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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2-15 18:03
ㆍIP: 211.xxx.44
사람은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산다
#권영심의글
사람은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산다

         권영심 ( 2020 , 12 , 15 )

놀랍도록,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잘 사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에도 있고 있어 왔다
갑질을 말하면서 가끔 뉴스에 재벌가의
파행들이 보도되는데 그런 행동은 그
사람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행태일 것 이다
예의와 매너는 동류의 계급에서만 통용
되는 것일 뿐, 자신들이 보기에 기계의
부품보다도 못한 비천한 사람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보고 자랐고
그렇게 살게 되어진 사람들에게 일반적
인 예의와 인간애를 말한다는 것은 그야
말로 어불성설이다
살아오면서 정말 잘 사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들의 돈 단위 는 우리들과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충격
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혼한 딸이 임신을 했는데 친정아버지 가 축하금으로 1억이 든 카드를 주고 딸
은 예사로 받으며 낳으면 또 아기에게
집을 사준다고 한다

마치 옷 한 벌 예사롭게 사 주고 받는 듯한 그 부녀의 대화에서 잠시 혼란을
느낀 것은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는 통렬
한 깨달음을 얻어서였다
나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건만 그 딸 옆에서 바로 가난한 사람
이 되어 버렸다
잘 웃고 예의 바르며 내게도 정중하던
그 딸의 씀씀이는 우리와 돈 단위가 아예 달랐다
지금부터 15년 전의 일이지만 그 날
하루의 일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어 나 는 삶의 이해의 폭이 커져 버렸다
지인과 어떤 일로 만났고 그 지인의 친
구의 딸의 임신 축하를 함께 하게 되어
그 날 하루 온 종일 놀라운 일을 경험한
것이다
지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른 말로 부를 단어가 없으니 그냥 지인이라고 한다
사업상의 지인이 정확하지 싶은데 그 집은 크기는 했으나 그리 호화로운 집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넓은 정원의
돌 하나도 수 백 만원이었다

처음으로 집에 초대를 받아서 한 상
받아서 잘 먹고 거실에서 대화 중이었
는데 시집 간 딸이 온 것이었다
딸은 시집가고 아들은 외국 유학 중이라
고 알고 있긴 했으나 처음 보았었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임신했다고 알리 고 그 소식에 지인 부부의 기쁨은 너무
대단해서 뭐라고 쓰기가 그렇다
딸이 임신하면 친정 부모는 그렇게 기쁜
지 모르겠으나 나와 다른 두 사람은 그저 놀라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딸이 아빠 축하 선물!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그 손에 일억짜리 카드가 건네
졌다
일억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
서 낳으면 아기에게 집을 사줄거라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우리들이 보고 있어서 허세부리는 것이
아닌, 진짜의 일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건만 그 부녀가 앉아 있는 쪽의 공기와 우리 쪽의 공기가 달라지고, 우리는 구경꾼이 되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까지 우리는 충실한 구경꾼이 되어 주었다
엄마와 딸은 신나게 썼고 우리 세 사람은 선물을 하나씩 얻어 건졌다
생전 처음으로 최고급의 아이용품들도
구경했고 돈 단위에 무조건 0이 하나 더
붙는 신기한 경험도 했었다
인천까지 차를 태워준다는 것을 거절하
고 그냥 큰 길을 향해 인적이 없는 길을 걸었고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내게, 아니 내가 낳은 아들에게 집을 사 주었다
남의 집 단칸방에서 백일 잔치를 했는데
처음 딸이 사는 집에 온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나지막하게, 아무도 안 듣게
속삭이듯 말했다
- 집을 하나 사라우, 이런 곳에서 어째
아이를 키우고 살갔네?
내 손자레 이런 곳에서 키우는 거, 이 아바지레 못 본다, 영도도 좋고 여기가
좋으면 여기에 집을 찾아 보라마 -
이 철딱서니 없는 딸은 그저 좋아서 당장 집을 알아 보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 집을 떠날 때 까지 향기 처럼 사라지
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재산을
가진 아버지라면 손자를 잉태한 딸에게
일억을 준들 누가 탓하랴?
아이가 태어나면 몇 십 억의 집을 사준 다 하더라도 탓할 바가 못 된다
아버지의 사랑이니까.
다만 우리 서민과는 돈 단위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오늘 새삼스레 그 일이 생각난 이유는
몇 년 전 부터 가게의 손님으로 오는 부
녀의 다툼 때문이다
딸은 결혼한지 삼 년 되었는데 임신을
했고 집을 사는데 부족한 돈을 아버지
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에게 줄 돈이 없었고
그런 아버지에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줄
것을 요구하는 딸을 보는 것은 참 슬프 고 괴로웠다
아버지는 코비드로 인해 일도 못 하고
있는데 대출을 받으면 어떻게 살아 가라
는 것일까?
사랑하는 딸에게 줄 돈이 없는 아버지는
대체 무엇을 주어야 하나?
임신 선물로 일 억을 받은 그 딸은 지금
도 아버지의 후광으로 너무나 잘 살고
있을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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