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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03-15 18:11
ㆍIP: 211.xxx.180
피아노 유감
피아노 유감
      권영심 (  2021 , 3 , 15  )
내가 피아노 소리를 처음 인식한 것이 언제 였을까?
분명히 학교에 가기 전이었고 어느 이층
양옥집 근처에서 들었다
어린 아이의 걸음으로는 집에서 꽤 먼 그 곳에 무슨 일로 갔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높은 담에 기대어 서서 들은 것은 지금도 떠오른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누군가가 있었을까?
음악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그 때 들은 음들이 일반인이 쉽게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훗날 그 선율이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인 것을 알았으니 내가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알수있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 그러나 너무나
매혹적인 음이 나를 끌어 당기며 어린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담박에 피아노 연주라고 했다
아버지는 피아노에 대해서 말해 주면서
내가 너무 흥미있어 하자 저녁에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영선동 극장을 지난 번화가에 피아노
대리점이 있었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그 아름다운 악기를 만났다
그 곳에는 그랜드 피아노는 없었고 업
라이트 피아노만 있었는데 주인은 우리
가 구매를 할줄 알고 쳐 보라고 했다
내가 망설였더니 아버지가 앉으며 두
손을 건반 위에 얹었다
아버지의 손이 그렇게 멋있고 손가락이
그렇게 긴 줄 그 때 처음 알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몇 번 치던 아버지 는 고향의봄을 아주 서툴게 연주했다
그러나 건반을 누르는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완전 매료되어 피아노를 배우겠노
라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주인에게 내 딸이 정말 피아노 를 배우고 계속 원하면 구입 하겠노라
약속하고 우리는 그 곳을 나왔다
어느 소설에서,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이와 꼭 같은 아이가 그 시절에 피아 노를 학원에서 배우는 대목을 읽은 기억 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더구나 소설 속의 아이는 부산보다 더
지방에서 살았는데 말이다
아버지가 열심히 알아 보았으나 학원
비슷한 곳도 찾을 수가 없었나 보았다
그 대신 개인 교습소를 찾아 내었다
조그만 간판에 손 글씨로 피아노를 가르
칩니다라고 쓴 가정집이 교습소였다
아버지 손을 잡고 간 교습소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단 한 대 놓고 그냥 방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 두 명이 배우는 것을 얌전히 앉아 지켜 보면서 그렇게 가슴이 두 방
망이질 했다
나는 정말이지 피아노를 배우면 누구
보다 멋지고 근사한 연주를 할 자신이
있었다
그 때 까지는.
아주 날씬하고 표정이 좀 차가운 여선생
은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이며 이름을
물었다
일곱 살이라고 하자 너무나 놀라던 그녀
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녀는 나를 피아노 앞에 앉게 하고
건반 위에 두 손을 펴게 했다
여기가 도라고 하면서 거기서 부터 손을
펴게 했는데 몇 번 이것 저것 시키더니
고개를 저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을 누르면서 설명
했는데 나는 심각할 정도로 손 마디가
짧아 성장해도 마찬가지여서 피아노와
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의 손을 펴게 하더니 이런 손이
바로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 손이라고
했다
아마 요즘 같았으면 학원에서 무조건
맞으나 맞지 않으나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선생은 피아노에 자부심이
랄까, 그런 것을 가졌던 사람이었나
보았다
날더러 맞지 않는 것을 배울려고 애쓰지
말고 다른 것을 하라고 좋은 말을 했다
나는 내 손이 창피해서 그냥 아버지와
함께 그 집을 나왔다
밖에 나와서 아무리 아버지가 달래어도
계속 울었는데 그 이유가 피아노를 배우
지 못 해서가 아니라 왜 내가 아버지 손
을 닮지 않았나 였다
결국 아버지는 큰 웃음을 터트리면서
나를 업고 집까지 왔다
가게에 있던 엄마를 보고 손을 펴 보라 고 했더니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얼결에
두 손을 폈다
아... 내 손이 거기 있었다
조개같은 조그만 손톱들과 짧은 마디와
오목 오목한 손가락까지 꼭 같은 손이
엄마가 나를 낳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박수까지 치면서 웃었고 나는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 뒤 오랜 동안 나는 피아노를 외면했
고 중학생 때 교회에서 가끔 아무도
없을 때 건반을 눌러 보는 것으로 만족
했다
그러면서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동경
했고 작곡가와 제목도 모르면서 참 많이
들었다
지금도 내 손을 건반 위에 놓고 펴면
도와 도까지 잘 닿지 않는다
그러니 그 여선생이 날카로운 안목으로
판단했다고 할수 있는데 내게 억지로
가르치치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내가 닮고 싶었던 아버지의 긴 손가락과
단단한 손톱은 막내 여동생이 그대로 물
려 받았고 길고 늘씬한 손을 가진 그 아이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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