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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5-01 15:26

ㆍIP: 58.xxx.182

낙지의 탈출

#권영심의글
낙지의 탈출

권영심 ( 2021 , 5 , 1 )

나는 앞으로 낙지를 못 먹을 듯 하다
원래 즐기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낙지 볶음이나 해신탕 정도는 함께 먹었는데 어제 일로 인해 나는 낙지 족속의 무서 움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한 주에 두 번 씩, 세 사람이 함께 오는 팀이 있는데 오전에 전화가 왔다
낙지탕탕이와 볶음을 준비해 달라는 말
에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자신없기는 했으나 전에 한 번 만들어 본 경험도 있어서 어렵지 않게 할수 있으려니 했다
시장에 가니 마침 힘 좋은 낙지가 있어
마리에 만 원씩 5마리를 사가지고 와서
손님들이 오자 바로 준비를 했다
봉지를 열고 낙지 한 마리를 꺼냈는데
맙소사!!! 맙시사 !!!
순식간에 봉지 밖으로 나온 낙지들의 대
탈주극이 시작되었다

내 비명 소리에 손님들이 뛰어 들어와서
한 마리씩 잡았는데 한 마리는 끝내 사라졌다
낙지의 힘이 얼마나 센지 모두의 주먹에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간신히 세
마리를 봉지에 넣고 일단 묶었다
덜덜 떨면서 한 마리만 탕탕이를 만드는 데 아무리 다리를 잘라도 꿈틀 꿈틀 꿈틀 꿈틀 꿈틀...
낙지 탕탕이를 내갔을 때 나는 완전 녹초가 되어 버렸다
손님들은 웃고 놀리고 난리가 났다
도망간 낙지는 절대 죽지 않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혼자 있을 때 소리 없이 다가와서 다리를 휘어 감는다면서
테이블을 치고 웃고 놀렸다
나는 그런 데는 정말 어리버리해서
정말요? 정말 그래요?
반신반의하면서 울상을 짓고 온 가게를
낙지를 찾아 헤메었다

그러나 낙지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너무
걱정하자 한 사람이 낙지가 아마 어디 론가 빠져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낚지 볶음도 큰일이었다
살짝 봉지를 열자 다리가 스윽 기어 나왔고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예전에 샀던 낙지는 아마도 거의 죽어
가던 낙지였든지 이런 꿈틀임은 없었다
나는 먼저 물을 끓이고 펄펄 끓는 물에
낙지를 봉지 채로 넣어 삶아 죽일 수 밖
에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음식을 만들었고 이건 정말 할 짓이 아니었다
간도 못 보고 낚지복음을 내면서 다음엔
꼭 전문점에 가서 드시도록 부탁했다
탕탕이 접시에선 아직까지도 절단 된 다
리 토막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걸 맛있다고 , 싱싱하다고 먹는 사람 들의 얼굴마저 미워졌다

저 무서운 생명력은 대체 어디서 기인 된 것일까?
손님들은 낚지에 얽힌 이야기로 꽃을 피
웠지만 나는 아직도 어딘가를 기어 다닐
한 마리의 낙지로 인해 좌불안석이었다
세 시간 정도 흐른 후 손님들이 돌아 가고 나는 더 무서워져서 주방에 들어가
기가 싫었다
그런데 단골이 한 명 왔고 나는 낙지의 탈출에 대해 하소연했다
그는 내가 그런 류의 일에 무섬쟁이인 것을 아는 사람이었고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여기 있네! 그가 소리쳤
고 나는 깜짝 놀라서 뒤따라 들어갔다
세상에!!!
낙지는 주방 한 가운데 뻗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들어 올리자 다리들이 마구 움직였고 나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그는 직접 물을 끓여 낙지를 삶았고 본인이 썰어서 접시에 담아 내왔다
나는 말없이 젓가락과 초고추장만 갖다
주고 멀찍이 앉았다
그는 낙지라면 끔뻑 죽는 사람이고 소주
두 병과 웃음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나는 돈을 받지 않고 그를 보내었고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만약 어디선가 죽어 그대로 썩는다면?
그대로 홀로 기어 나왔다면?
내 비명소리가 온 길을 울렸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절대로 낙지는 물론 살아있
는 생물을 죽이는 음식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도 무서웠지만 갈수록 더 싫고
무섭다
내게 오는 모든 음식물이 그 어느 것의
목숨이어서 눈 감고 아웅하는 격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을 내가 죽이는 것은
너무나 무섭다
더구나 낙지 족속에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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