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대한문인협회 -시 (詩)

ㆍ작성자	채영제
ㆍ작성일	2015-01-27 23:08

ㆍIP: 110.xxx.252

(산문)어느 조선족 할머니 이야기

어느 조선족 할머니 이야기

Ⅰ

수년전, 지인 몇 단계를 거친 알음알음으로 어느 조선족 60대 할머니가 찾아왔으므로 상담에 응한 적이 있었다.
그 할머니의 고조부는 조선조 철종 때 탐관오리의 학정과 기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다.
만주 땅에서 4대를 어렵게 살던 중, 한중국교정상화가 되자 할머니의 딸은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사위는 부산에 있는 어느 중국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는 40대 남자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 식당에 들어가 철가방을 들고 배달 일을 하면서 요리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20여년의 세월 동안 힘들게 배운 기술로 그 바닥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고수가 되었음에도 월급은 겨우 담뱃값 정도 수준의 돈만 받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사위를 어릴 적부터 자신의 식당에 데려와 숙식을 제공하며 20여 년간을 월급도 한 푼 주지 않고 노예처럼 부렸는데, 그 이유는 장래를 위해 그 동안의 월급을 저축시켜 놓는다는 것이었다.

사위가 결혼한 후에도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동안 받지 못한 돈 때문인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일자무식인 사위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있다가 간신히 장모와 부인의 도움으로 힘을 얻어 주인에게 보관하고 있는 돈을 달라고 청구를 하였다.

그런데 주인은 길길이 날뛰면서 낡은 공책을 내놓으며 그 동안 사위가 가져갔다는 돈 내역을 제시하며 한 푼도 줄 것이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물론 사위는 그 장부를 그때 처음으로 본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
결국 그들은 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법적분쟁으로 비화되었는데, 1심에서는 채권청구시효가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원고인 사위의 청구가 기각이 되었다.
내가 그 후에 그 조선족 할머니의 상담을 받아 그 사위를 불러 이리저리 말을 시켜보며 조사를 해보고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결혼은, 약 5년 전 주인의 주선으로 중국으로 직접 가서 부인과 맞선을 보고 이루어진 것이며, 그때 주인은 결혼을 하여 부인을 데려와 자기 식당에서 일을 하면 그 동안에 보관하고 있던 20년 치 월급으로 집도 사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채권이기 보다는 약정금 채권으로써 채권시효가 소멸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에 무지한 사람들이다 보니 그 주장을 하지 못하여 1심에서 패소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그 과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 증인들을 어렵게 찾아 설득하여 증인으로 신청을 하고 변호사를 통해 변론을 하였던 결과, 2심 재판에서는 피고는 원고에게 임금 보관금 1억 8,000만원을 주라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 식당 주인은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장모인 조선족 할머니에게 자기가 "계산을 해보니 5,000만원만 주면 되니 그것으로 합의를 하자 그렇지 않으면 대법원에 상고와 동시에 다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장모는 딸의 초청으로 관광비자로 입국하여 취업을 하였는데 체류기한을 훨씬 넘긴 상태에 있었다.
주인은 장모의 불법체류 사실을 알고 이를 약점으로 잡아 협박을 한 것이다.

조선족 할머니는 만주 땅에서 중국인들에게 4대에 걸쳐 살면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는데 내 나라 내 땅에 와서도 그들에게 공갈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죽고 싶다고 분개를 하였다.
만주 땅에서는 중국 국적을 가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던 그들이다.
그런데도 중국 땅에서는 조선족으로써 차별을 받아야 하였고 고국 땅에 들어와서는 또 외국인으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있었다.

그 후 그들 간에 어떻게 합의가 되었는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며 그들도 말하지를 않았다.

Ⅱ

그 할머니는 그 일이 있고난 후에 소식이 없다가 이태가 지나서야 또 찾아왔다.
얼굴에는 분기가 탱천하고 손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윽고 울음까지 터뜨렸다.

중국집 주방장 사위와 딸 사이에는 세 살배기 손녀가 하나 있는데 딸도 낮에 식당에 일하러 가고 할머니인 자신도 공장에 일을 나가게 되니 부득이 손녀를 인근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손녀가 최근에 이르러 갑자기 밤에 자다가 불현듯 깨어나서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싹싹 비는 시늉을 하고 밥도 먹지 않고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이면 할머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며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녀를 맡길 다른 방도가 없으므로 억지로 어린이집에 데려가 맡기고 출근을 하였는데, 손녀의 증상은 점점 악화가 되어 한 밤중에 자다가도 갑자기 정신병자처럼 벌떡 일어나 밖으로 도망치듯이 뛰쳐나가 머리를 땅에 처박고 울부짖는 등 이상행동은 계속되었다.

정신과병원 의사는 손녀를 세밀히 진찰한 후에 어린이집에서 어떤 큰 충격이 있어 그런 것 같다는 소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말을 못하는 세 살배기라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을 당하였는지에 대하여 전혀 표현을 못하니 할머니로서는 그저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직장을 포기하고 손녀만을 돌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며칠 후에 할머니는 직장에서 조퇴를 한 후 손녀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불시에 찾아갔다.
할머니가 어린이집으로 들어설 즈음에 어느 방에선가 어린애의 공기를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그 비명을 지르는 아이가 자신의 손녀임을 느껴 그곳 방 앞으로 가서 문을 열고 살짝 엿보니 30대 여교사 하나가 한 손에 바늘을 쥐고 손녀의 온 몸을 미친 듯이 찌르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또래 아이들이 겁에 질려 꿇어앉아 있었다.

그 할머니는 손녀가 교사에게 그토록 엄청난 학대를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하였다가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원장에게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원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딱 잡아떼면서 교사들이 박봉에 시달리며 애들을 보살피느라고 수고가 많으니 평소에도 교사들에게 인사를 잘 하여 친해놓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원장은 아동학대를 한 교사에 대하여는 징계도 하지 않고 두둔하면서 오히려 뇌물을 쓸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조선족 할머니는 일평생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살아 왔어도 이런 일은 처음으로 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에 경찰에 바로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목격한 손녀의 바늘 찔림처럼 또 다른 바늘에 심장을 사정없이 팍팍 찔려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주응규

2015-01-28 09:26

채영제 시인님의 글밭에 머물며 훈훈한 가슴 데워갑니다
아직은 추운 날씨지만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듯합니다
입가에 미소 가득한 나날 되시고 행복하십시요


채영제	시인님,추운 겨울날 건강조심하시고 언제나 멋진 글로 은혜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2/1 17:30

김광섭

2015-01-28 18:08

산문에 머물다 갑니다
ㅎㅎ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기쁜 날 되세요


채영제	시인님. 감사드리고 건강하십시오.	2/1 17:30

정찬열

2015-01-29 23:46

채영재 시인님! 현실이 아니기를
가슴조입니다.

늘 편안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채영제	가슴이 아픈 일이지요! 그러나 이런 현실이 우리 주위에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이 사회의 약자들이 제대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까요 ... 감사합니다.	2/1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