇 날
며칠 동안 먹고 마시게 했고 음식들이
놀라울 만큼 많이들 들어왔다.

떡과 고기, 특히 머릿고기는 중요했고 잡채며 나물과 김치 등은 시장의 반찬
가게에서 전부 들여 왔다.
밥은 동네 방앗간에서 떡과 함께 쪄 왔고 그 양이 어마어마했는데 막상 계산
서는 우리들이 예상했던 금액에 못 미쳤다.
엄마는 두고 두고 그 일을 감사하면서
과방을 본 사람들이 가게에 오면 양말
한 컬레라도 손에 쥐어 주었다.
울지도 못 하고 자지도 못 하고 음식도
못 넘기는 나를 붙들고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일러주며 강제로 소고기 뭇국
에 말은 밥을 먹게 하던 애월 아줌니...
그렇게 먹여 주던 몇 숟갈의 밥으로 나 는 아버지를 보내는, 그 참담한 일을 치
룰 수 있었다.
이웃 사촌이란 말의 위력이 실감이 된
그 때 그 시절이었다.
아버지를 보내고 돌아와 보니 방이며
가게 안이며 주방이 씻은 듯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춥고 또 추웠던 그날, 엄마는 이웃 아줌 마가 먹여주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오래 오래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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