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올해도 어느덧 한 해의 허리를 꺾는 유월하고도 하순이다. 세월은 어찌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엊그제까지 한파로 꽁꽁 싸매고 잔뜩 움츠리고 다닌 듯한데, 계절은 이미 봄을 넘어 혹서와 장마의 계절 여름으로 들어섰다.

우리 가족은 지난달 말경의 주말에 2년여간 살던 집에서 5백여 미터 떨어진 옆 동네 작은 아파트단지로 이사하였는데, 20여 일 지나서 서재며 창고며 거실 등 정리가 얼추 끝났다. 살 때는 삶의 부스러기들이 이처럼 많은지 몰랐었는데, 막상 이사 가려고 꺼내 놓으니 내 앞에 태산같이 쌓였다. 그래도 이곳저곳 정리해서 땀 흘려 정리하고 갈무리하니, 그 많던 부스러기들이 대견하게도 제자리인양 자리 잡고 구석구석 앉아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 후 30여 년에 헌 집을 사서 다시 짓기도 하고 신도시 아파트단지에 입주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전, 월세를 전전하며 이사를 한 횟수가 14번 정도 되고, 셈하여보면 약 2년여에 한 번씩 이사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많이도 이사했고, 따라서 집들이도 종종 했던 기억들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요즘 이사는 대부분 거주형태의 매매나 계약이 완료되는 시기에 맞춰 가족들 일손이 많이 모이는 주말에 날짜를 정하기 마련인데, 그래도 일진(日辰)과 방위(方位)를 보아 날짜를 정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손 없는 날 이사는 이삿짐센터에서도 얼마간의 웃돈을 받는다고 한다. 이사 날짜는 기본적으로 금하는 방위인 삼살방위三煞方位(세살歲煞, 겁살劫煞, 재살災煞)는 피하고 손 없는 방위를 택한다고 하는데, 음력으로 1이나 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3과 4가 들어가는 날은 서쪽, 5와 6이 들어가는 날엔 남쪽, 그리고 7과 8이 들어가는 날은 북쪽에 손이 있어서 피해야 하며 나머지 9와 10이 들어가는 날에는 동서남북 네 곳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람의 일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는 귀신인 ‘손’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로 ‘손 없는 날’이라 하여 아무 곳으로나 이사하여도 탈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손 없는 날이 아니더라도 손 없는 방향으로 이사한다면 탈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제주도에서는 이사 적기인 신구간(新舊間)에 도민의 거의 15%가 이사를 한다고 한다.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까지, 약 7일간이라고 하여 너도나도 이사한다고 한다. 이 신구간은 제주도에 사는 1만 8천여 신들이 일 년 중 한번 이 시기에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세상사에 대하여 보고를 하고 그 공적(功績)에 따라 새로운 곳으로 발령을 받는다고 한다. 즉, 신관(新官)과 구관(舊官)이 교체되는 시기이므로 이 기간을 어기면 동티(動土)가 나서 화를 당하거나 가족이 다치는 등의 해(害)를 입는다는 믿음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리적으로 농경사회에서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이고 농한기에 해당하여 일손이 한가할 때 대사인 이사나 집수리를 함으로써 농사철에 일손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적 풍습인데, 근간에는 이사가 집중 되어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한 이삿짐 운반의 어려움과 쓰레기의 집중 발생, 전화 및 통신의 이설작업 급증과 짧은 기간에 집중된 이사로 쫓겨서 빠듯이 하는 문제점 등의 속출로 제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폐습(弊習)으로 단정한다고 하지만 어른들에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민간의 풍습을 단번에 없애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렇지만 너도나도 가족 모든 구성원이 생업현장으로 출근하는 오늘날에는 비나 눈이 오지 않고 날씨가 좋은 휴일이 바로 손 없는 날이고 적당한 이사 일인 것이다.

참고로 조선 후기 대표적 인문지리서인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지리가 좋은 곳, 생리가 좋은 곳, 인심이 좋은 곳,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는 곳’을 살 터로 잡아 이사 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우리 민족의 지배적인 사상인 풍수지리와 음양과 오행에 따라 방향과 날짜를 잡아 이사 간 곳에서 발복하여 기운이 융창하고 사업번성과 부귀영화로 행복을 계속 누리고 싶은 소망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남향(南向)집에 동향(東向) 대문’을 최고의 주거 환경으로 생각하면 많이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사를 하는 것도 여러 가지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사 갈 때 못 쓰는 물건이나 쓰레기는 그냥 두고 쓸지도 않는데, 한 집안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물건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이 서려 있다고 여겨 쓸어내면 복을 버리는 결과로 보기 때문이란다. 또한, 들어갈 때는 어른이 먼저 들어가서 가택신(家宅神)에 예의를 표하거나 부정을 막는 상징인 소금 자루는 맨 나중에 들고나와 이사 갈 집에 맨 처음 들인다거나 가난의 상징인 찬밥은 절대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다. 이 밖에도 이사 갈 때 솥 안에 요강을 넣어 간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기본적 생리인 먹는 것과 배설을 잘하여 건강을 지키려는 기원이며, 이사할 집에 솥을 걸면 이삿짐을 다 옮기지 않아도 이사한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이사하기 며칠 전에 미리 비어 있는 그 집 안방 한가운데 낡은 압력밥솥 하나를 먼저 가져다 두었는데, 짐작건데 그날은 손 없는 날이었을 것이다.

이사 후에는 팥죽을 끓여 집안 여러 곳에 뿌리고 이사떡으로 시루떡을 해서 이웃과 나눠 먹는데, 그는 불을 상징하는 붉은 팥으로 악귀를 물리치고 인사를 겸한 인정의 나눔으로 그런 풍습이 전하여 지고 있다. 또한, 가까운 친지들과 벗들을 초청해 조그마한 상차림으로 대접하는 집들이가 있다. 하지만 각박한 요즘 사람살이에는 이사하는 집이나 살고 있는 이웃이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데면데면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이사도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해서 직원들이 짐을 나르고 정해진 위치에 설치하고 수납을 해주니 딱히 힘든 일도 없고 이웃 눈치 볼 필요도 없어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대충 짐이 제 자리를 잡고 도와주러 모인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축하주를 마시고 하루를 보냈는데, 딱히 따지지 않아도 조금의 불미스러운 일이나 ‘손’은 없었다.

그 밖에도 이사를 한 후에는 첫날밤을 머리를 부엌으로 향해 자거나 부적을 붙인다거나 가택신에 제를 올린다고 하는데, 가택신에는 그 가정 최고의 신이고 재복과 길흉을 주관하는 성주신(成主神), 택지를 담당하는 지신인 터주신(터主神), 아궁이를 담당하는 부엌의 화신인 조왕신(竈王神)과 구렁이 두꺼비 족제비 등을 재산신의 한 가지로 여긴 업신(業新)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부정(不淨)을 막고 너그럽게 봐 달라는 의미로 전해져 내려온 민간 풍습인 것이다. 집들이 손님들도 성냥이나 양초 등을 선물로 사가지고 오는데, 이는 정화성, 신성성의 상징인 불의 의미로 재산이 불꽃처럼 일어나라는 기원이 담겼다. 이 밖에도 비누, 화학세제, 치약, 휴지 등이 있으며 집들이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이들 여러 가지를 박스에 종합하여 생산된 ‘집들이 세트’라는 상품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드니 그것도 집들이와 함께 한때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대충 집 정리가 될 즈음인 지난주 말에는 가까운 벗 몇 부부를 초청하여 집들이를 하였다. 집들이? 집들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조금은 낯 설은 단어다. 이사를 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집들이하라고 성화를 밭쳐서 하긴 했는데, 집을 사서 가는 것도 아니고 전세에서 전세로 가는 이사인데도 불구하고 이리 성화인 것은 경제적으로 힘든 뻘밭에서 십여 년 고생하다 겨우 빠져나오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 주던 친구들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걸 자기 일인 양 같이 기뻐해 주겠다고 하여 기꺼이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요즘은 각종 요식업이 발달하고 성업 중이라 가까운 뷔페식당이나 조용한 펜션에서 출장 차림상으로 집들이 파티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상식으로는 이사한 터에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작은 잔치이니 조금 번거롭고 공간이 협소하더라도 이사 간 집안에서 하는 것이 격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단골 식당에 예약해서 식사하고 집에서 차를 한잔 하자는 아내를 설득하여 집에서 하기로 하였다. 물론 그 수고로움의 대부분을 책임지기로 하여 돼지 앞다릿살을 3근 사서 우리 집 전문수육요리사인 내가 정성껏 조리하고 술과 음료 등을 준비하였다. 그거로는 조금 부족한 듯하여 퇴근길에 아내는 자주 다니던 낙지요릿집에서 해물찜과 낙지해물파전을 사 와서 상차림에 보탰다. 거기에 벗이 가져온 산수유막걸리에 아욱된장국과 잡곡밥을 더하니 나름 성찬을 이뤘다.

깊어가는 오월 밤에 소찬에 웃음과 덕담을 보태서 손님으로 온 친구 부부들과 저녁을 하고 인근의 정원이 아름다운 찻집에서 매조지로 조촐한 집들이를 무사히 마쳤다. 친구들도 거듭 축하와 행복을 기원해 주었다. 이곳이 아직도 내 집 내 터는 아니더라도, 손 없는 날 이사는 아니더라도, 우리 가족 모두 별 탈 없이 건강한 나날이 되고 융창한 발복(發福)이 있기를 기독교 신자인 내가 가택신(家宅神)께 감히 기원해 보는 오늘이다.

2016년 6월 장맛비 시작하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