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채비

한 세대가 지나가면 또 한 세대가 그 자리를 꿰차고 대를 이어가며, 종족 번식을 하는 것이 동물이나 식물이나 원초적 본능이다. 그중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여, 배필을 만나 백년해로를 언약하며 한 가정을 이룬다. 부부로 만나 일생을 다하는 날까지 동행하는 것이 큰 축복일 것이다.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어 노후를 보내는 주위 노인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아무튼, 남녀는 부부라는 연으로 만나 자식을 낳는다. 천륜으로 맺어진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과 희생을 한다. 국가별로 기본적으로 자식 사랑은 같을 수 있겠으나, 방법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유독, 부모가 자녀에게 헌신과 희생하는 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하리만큼 정도가 넘친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워 놓으면 자식은 부모 은덕을 당연시 치부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이제는 부모가 주는 사랑만 있는 것이지 자식이 부모에게 되돌려 주는 사랑, 즉 자식에게 효(孝)를 바란다는 것은 차츰 옛일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와 경로사상을 중히 여겼다. 효와 경로사상은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할 때, 사람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백행의 근본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시대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리고 세대 간에도 사상의 다리를 만들어 놓아, 서로의 생각 정도가 큰물이 몰아쳐 그나마 위태로이 전해져 내려오던 우리의 미풍양속의 가교 구실을 하는 다리마저, 범람하는 강물에 언제 휩쓸려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과 희생으로 자신의 전부를 내어 준다. 자식을 남들보다 잘 키우려는 부모의 욕심은, 실력이 있건 없건 간에 너나없이 모두 대학을 보낸다. 부모 된 심정으로야 마땅히 자식을 대학을 보내야 인간 대접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부모들도 조금씩 개선 되어간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자녀에게는, 시대에 맞게 자녀의 적성을 살려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고 이끌어 주어야 할 부모의 책무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못 구하는 젊은이들이 100만에 육박한다니, 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인적 낭비인가!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 오는 판국에, 정작 우리 젊은이들은 직장이 없어 놀고 있다니, 참 큰 문제임이 틀림없다. 우리 사회가 양성한 학벌주의가 낳은 결과물이다. 통계에 따르면 자녀를 낳아, 대학졸업까지 기르고 가르치는데 2억5천만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두 자녀를 가정하여 본다면 5억이 들어간다는 셈법이다. 그리고 자녀를 특히 아들을 결혼시키려면, 집을 사주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집 전세라도 마련해줄라치면, 요즘 빌라 전세 시가가 1억 7천만 원이란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노후 자금이고 뭐고 남김없이 자식에게 쏟아붓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여긴다. 자식에게 모두를 내어주고도 남는 것은, 대접받지 못하는 노후의 초라한 모습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자식에게 버림받는 노인학대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남도 아닌 자식이라니, 노년의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든 설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에 손수레로 폐지를 줍는 노인이 있었다. 평생 농사일밖에 모르고 성실히 사는 촌부였는데, 농사짓던 토지가 도시개발로 편입되면서 하루아침에 졸부가 되었단다. 빌딩을 두서너 채 지었고, 집도 몇 채를 지녔지만, 진작 당신은 폐지를 주어, 하루 5천 원도 안 되는 돈벌이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가락질하며 쑤군거리는 것을 보았다. 남의 안목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들이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물으면, 소일거리 삼아 한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들은 건물 월세를 받아 외제 자가용을 타고 골프나 치며 호의호식하는데 말이다. 일반 상식으로야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노인은 돈이 있어도 쓰는 방법을 모르고, 돈 모으는 낙으로 살았으니, 탓할 수만 없는 것이 아닌가? 파리나 런던 중심가의 전망 좋은 광장에 값비싼 와인을 마시는 층은 대부분 노인층이란다. 노년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멋진 모습이다. 젊은이 들이야 편의점 등 저렴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평상시 모습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명동이나 번화가에서 고급 와인을 마시는 노인을 보기란 손에 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일상 풍경이 그려지는 곳은 탑골공원이다. 사회 봉사단체에서 주는 무료 급식을 받아먹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일부 부유층 젊은이들은 어떠한가? 사회적으로 공헌도도 없고 국가 발전에 기여도 없는 이들이 고급 양주에 고급 외제 차를 타고 거들먹대고 다닌다. 부모의 돈으로 진작 부모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누린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한 세대를 일반적으로 30년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는 부부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죽음에 이르는 기간이 길어야 30년이었다. 이 30년을 우리는 한 세대라 칭한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맞아 결혼 후, 부부가 60년을 사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제, 한 세대를 60년으로 고쳐 불러야 옳지 않을까? 오늘날, 경제 성장과 의학 기술 발달로 갈수록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에 이미 고령화 시대로 진입했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 한다. 이는 엄청난 축복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크나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국가도 개인도 아직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퇴 후 경제활동 기간도 예전보다 줄어들고 노후 기간이 경제 활동 기간의 배를 초과하는 양상으로 변해간다. 의학 발달로 수명 연장이 개인이나 우리 사회에 주는 부담이 적잖다. 앞으로의 만만치 않은 숙제를 미래세대에 던져주고 있다. 물론 건강하게 100세 인생을 산다면야 그 얼마나 축복이랴. 그렇지만 채 준비되지 않은 100세 세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곳곳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노인들의 노후 문제점이 매스컴에 통해 전해오는 소식들은 그다지 달가운 소식이 아니라 침울한 소식들뿐이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보도를 접했다. 안타까움을 넘어 이제는 현실화되어 피부에 와 닿는다. 이 문제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곧 닥쳐올 내일의 우리 세대 자화상이다.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기대는 것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된 현실이다. 부모세대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노후대책을 늦은 감이 들지만, 우리 세대는 이제부터라도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태양은 뜰 때 아름답고 질 때 아름답다. 우리네 삶도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후의 모습이, 해 질 녘 황금빛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웠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