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지회 여름 문학기행

초가을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이른 들판을 달려보았다. 그래도 가을은 어느 듯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가을을 만나기 위한 마음으로 단장되어 있었을 것이었다. 우리의 모임은 우리나라의 땅끝 마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옛날 우리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어쩌면 풀섶의 벌레 소리가 더욱 다가온다. 오늘 전남 광주 지회의 시인님들 중에서 김강좌 지회장님, 정찬열 본부 이사님, 배인안 감사님, 박근철 감사님, 정미형 총무국장님, 한혜리 시인님, 소재관 시인님과 그의 동료 분이 참석하셔서 정겨운 자리가 되었고, 이에 지회의 활성화, 새로운 시인의 등단 멘토 역할, 지회의 동인지 발행, 거리가 먼 동료들 챙기기 등에 관하여 좋은 의견들로 토론이 이루어 졌다. 시골 촌닭의 닭볶음은 참으로 살기 어려울 때 눈물겨운 한 조각이 목으로 넘어갈 때 맛있다기보다는 아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좌로부터 김강좌, 박근철, 정미형, 소재관, 그의 동료, 정찬열, 김종덕, 배인안, 한혜리 시인님: (존칭생략)]

해남, 마음속으로는 너무 멀다 라고만 생각했었지 이렇게 유서가 깊고 우리나라를 지켜 나간 사람들의 고향이 여기라는 것은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고산 윤선도하면 우리나라의 대표 문인으로 보길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고, 보길도를 다녀오기는 했지만 어부사시사 정도로만 기억되어 왔다. 그리고, 윤 씨라고 하면 많은 부분에서 세도가였던 파평 윤 씨를 많이 생각하게 한다. 잘 못 알았지만 고산 선생은 해남 윤 씨이고 이 해남윤씨가 임금님의 해량으로 60가호였던 해남의 윤 씨들을 해남 윤 씨로 지정했고 고산 선생은 해남 윤 씨의 4대 정도 된다는 해설을 들었다. 그러니까 고산 선생의 고향인 셈인데, 서울에서 태어나 25세 때 해남의 큰집에 양자로 들어 왔다고 한다.

[고산 유물관 앞]

임금님도 고산 선생을 엄청 아꼈는 모양으로, 참으로 의리가 있는 임금이었다고 할까, 귀양을 보내었어도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고산 선생의 고향으로 보낸걸 보면 언젠가는 다시 복귀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라도 그렇게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그 사람을 챙기려 했을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꼭 챙기려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사람은 한 때를 보기위해서 챙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고향을 찾듯이 꼭 그 사람을 찾게 마련일 것이다. 또한 가문은 가문을 잇게 하는 고고한 힘이 있었나보다. 다산 정약용의 외가가 고산 선생의 가계였다고 하니 참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또한 다산 정약용도 해남에서 가까운 강진 근처에서 유배 생활을 한 것을 보면 역시 당시의 임금도 그를 아주 다른 곳으로 귀양 보내지 않은 걸 보면 클수록 큰 사람을 챙기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고정희 시인 생가]

그 다음으로는 해남 출신의 시인 고정희(1948-1991) 생가에 들렀는데,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시학》에 〈연가〉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목요시’동인으로 활동했다한다. 1983년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을 탔으며, 1991년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했다.

역시 문인은, 더구나 시인은 글로 시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녀의 평등을 주장하고 가족이 사회의 구성 조직으로서의 역할과 여성으로써의 어려운 길들을 함께한 시인이다. 시인은 가고 없어도 그의 생가의 서재에는 시대를 겪으면서 필요한 장서들이 즐비하게 구비되어 있었고, 떠나간 후에 그를 아끼는 동료들이 시인의 시를 모아 사전 형태의 곱고 귀엽도록 깜찍한 시집이 그의 책상위에 두 권 놓여져 있었다. 시인은 시대를 이야기하고 가지만 주위의 독자는 그 아픔을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는 일들이 그렇게 아프고 안타까웠다. 지금은 큰 시누이만 주인 없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역시 글은 관심 있는 사람에 의하여 견뎌나가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어라.

[고정희 시인 서재]

다음으로 김남주 시인 생가에 들어 보았다. 역시 같은 의미를 볼 수 있었다. 가고 없는 시인에 대하여 그 누군가 말을 해 줄 수 있을까마는,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앞서 간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도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김남주 시인은 광주 민주화 일에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아마도 황석영과 더불어 임을 향한 노래에 관여한 것으로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글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면 역사도 맑게 불을 밝히지 못함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글을 쓰는 사람은, 시인은 시대의 상황에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을 더 느껴본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기보다는 펜은 칼 집이다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칼을 만용스럽게 쓰지 못하도록 가두어 두는 역할이라면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김남주 시인 생가]

선입감만으로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해남은 그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해남을 잘 못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호되게 꾸짖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도 넓게 세상을 안고 있었던가하는 가보지 않고 직접 느끼지 못하면서 선입감을 먼저 갖는 것은 특히 글 쓰는 사람에 있어서는 아주 경계해야 할 일임을 배워야 해야 했다.

[소재관 시인님 농장 앞 잔잔한 바다 정경 : 해뜨는 곳]

오늘의 초청자인 소재관 시인의 농장에 들렀었는데 가히 폭넓은 사람이 아니면 이러한 땅을 지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산 중에서 살려면 산의 물성을 따라야 하고 존엄함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의 중턱에서 아침마다 자연의 평화로운 해돋이를 마음에 담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의 꽃차의 대접은 삶으로 엉킨 스트레스를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으로 순식간에 저 넓은 바다속으로 풀어져 가는 것을 체험하였다. 스스로 재배한 수박에는 여태껏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스며있고 입속에 넣었을 때는 이러한 삶이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느낌의 관점은 달라도 동행한 시인들은 몇 편의 시를 지을 올릴 좋은 시제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재관 시인이 내린 연꽃 차, 그리고 자연 재배 수박 ]

짧은 하루에 너무 많은 기행을 하여 충분한 시의 테마는 떠오르겠지만, 이런 가뭄으로 시제가 고파 허덕일 때 이러한 문학기행은 감겼던 눈을 뜨게 하는 좋은 수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