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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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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채영제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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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채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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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5-10-01 1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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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김사인 시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곂에서』를 읽고
김사인 시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곂에서』를 읽고
1. 들어가며
최근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작품인『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문태준)』『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손택수)』『그림자에 불타다(정현종)』이상 3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읽던 중이었다. 그런데 9월 초순쯤, 문단 뉴스에서 ‘창작과 비평사’에서 주관하는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김사인 시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곂에서』가 선정됐으나 김사인 시인이 끝내 고사함으로써 수상자가 없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김사인 시인과 그 수상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 시집을 한권 더 구입하였다. 김사인 시인은 지난 군사정권 때 민주화운동을 하였다가 긴급조치로 구속이 되었으며 그 후 『시와 경제』『노동해방문학』등 사건으로 수배생활을 한 시인이었다.
시인은 이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 “나는 어쩌자고 고집 세고 욕심 많은 이놈과 있게 되었나요. 곂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라고 독백처럼 되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시집 제목인 『어린 당나귀』라는 것은 차별 받고 멸시당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민초들에 대하여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관념을 객관적상관물로써 어린당나귀를 가져와 설정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그 어린당나귀가 주인의 모진 채찍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의 갈 길을 가는 고집불통 쟁이 민중을 상징하는 것은 혹 아닐까? 라는 갖가지 상념이 오락가락 하기도 하였다.
이 시집은 전체 4부로 나뉘어져 있고 제1부에서 제3부까지는 각각 18편의 詩가, 제4부에서는 16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어 모두 70편이다. 시인은 민중의 일상성을 가만히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끝내는 “에이 스브럴 ”이라고 욕설을 토해내기도 하고,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였던 그날의 악몽을 생각하며 “식은땀 흘리며 벌떡 깨네 벌써 삼십년/ 말발타 살발타!” 라며 강력한 정치 권력들에게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나중에는 “슬프자, 실컷 슬퍼버리자./ 지자, 차라리/ 이기지 말아버리자.” 라고 체념 투의 어조로 자신을 달래고 있다.
나는 김사인 시인의 작품 중에서 위와 같은 시 정신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바짝 붙어서다』『시간K』『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비둘기호』『불길한 저녁』『오월유사(五月遺事)』이상 6편을 선택하여 그 감상을 피력하고자 한다.
2. 선택한 詩에 대한 감상
A. 『바짝 붙어서다』
- 아, 無力한 詩人이여! -
늦은 밤, 가로등조차 희미한 비좁은 골목길 속으로 파지를 수집하는 할머니가 신문지와 박스 등 종이가 가득 담긴 밀차를 끌고 가고 있다. 그때 갑자기 골목길로 들어오는 승용차를 피하기 위하여 벽에 꼭 붙어서는 할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을 話者가 순간적으로 포착한 상황의 詩다.
시인은 파지를 수집하는 팔순 할머니의 피골이 상접한 몸체를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는 언술로 묘사를 하고, 그리고 할머니가 벽에 바짝 붙어서 있는 모양을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으로, “구겨졌던 종이같이”로 각 직유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話者는 그 할머니가 돌아가는 집에 있을 헌 삼성 텔레비전과 기운 싱크대와 그 앞에 서게 될 구부정한 허리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목이 멘다고 말한다.
화자는 끝으로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이라고 도치를 사용하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내팽개쳐진 파지 수집하는 팔순 할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그 할머니를 향해 무엇이라도 하나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없는 처지에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깊은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아, 무력한 시인이여!
B.『시간K』
- 일어서라. 노숙인이여! -
지하도 모퉁이에서 한 노숙인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다. 그는 이 풍진 세상을 48년 9개월간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어느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해고를 당한 것이다. 실정법상 아무런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통고하나로 그대로 해고를 당하고 만다. 그도 한 때는 가정이 있고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었으나 실직을 하고 나서는 가정에서조차도 배제되어 길거리로 내몰렸다. 시 속의 “넝마의 바지 밖으로 ……. 소주에 오래 노출된 시간은 벌겋다...” 등의 정황적 묘사로 볼 때 그는 노숙생활을 한 지가 제법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길을 가다가 노숙인을 지켜보는 화자는 세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소생(蘇生)할 줄 모르는 사람을 “한사코 고체로 위장하고 있다”고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숙자가 열심히 살아왔을 그 한 많은 시간을 “시간 K는 가려운 옆구리와 가려운 겨드랑이 부위가 있다.” “더러운 봉지에 갇혀 시간은 썩어간다 비닐이 터지면/ 힘없는 눈물처럼 주르르 흐를 것이다.” “허깨비 시간들, 시간 봉지들”이라고 애틋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話者는 그 노숙인을 향해 “시큼한 냄새와 함께/ 잠시 지하도 모퉁이를 적시다가/곧 마를 것이다. 비정규직의 시간들이/ 밀걸레를 밀고 지나갈 것이다”고 격려를 하고 있다.
그렇다. 詩가 반드시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는 말 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제된 약자들에 대하여 詩人조차도 무심하다면 과연 누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줄 것인가? 여기에서 김사인 시인의 어린당나귀가 귀를 쫑긋 세우며 하늘을 향해 ‘히이잉’하고 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C.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
- 슬픈 우리 인생이었구나! -
話者는 가난에 대하여 열거법을 사용하여 비유하고 있다.
“삶은 보리 고두밥”
“달라붙던 쉬파리”
“퍼런 쑥국과 흙내 나는 된장”
“어둑한 한숨”
“괴어오르던 회충과 빈 놋숫가락과 무 장다리의 노란 봄날”
그 배고픔을 이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어른들은 물을 떠서 꿀럭꿀럭 마셨네”
“아이들도 물을 떠서 꼴깍꼴깍 마셨네”
그리고 “밤마다 오줌을 쌌네 죽고 싶었네” 라고 감정적 진술로 절규를 하고 조용한 어조로 “그때 이미 아이는 반은 늙었네”라고 한탄을 한다.
특히 위의 가난의 열거(1연의 7행) 중 “괴어오르던 회충…….”의 의미는 굶주린 민초의 뱃속에 있는 蛔蟲(회충)들까지도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인데, 배고픈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 중 이 구절에 이르러 과연 울지 않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대다수의 시 이론에서, 詩는 직접적인 메시지의 전달적 기능을 배제하고 사물 혹은 존재의 언어를 지향하라고 한다. 즉 감정적 진술을 하지 말고 감정환기적 진술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歷史(역사)를 시로써 표현할 때 감정적 진술이 아닌 무슨 방법으로 배고픈 서러움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D.『비둘기호』
-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여, 힘을 내세요 -
시적 화자는 아홉 살 소년이다. 가난한 서른여덟의 아버지는 아홉 살 소년을 데리고 경부선 상행열차를 타고 오면서 차비를 아낄 요량으로 여섯 살이라고 속여 승차를 하였다가 검표원들에게 들켰다. 화자는 공범으로서 대전역 출찰구에서 벌세워졌고 주범인 아버지는 그들에 의해 사무실로 끌려갔다. 소년은 아버지가 그들에 의해 매 맞는 상상을 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체의 시다.
화자의 아버지는 결국 어린 자식의 나이를 속인 죄를 자백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도와 줄 사람은 없고 오리혀 비웃기만 하였다.
어린 화자는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 여섯 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 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 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 라고 순진무구한 소년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이 탄로 난 아버지를 바라보며 “ 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
“아버지가 맞는 상상을 하며/찬 시멘트 벽에 기대어 나는 울었네./발은 시리고 번화한 도회지 불빛이 더 차가웠네.”라고 회상을 하며 현재로 돌아와서는 “인생이 그런 것인 줄 그때는 몰랐네.”라고 울분을 토로한다.
시인은 이런 액자 속의 상황을 내걸어 삶의 실존적 존재와 인간성의 문제를 서술적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를 잘 혼용하여 강자의 폭거에 침잠하는 어린 화자의 심리상태를 너무나도 실감나게 잘 그렸다.
E.『불길한 저녁』
- 그대여, 위대하도다! -
이 시는 시인이 과거 민주화운동을 할 때 수사기관에 체포되어 가서 극한의 상황에서 심문을 당한 체험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이 내리네.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네.
그러면 그렇지 이 나라에
‘요행은 없음’
명패를 붙이고 밤이 내리네.
주관념인 ‘어둠’을 보조관념인 ‘고등계 형사’ ‘ 남산지하실’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유서대필 같은 비가 내리네.” “공안부 검사 같은 자정이 오네.” “최후진술 같은 안개가 깔리고” “집요한 회유같이 졸음은 오고/ 피처럼 식은땀이 끈적거리네.”라고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시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시인이 군사독재 시절에 경찰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에 끌려가서 폭력적인 심문을 당하였던 공포와 경악의 심리상태를 그렇게 기억하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몸서리치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슬프자, 실컷 슬퍼버리자./지자,차라리/이기지 말아버리자.”라고 체념을 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잊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반어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시인의 작시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대여, 위대하도다! 험난한 세상을 거쳐 살아남아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니 정말로 그대는 위대하도다!
F.『오월유사(五月遺事)』
- 불쌍한 민중들이여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졌구나! -
김사인 시인은 『5·18광주민주화 운동』을 오월유사로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의 과정에서 아무런 사상이나 이념이 없고 단지 빵을 얻기 위하여 길거리로 나섰다가 희생된 민중들에 대한 이야기를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시어에 도입하여 산문시 형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5·18광주민주화 운동』은 ‘광주민중항쟁’, ‘광주시민항쟁’, ‘광주항쟁’, ‘광주의거’ 등으로 불리나, 과거에는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遺事란 외연적으로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일이나 사업 또는 후세에 전하는 사적(事跡)”을 의미한다.
시인은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팔공년 봄 광주에서 일 당한 사람 중에는, 쩌그 장흥 무안 구례 곡성 같은 디서 유학 와 자취하던 중고등학생 대학 초년생”, “학생만 그랬간, 지방서 올라와 방 하나 얻어 살던 노가다들,하루 벌어 하루 먹던 대인동 처자들”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계엄령이 터지고 양식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빵을 구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거리에 나서서 “오란씨 킨사이다도 얻어 묵고, 또 시민군들이 피 모자르다 허먼 헌혈도 허고……. ”라며 서술하고 있다.
시인은 그 운동의 성격과 희생자들에 대하여 이렇게도 진술하고 있다. “인제 생각허먼, 계엄입네 빨갱이입네 을러대던 쪽은 말할 것도 읎고, 혁명입네 해방굽네,물어보지도 않고 아무한테나 열사다 뭐다 갖다 붙이던 짓도 다, 실은 겁도 나고 애삭하던 좀 거석한 노릇이 아니었을게라”라며 이 운동의 사후 평가에 대하여 조용히 비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즉 이 운동의 과정에서 희생을 당한 대다수의 민중들은 무슨 주의, 무슨 사상에 물든 사람이 아니라 난리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길거리에 나왔다가 총을 맞은 사람이 거의 대다수라는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즉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것은 불쌍하고 힘없는 민중들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정확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그 이야기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엮어나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희생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불쌍한 민중들이여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졌구나…….
3. 맺는 말
시가 반드시 사회나 정치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는 말 할 수 없겠으나 시인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정치, 사회, 문화계의 불의와 모순과 부조리를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시집에 실린 70편의 시 한편 한편에 시인의 그러한 고뇌와 분노의 흔적이 짙게 배여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예로운 상까지 거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그 상을 거절을 함으로써 이 시집은 유사(遺事)처럼 후세에 길이 남고 더욱 빛나게 될 것으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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