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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3-22 16:09
ㆍIP: 211.xxx.180
이타카를 향해서
-이타카를 향해서 -

         권영심 ( 2021 , 3 , 21 )

지금은 모르겠지만 몇 십여 년 전의 서울 종로엔 기인들이 많이 모였었다
다른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아 모르겠고
재야 역사학자들의 소강연이 여기 저기
서 많이 있었다
몸 하나 겨우 올라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간 다락방엔 사람들로 가득 차서
끝날 때 까지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그런 곳에서 강연자는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광활한 한강토의 이야기를
쏟아 놓으며 경이로운 우리의 역사를
말했다
마이크도 없이,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
칠판 위에 쏟아 놓는, 우리가 역사 시간
에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그 이야기들 은 나의 정신의 중심을 세웠다
왜 그런 이야기들을 밝고 넓은 곳에서
하지 못 하고 미로 속 같은 골목의 좁은
다락방에서 하는 걸까?

한 군데를 가면 또 다른 곳에서의 강연 에 초대가 되고 , 계속 이어지는 만남은
자연스럽게 역사 서클을 이루었다
나는 그다지 열성적인 학생은 아니었고
공부라기 보다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어 했다
별별 강연을 다 들었는데 증산도, 친일
척살 결사대, 남묘호렝게교, 독도지킴이 ,단군교... 이름도 다 까먹은 수 십개의 종교와 단체들의 열띤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느꼈나 보다
그 어느 것도 진정하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리지 못 했기에 나는 아무 것
에도 휩쓸리지 못 했다
그러나 민족 사관이 분명한 역사 관련의
강연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너무나 많이 다른
이야기들이 좋았던 것은 아버지를 떠올
기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때 부터 만주며 연해주, 대동
강, 두만강, 백두산, 금강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나의 정신에 새겨진, 우리 한강토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조금씩
자라났다

그중 잊을 수 없는 강연이 있는데 겨울
밤의 작은 찻집에서 였다
주최자가 찻집을 세 시간 동안 빌려서
몇 사람의 강연을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나온 , 키가 구부정한 초로의 남자가
우리들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이타카를 아시오?-
실내는 조용해지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인 사람들이 이타카를 몰랐으리라고 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질문이 생뚱맞고 연결이 되지 않
아서 사람들은 침묵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시오? 한 사람도 이타카를
모른다면 나는 이만 가겠소 -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오딧세이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고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체구는 작고 구부정한 모습이었으나 눈
빛은 화톳불이 타오르듯 형형했다
- 오딧세이를 읽어 보았소? -
-네, 원문으로는 읽지 않았으나 여러 출
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여러번 읽어 보았
어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여신의 저주를 받은 오디세우스가 십 년을 방랑 하며 모험을 하는 이야기로 원문은 24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

거의 이와 비슷하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
하는데 그는 몸을 돌려 원래의 자리로
갔다
그리고 몇 마디 말로 나를 칭찬하고 이
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전혀 오딧
세이와 달랐다
정체성과 자주성을 잃은 한민족의 원류
와 한강토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토록 절절한 목소리로, 마치 위대한
서사시를 읽어 가듯한 내용은 아무리
무딘 영혼이라도 깨울 듯 했다
몇 몇의 자리에서 흐느낌을 참는 느낌이
있었고 나는 마냥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갑자기 이타카가 다시 그의 입에
서 나왔다
오디세우스는 우리의 정체성이요 그가 헤메는 바다는 우리의 정신의 심연이며
이타카는 우리가 끝내 찾아야 할 올바르
고 고유한 민족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이타카를 향해서 갈 수 있도록 모든 고난을 헤쳐 나가서 반드시 우리의 고향
으로 돌아 갑시다...
그의 눈이 촉촉히 젖는 듯 느낀 것은 나
만의 감정이었을까?

이타카를 향해서 올바른 항해를 하지 못
하면 우리는 영원히 고향에 닿을 수 없으리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감동을 받았는
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심장에 총 맞은 것 같은 충
격과 감동을 안고 오래 오래 기억하고
있다
그 뒤 다시 오딧세이를 몇 번이나 정독 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오딧세이의 과정을 심리학에서도 인용
한다는 사실도 알았고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라는 지명이 그 강연자의 말
처럼 나의 고향, 불멸의 그 무엇을 말하 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재야 역사학자였고 그가 그토록 찾고 끝내 구해내야 할 것은 우리 본연 의 순결한 민족성이었다
더럽혀지고 짓밟혀진, 한민족의 민족성
을 찾아야 그의 오딧세이는 완성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요원한데 그는 지금
어느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우리 모두는 이타카를 찾아 갈
생각이나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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