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시골 중학교 동문 체육대회

봄꽃이 휘황찬란하게 꽃불을 피우다 어느덧 피날레를 장식하고 신록의 계절 오월이 찾아 들면,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곳에서 각종 체육대회가 열리는 것을 본다. 고향 사람들이 모여 하는 체육대회도 있고 각 학교 동문 체육대회도 많은 달이 오월이다. 나 또한 오월이면, 여러 군데의 체육대회에 참가한다. 그중 내가 자란 고향 울진군의 9개 중고등학교 중, 하나의 학교인 나의 모교 제동 중학교 체육대회는 특별히 애정이 깊다. 고향의 바람과 그늘을 함께 누리고 자라난 고향 왕피천 기슭에 자리한 모교 제동 중학교는 남, 여 공학인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였다. 그래도 필자가 재학시절 각 학년 3개 반 전교생이 560여 명이었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립학교라 인근에서 전학 올 정도로 명문 중학교에 속했다. 졸업생 50%가 외지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던 한때 잘나가던 모교 제동 중학교는 10여 년 전 2007년도에 폐교가 되었다. 31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3,46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아쉽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필자는 3년 전에 자의든 타의 든 간에 재경 제동 중학교 동문회장에 선출되었다. 2년 임기가 만료되었으나 여차여차하여 사정상 1년을 더 본의 아니게 연임하여 올해까지 동문회장직을 맡고 있다. 모교는 이미 폐교되었지만, 동문의 애정은 여느 학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 중의 재경 제동 중학교 동문 체육대회는 고향 울진군 사람뿐 아니라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조차도 혀를 내두른다. 폐교된 시골 조그만 중학교 동문 체육대회라 하기에는 규모 면에서나 동문의 동참 면에서나 절대로 현존하는 다른 학교 동문 체육대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재경 제동 중학교 동문회 체육대회지만, 울진 고향에서는 물론 전국 각지의 제동인 4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다. 기수 별로 체육대회 하루 전에 전야제를 하는 기수가 많다. 필자의 기수도 매년 고향 및 타지의 친구들이 참여해 전야제를 한다. 울진 고향에서 그리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지에서 모처럼 모인 친구들과의 이야기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리라. 말이 중학교 동창회지 코흘리개 시절 초등학교도 6년을 같이 다녔고 중학교까지 합쳐 9년을 함께한 스스럼없는 죽마고우들이다. 모처럼 모인 까까머리 단발머리 옛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꽃은 술잔을 밝혀 서울의 밤이 녹아나는 듯하다.

매년 5월 네 번째 주 일요일이 재경 제동 중학교 체육대회를 치르는 날이다. 고향의 면장을 비롯해 재경 울진군 민회, 중고 동문회장을 초대하여 올해로 21회 체육대회를 치렀다. 1회에서 14회까지 분담금을 각출하여 체육대회를 치르는데 분담금으로 체육대회를 치르기에는 역부족이다. 각 기수 분담금은 체육대회 행사를 치르기에 50% 정도의 금액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회장이 경품과 찬조를 선, 후배에게 부탁이나 사정하여 받아야만, 행사를 치를 수 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일일이 전화를 해 아양을 떨 듯 부탁을 하는 것은 자존심은 저 멀리 던져버려야 가능하다. 해마다 찬조를 했던 선배들을 위주로 전화해 부탁하면 속마음이야 어쨌든 흔쾌히 마음을 주는 고마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조금은 나은 선배들도 정말 힘들지만, 마음으로 나누려는 속 깊은 선배들도 있다. 그리고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부탁해야 할 때는 죄스럽기까지 하다. 모금하다 보면 동문이지만 진짜 여러 부류의 인간성을 만난다. 돈 앞에서 인간성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백 퍼센트 공감하는 말이다. 문자만 주어도 알아서 내어 주는 동문이 있는가 하면, 전화까지 해 부탁을 정중히 하는데도 앞면을 몰수해버린다. 보기에는 사정이 다른 동문에 비해 조금 나아 보여 부탁하였건만, 냉정하다. 동문회장을 하면서 느낀 점은 동문회 찬조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이다. 나누려는 마음이 있고 동문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회장을 봐서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내는 선배들도 있다. 그나마 선배들에게는 전화로 찬조를 부탁하는 것이 조금 나은 편이다. 동기들 그리고 더더욱 후배에게는 차마 찬조 부탁을 못 하고 문자메시지로 대신했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랐던 마음은 그래도 몇몇 동기와 후배들의 자발적 찬조가 있었기에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찬조는 생각보다는 선배님들의 사심 없는 배려에 많은 찬조금이 들어와 적자가 아닌 흑자로 체육대회를 마쳤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남에게 봉사하는 자리는 자존심을 내려두고 해야 한다. 그래도 나도 인간인지라 믿었던 친구가 나 몰라라 비켜서 있는 모습은 서운했다. 이런 큰일을 치르다 보면 아쉽고 서운한 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동기회장과 얼굴까지 붉힌 것이 후회스럽다. 선배와 후배가 보는 앞에서 있어서는 안 될 볼썽사나운 낮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책하여 보며 바라는 내가 잘못한 것일진대 그리고 알아도 모른 척하고 헛기침 한번 크게 하고 뱉어 내어버리면 그만일 것일진대 말이다. 당연히 도와줄 거로 생각했던 동문이나 동기 후배의 무관심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나만의 착각이었나 동기가 회장으로 있는데 동문회보다 동기들 찬조를 먼저 챙기는 배려심 없는 행동, 그리고 친구가 동문회장이면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리라 믿었던 나만의 착각이 올해도 비껴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한순간 부는 바람이라 치부할 수밖에 마음에 담아두면 옹이가 박혀 동문이든 동기든 후배든 격이 생기기에 체육대회가 끝나는 시간에 서운한 감정은 모두 비워냈다. 그리고 고마운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 같이 나서서 도와주려는 선배나 후배가 있었기에 위안으로 삼는다. 올해로 3년 차 시골 조그마한 중학교 동문회장이지만 나름으로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후회도 원망도 없다. 나 하나 희생으로 동문 선후배들이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그리고 부족한 회장을 도와 무사히 동문 체육대회를 치른 사무국 후배들과 적극적으로 도와준 선배의 고마움을 평생 가슴에 담는다.

동문회장이란 직책은 자기 돈과 시간 그리고 다리품을 팔면서 하는 데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자리가 동문회장이 아닌가 싶다. 이제 후회 없다. 올해 덤으로 하는 회장 임기를 최선을 다해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으면 동문회이든 동창회든 멀찌감치 물러서서 당분간은 잠수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