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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2-27 15:11

ㆍIP: 223.xxx.55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권영심의글
그 때 그 시절에 그렇게... ( 25 )

권영심 ( 2020 , 12 , 26 )

그 때 그 시절에 사람들은 그 간장을 왜
간장, 일본간장, 맛간장으로 불렀다
일본말로 부르기도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진간장으로 부른 기억은 사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다
번잡한 시장을 벗어나 한갓진 골목길 간장 공장이 있었는데 실은 공장이라고 할 규모도 아니었다
엄마가 간장을 사오라면서 길다란 막소 주 병과 돈을 주면 그 곳까지 사러 갔는
데 간장은 항상 반 병에서 찰랑거렸다
한 번도 한 병 가득 사 본 적이 없는데
무거운 병을 들고 오다가 깰까봐 걱정하
는 부모의 마음이었고 엄마는 반 병씩
사서 늘 신선한 간장을 먹는다는 심산인
듯 했다
간장 공장은 언제나 어두웠고 서늘했다
어린 눈에 어마어마하게 보이는 큰 통들
이 몇 개나 늘어서 있었는데 항상 들큼 한 냄새가 났고 나는 그 냄새가 참 좋아
입구에서 크게 들이 마셨다
그런데 간장의 급이 달랐는데 내가 물어
봤기에 지금도 잘 알고 있다
엄마는 돈을 주면서 진짜 간장을 사 오라고 했고 나는 진짜가 있으면 가짜
간장도 있나? 생각했었다

어느 날 오후에 간장을 사러 갔더니 한
아지매가 간장을 좀 더 달라면서 실랑이 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장을 떠 주는 통이 내가 살 때
떠 주는 통이 아니었다
가게 입구를 들어서면 실내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편의상 바깥과 안으로
말한다면 바깥의 통에서 떠주었다
아지매가 간 뒤, 내가 돈과 병을 내밀자
남자는 항상 그랬듯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 있는 통에서 떠주었다
나는 두 곳의 간장이 다르냐고 물었고
엄마가 항상 진짜 간장을 사오라고 말하 는데 가짜 간장도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내가 사 가는
것은 양조 간장이고 밖의 것은 혼합간장 이라고 했다
맛은 똑같지만 양조 간장은 콩으로 만드 는 진짜 간장이고 혼합 간장은 다른 것 을 섞어서 만든다고 말했다
값이 반 밖에 안되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서 먹는다고 했다
그러니 엄마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 마트에서 간장을 사면서도
반드시 양조 간장만을 사는 것은 그 때 의 기억 때문이다
혼합 간장이 무엇으로 만들어 몸에 해롭
니 어쩌니 하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
다만 어릴 때 양조 간장이 진짜 간장이 란 의식이 강하게 남아있기에 상표는
상관없이 양조 간장만을 고르게 된다
엄마가 진짜 간장을 사오라고 강조한 것
은, 지금 생각하니 남동생이 가장 잘 먹는 것이 간장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 세계의 온갖 소스들
을 이 땅에서 다 먹을 수 있으나 그 때
그 시절의 서민들의 소스라면 왜간장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왜간장 자체가 바로
가장 맛있는 소스였다
왜간장 하나면 못 먹을 것이 없었고 맛 이 안 나는 것이 없었다
지금 시판되는 간장은 결코 그 때 간장 의 맛을 재현하지 못 한다
간장 회사들이 아무리 반박해도 소용 없는 것이, 열 살도 안된 어린 내가 간장
을 사러 공장에 들어갔을 때 맡은, 그 들
큼한 향기가 지금 간장은 없다

하얀 쌀밥을 퍼서 버터를 조금 얹고 계 란 노른자를 올린 다음 왜간장 반 숟갈 을 넣어 비빌 때의 그 향기는 지금 절대
로 재현해 낼 수가 없다
지금 똑 같이 만들어도 그 맛이 아니다.
입맛이 달라졌다고 말해선 안된다
후각의 기억은 정말 질기게도 남아 있어
기억 속에서 일깨워지면 그 때 먹었던
맛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무엇이 달라져서 그리 되었는지 모르지 만 지금 생산되는 모든 식품군의 냄새가
거의 사라졌다
팥도 콩도 당근도 시금치도, 하다못해
무우도 그 특유의 냄새가 있었건만 지금
은 맡을 수가 없다
왜간장 하나로 그렇게 맛있는 소스가 되
었던 것은 간장만이 가진 향기였다
그래서 왜간장으론 나물을 무치지 않았
었고 국도 끓이지 않았다
맛있게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가 나물에
섞이면 야채의 냄새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볶음엔 무조건 왜간장이었다
어묵을 썰어 기름에 볶다가 왜간장 한
숟갈 넣으면 끝이었다
멸치도 다른 양념 필요없이 왜간장이었
고 김을 구워 밥을 얹고 젓가락으로 찍은 간장이면 그만이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많이 먹는, 무우 생선조림은 왜간장이 없으면 안 되었다
반찬이 없으면 왜간장을 종지에 따라서
밥에 그냥 비벼 먹었다
엄마는 돼지갈비찜을 자주 했는데 마늘
과 생강, 후추와 설탕, 그리고 왜간장이
면 되었다
지금 내가 만들듯이 여러 양념을 더 넣지도 않았는데 엄마의 갈비찜은 정말
맛있고 부드러웠다
고기를 별로 먹지 않던 나도 갈비찜은
먹었는데 식구들이 다 즐겨 먹었다
지금 엄마의 방식으로 만들라고 한다면
솔직히 맛을 낼 자신이 없다
시간의 무서움을 실감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견디지 못 하는 것이지만 그래
도 땅의 소출의 맛과 향기가 달라지고
이제 찾을 수 없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기술은 발달되겠지만 그 많은 식품 회사
들이 만들어 내는 어떤 것이라도 그 때 의 맛이 아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 저녁의 한 때, 그
때 그 시절의 간장 맛이 못 견디게 그리
워진다.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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