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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채영제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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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채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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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4-07-09 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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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매기의 추억
매기의 추억
여름날 밤,
철썩 처얼썩...... 해변가 갯바위에 작은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며 낮은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가 돌아오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잉크 빛 밤하늘이 낮게도 정말 낮게도 깔렸다.
마치 우리가 은백색 빛 색종이를 잘디잘게 찢어 입에 넣고 공중에 확 뿌린 것처럼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되었다가 이내 바닷가로 떨어졌다.
일렁거리는 검푸른 바닷물에 은빛 물이 하늘에서 뚜욱 뚝 떨어져 노란색 달빛과 묘한 색감으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우리 같은 어린것들은 겨울보다 여름이 아예 좋았다.
어른들이야 내일 끼니 걱정을 걱정하든지 말든지 ......
동네 조무래기들은 가시나 머슴아 할 것 없이 이런 여름밤이면 동네 앞 바닷가 바위틈 아지트에 모여들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밤새도록 노래도 부르며 종이배를 만들어 밤바다에 띄우기도 하고 밤 소꿉놀이도 하였다.
명희는 우리 집 바로 옆집에 살았다.
내보다는 한 살쯤은 어리다고 기억이 된다.
보름달처럼 둥글고 하얀 얼굴에 눈망울이 밤처럼 새까만 참 예쁜 계집애다.
동무들끼리 소꿉놀이하면서 신랑과 신부를 정할 때에는 어김없이 내 옆에 바짝 다가앉아 자청하여 신부가 되었다.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와 우리 집 강아지와 놀고 있을때면 꼭 자기네 집에 있는 ‘밀가루 떡’이나 ‘삶은 고구마’를 가지고 와서 아내가 신랑 섬기듯 하였다.
어린 계집애가 어쩌면 그리도 영악하고 이성에 빨리 눈을 떴는지......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아 자기 조그만 가슴에 얹게 하고는 실제 신랑처럼 자기 입에 뽀뽀까지도 해달라고 하였다.
쑥맥 같은 내가 기겁을 하여 다른 애들 옆으로 도망을 치면 웃으면서 끝까지 따라와서 추근거렸다.
그런데 내가 겉으로는 명희를 싫어하는 척했어도 내심은 좋아하였다.
왜냐하면 그 계집애가 예쁘기도 했었지만 노래 하나만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 어린 것이,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기의 추억”이란 노래를 맑고 푸르던 목소리로 너무나도 잘 불렀다.
그 애가 “매기의 추억”을 부를 때면 그곳에 있는 조무래기들은 모두 “화...화...”라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당시 우리가 살던 동네는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모두가 以北에서 1.4 후퇴 때 피난을 내려와 그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명희네 아버지는 함경도에서 피난을 오신 분으로 기억이 된다.
내가 명희와 헤어지게 된 것은 그 후에 그 피난민촌이 撤去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동무들은 제각각 부모를 따라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명희네 집은 서울로 멀리 이사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고 나 자신도 소꿉친구인 명희를 까맣게 잊게 되었다.
내가 군에 있을 때, 휴가를 나와 서울역 대합실에서 완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어떤 젊은 여인 하나가 아기를 보듬고 있으면서 자꾸만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뭔가 기억을 더듬는 듯한 表情을 지었다.
나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선뜻 아는 체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으므로 열차를 타게 되었다.
그 여인도 그 열차를 타기 위하여 승차장으로 내려갔다.
나와 그녀가 승강장으로 내려가는데 그녀가 내 군바리 명찰을 슬쩍 훔쳐보더니 “ 맞네!” 라고 깜짝 놀라 소리치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명희는 그때의 얼굴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벌써 아기엄마가 되어 있었다.
명희는 자기 남편과 같이 부산 근교의 작은 소도시인 물금에서 목장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명희에게 이끌려 억지로 물금역에서 내려 자기네 목장으로 갔다.
명희 신랑은 우리보다 열 살 정도는 더 많을 듯한 건장한 남자인데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였다.
자기의 마누라가 서울 친정에 다녀오면서 낯선 미남(?) 군바리 하나를 데리고 왔다고 호탕하게 박장대소를 하면서 반겨 주었다.
그날 명희 남편은 우연히 해후한 자기 와이프의 소꿉친구를 위하여 손수 닭과 오리를 잡아서 술안주를 만들었다.
우리 세 명은 그곳 목장 마당에 평상을 깔고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취흥이 도도해 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18번 곡인 “하얀 나비”를 불렀고, 명희 남편은 조영남의 “고향의 푸른 잔디”를 불렀다.
명희는 당연히 나의 신청곡인 추억의 노래 “매기의 추억”을 불렀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소리 들린다.
매기 아아 희미한 옛 생각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그날 나와 명희 남편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명희를 중간에 두고 우리 세 명이 나란히 술에 취해 뻗어 있었다.
그 후 내가 제대를 하고 生活人이 되면서 몇 년을 벼루고 벼룬 끝에 그 목장에 찾아갔으나 명희네는 다시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는 없었다.
그 후 삼십여 년이 흘렀으나 영영 그녀의 行方을 찾을 수가 없었다.
또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제 명희도 예순이 되었을 것이고 그 남편도 칠순 영감탱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 그 영감이 살아 있을까..... !
子女들은 몇 명이나 두었을까.....
잉크 빛 파란 하늘에 떠있는 노오란 달과 은색 물감을 흩뿌린 듯이 수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던 별 밤이 있던 곳.
저 수평선 너머로 별똥별이 새파란 불꼬리를 그으면서 떨어지던 곳.
아담과 하와의 태고적 사랑과 신비가 가득한 곳.
우리의 가슴에 순진무구의 꿈과 아름다움을 주었던 곳.
우리의 인생의 시계를 그때 그 장소로 되돌려 그냥 정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고 물질적으로 궁핍할지라도 아름다운 꿈과 영롱한 보석들이 가슴에 알알이 맺혀있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2011년 08월 20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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