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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1-16 11:41

ㆍIP: 223.xxx.83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에 그렇게... ( 8 )

권영심 (2020 , 11 , 15 )

우리집에 티비가 들어온 것은 남동생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서 식구들 아무도 티비에 관심이 없었는데 남동생은 유독
만화 영화를 좋아했다
그 때 티비가 있는 집이 별로 없었고
남동생은 날마다 엄마에게 돈을 얻어
만화방으로 가서 보았다
금액은 기억 안 나는데 일종의 예약 형식으로 일정의 돈을 주면 가게 주인
은 하얀 표를 한 장 주고 다음날 보러 오
면 그 표를 받았다
티비를 볼려고 하는 얘들은 많고 가게
공간은 작아서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남동생을 위해 티비를 사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티비에 매달려 있을 남동생을 염려했는
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
지만 그 일이 있기 전 까지 우리집엔
티비가 없었다

그 날은 여름 날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난 후였지 싶다
엄마와 나는 가게 안에서 가방을 만들고
있었는데 내가 만드는 것이 엄마 것 보다도 야무져서 시간이 되면 도와서
만들었다
그 가방을 이후에 한 번도 만들지도, 본
적도 없는데 일정한 패턴의 판을 색색의
나일론 실로 연결해서 만드는 여름 가방
이었다
판의 무늬는 꽃이었는데 한 가지 색으로
만드는 엄마 것보다도 여러가지 색을
섞어 만든 내 가방이 훨씬 이뻐서 만들
기만 하면 잘 팔렸다
아버지가 보면 그런 것 시킨다고 불호령
이 떨어져서 나는 몰래 만들었는데 재미
가 있어 자주 만들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놀이 삼아 외출을 했고 그 시간에 엄마와 가방을 만들면서 두어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울음 소리가 나면서 남동생이
가게 안으로 들어 왔다

엄마는 가방을 내팽개치고 뛰어 나가
동생을 보고 기함을 했다
동생은 코피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이며
몸 여기 저기에 긁힌 상처들이 있었다
우느라 껄떡거리는 동생을 달래며 진정
시킨 뒤 우리는 사건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티비가 화근이었다
엄마가 준 돈으로 과자를 사 먹은 남동
생은 티비 볼 돈이 없었고, 만화 영화는
보고싶어서 티비가 있는 친구 집으로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집 안방엔 이미 아이들로 만
원이었고 마루에서라도 볼려고 했으나
평소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던 그 집
아이는 남동생이 티비보는 것을 허락하
지 않았고 그예 싸움이 되어 버린 것
이었다
그 당시 남동생은 몹시 몸이 약했고
엄마는 그런 아들을 위해 벼라별 약과
음식을 대던 상황이었다
그런 아이가 코피를 흘리고 상처가 났으 니 엄마의 분기탱천은 시장을 뒤집어
놓았다
엄마에겐 이 세상에 유일한 금쪽이었고
그 금쪽을 누구라도 건드리는 일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티비때문에 맞고 들어 오다니!!
아이를 안고 몸을 바르르 떠는 엄마의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그 표독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마리야! 너거 아부지 찾아서 뗄꼬 온나,
퍼뜩 오시라캐라! -
아버지가 그 시간에 있는 곳은 기원이었
고 나는 전차 종점 근처에 있던 기원으 로 달려 갔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아버지는 일어섰
고 우리가 가게로 왔을 때 남동생 혼자 만 있었다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를 묻자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친구의
집으로 갔으나 엄마는 그 곳에 없었다
대체 엄마는 어디 갔을까?
남동생의 일이라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엄마를 잘 아는 나는 엄마가 어디 가서
사고를 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난 뒤 가게 밖이
조금 수선스러운 느낌이 들어 나갔더니
엄마가 티비를 든 사람들을 앞세우고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 때의 티비는 다리도 있었고 미닫이 문도 있었는데 금성 제품으로 제일 큰,
신제품을 사가지고 온 것이었다

가게를 통해 안방으로 티비가 입성하고
남자들이 안테나를 설치하는 등 분주한
사이에 아무 말이 없는 아버지를 향해
엄마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마리야가 사 달랬으믄 진작 샀을 끼구
마는, 한나 밖에 없는 아들얘가 저 놈의
티비 때문에 남의 집을 기웃거리는 기를
나는 인자 못 보요, 암 말도 마씨요 -
아버지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단지 엄마가 월부로 사온 것을 바로 가
서 돈을 다 치루고 왔을 뿐이었다
금성 대리점까지 내 손을 잡고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내게 물었다
티비가 생겨서 좋으냐는 말에 나는 그냥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지독한 독서에 빠져 있었고 그 때
티비라는 것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내 말에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너이 엄마래 많이 참은 거이디, 옳다구 나 하고 오늘 일로 산 거이지만 아바지
래 곧 살려고 했었디, 마리야 니가 사 달
랬으믄 벌써 샀을 거이디만 말이디 -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또 다시 크게
웃었다
더운 여름 밤이었으나 한 줄기 바람이
목을 서늘하게 했고 나는 아버지의 손
을 꼭 쥐면서 그렇게 좋았다
티비가 처음 우리 집에 들어온 날, 남동
생과 엄마도 행복했고 아버지와 나도
행복한 여름 밤이었다.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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