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흐벅지게 눈이 내린다. 사라락 내리는 소리가 불빛 저항을 뚫고 내 방으로 성큼 들어선다. 참 좋다. 이대로 고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슬며시 든다.

내 인생에도 이런 호사를 누릴 기회가 온 것이다. 업무와 업무 사이에 잠깐의 틈을 얻어 산촌의 외진 골짜기에 들어 앉아 온전히 글에만 신경 쓰게 되었다. 내가 아니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도회지 냄새가 가신 산촌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제’니 ‘**산방’이라고 쓴 서각을 걸어 두고 유유자적 글에 맹진하는 게 버킷리스트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조선일보에 칼럼을 올리시는 조용헌 선생의 ‘휴휴 산방’을 동경하기도 하면서 언젠가를 기약하기도 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또 살아서 언제 이렇게 호젓하게 글방에서 텔레비전도 끊고 인터넷도 멀리하고 산촌 일기를 쓸 기회가 오기는 하겠는가? 그런데 다만 한 달이나마 혼자서 오롯이 산촌에 들어 앉아 시어와 씨름을 할 기회가 생겼으니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하겠다. 하긴, 또 다시 그런 행운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딱히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아무튼, 호기에다 아내의 동의가 참으로 내게 귀한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이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나름의 다섯 금기를 적어 벽에 붙여 놓고 귀하게 쓰고 있다. 퇴촌할 때는 어느 정도 내 문학의 키가 더 자라기를 바라면서. 여기는 춘천의 강촌, 그 중에 남면 발산리 좌방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데, 죽은 것의 저지는 등산로 입구의 태평사라는 절이 맡고 산 짐승은 춘천고속도로가 차량의 굉음으로 가로막고 있다.(바로 옆으로 춘천고속도로가 질러가고 그 너머가 좌방산이다)

내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되는데, 서울에서는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일로 잠을 못 이루지만 여기서는 해가 떨어지면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으니 늦어도 8시면 잠자리에 들어서 적어도 8시간을 자는 셈이니 부지런하다고 할 수도 없는 기상이다. 옛사람의 시 한 구처럼 그저 ‘올 이도 갈이도 없는’ 밤이다. 그렇게 일어나서 세수하고 매무새 정돈한 뒤 현대시조와 정면 승부한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독서. 글을 잘 쓰는 방법의 하나가 다독(多讀)이니 샛길로 빠지는 건 아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난 8시에는 인근의 꽁꽁 얼어붙은 추곡 저수지로 빙어 낚시를 간다. 잡히든 말든. 12시경 귀가하여 점심을 한 뒤 이번에는 좌방산에 오른다. 태평사를 옆에 끼고 오르는 코스는 1킬로 남짓으로 다소 가파르지만 운동 겸 게으름을 피하려고 거르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또한, 산에 오르면 도토리를 한 됫박씩 주워서 내려오는데, 계절이 겨울인지라 잔설을 헤치고 낙엽을 들춰서 줍고 있으니 이는 줍는 다기보다는 캔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리라. 더욱이 약초 캐는 호미를 동원하고 있으니 캐기는 캐는가 보다. 이곳 좌방산에는 도토리가 너무 많다. 산짐승이 미처 다 못 먹고 남긴 게 부지기수고 심지어 몇 년 묵은 도토리는 뿌리를 내려 땅에 박고 싹이 트고 있는 것도 많다. 고단하지만 이건 하루에 한 마리씩 괴목에 솟대를 만들어 앉히는 일과 함께 거를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산에 오를 때는 강아지 두 마리가 나를 따른다. 왠지 모르지만 ‘콩’이라고 부르는 강아지(아무래도 약간 큰 고양이만 한 체구 때문인 듯)와 야외에 불을 때고 나면 그 따뜻한 온기를 찾아 잿더미에 몸을 파묻는 버릇 때문에 등이 항상 거뭇하여 내가 ‘먹물’이라 부르는 강아지인데, 사실 두 마리 모두 약간의 장애가 있다. 유기견을 주워다 놓았다는 콩은 독사에 눈 주위를 물린 건지 한쪽 눈 주위가 항상 벌겋고 또한 뒷다리 하나도 정상이 아니어서 뛰어다닐 때는 그 다리가 약간은 하늘을 향한 채 겅중겅중 뛰어서 보는 내가 불편하다. 먹물 또한 어릴 때 주인의 승용차에 다리가 깔려 뒷다리가 삐뚤어져 있는데, 용케도 활동하는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싶다. 하긴 나도 이때껏 살아오면서 완전 정상적으로 삶을 산 적이 있나 싶어 동정이 아닌 정감이 간다. 그래도 개의 본분인 집 지키는 일은 열심이어서 낯선 사람의 기척이나 들어오는 자동차를 보면 어김없이 콩이 달려나가 짖으며 요란을 떨면, 먹물도 덩달아 따라 나서며 짖는다. 얼마나 철두철미 한지 이곳을 찾은 한 지인은 콩을 보고 “저건 개가 아니라 완전 ‘세콤’이네!”라고 하여 웃으며 동의한 적이 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빙어낚시는 쉬고 햇빛이 산기슭에 쫙 퍼지는 10시 30분경에 좌방산에 올랐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콩은 내 앞에 서서 달리다가 내가 늦으면 기다리고, 때론 눈 쌓인 산기슭을 가로질러 뛰기도 하지만 내가 당도하면 어김없이 전초병이 되어 익히 아는 이 산길을 앞서 간다. 반면 먹물은 항상 내 뒤를 그것도 일 미터 안팎으로 쫄래쫄래 따라온다. 내가 힘들어서 걸음을 멈추면 먹물도 어김없이 멈춰서, 내가 돌아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아마도 ‘후방은 내가 책임지니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마치 산행길 산악대장인 양 리딩과 엔딩을 맞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오르면 나는 이들의 수고에 보답하는 의미로 배낭에 넣어 가지고 온 햄을 두어 쪽씩 던져주면, 꼬리를 흔들면서 맛있게도 먹는다. 나도 갈증을 덜려고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본격적으로 도토리를 캐어 줍는다.

이때도 둘의 행동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먹물은 주위에서 떠나지 않고 콩은 제 멋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내가 궁금하여 “콩!” “콩!” 하고 소리치면 어디서 무얼 하다 왔는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면 반가움의 보상으로 또 한쪽씩의 햄을 던져주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욕심을 부려 도토리를 더 많이 줍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 했다. 하긴 오늘은 일요일이라 낚시는 접고 오전에 산에 올라온 터라 시간적인 여유도 많으니 조금 게으름도 부려볼 양이었다. 집에는 강아지들 데리고 산에 갔다가 2시쯤 귀가할 예정이라고 쪽지를 써 붙여 놨으니 설사 강아지 주인이 와도 이들이 없어졌다고 걱정은 하지 않겠지. 거의 한 시간여를 지체하고 내려가려니 먹물은 순하게 주위를 떠나지 않고 엎드려 있는데, 콩은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까까지도 부르니까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나타나곤 했었는데 10 여분을 부르며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콩. 그럼 집으로 먼저 내려갔나? 하긴 요 며칠 산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열심히 군데군데 오줌을 싸서 영역을 표시하고 흔적을 남겼으니 이 정도의 산길쯤은 혼자서도 능히 내려갈 수 있겠지. 하지만 슬그머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니 조금 더 기다리기 싫어서 우리를 뒤에 팽개쳐 두고 혼자서 집으로 내려갔나?’

그래도 중간중간 “콩! 콩!” 외쳐 부르며 ‘혹시’를 바라면서 구시렁거리며 하산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먼저 왔을 것 같았던 콩의 집이 비어있다. 결국, 우리가 콩을 버려두고 먼저 온 것이다. 이런 큰일 났네. 어쩌면 오늘 개 값 치르겠네. 어쩌나? 일단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소주도 한잔하면서 일단 기다려 보자. 그래도 혹시 안 돌아오면 산에 다시 올라 가볼까? 돌아오겠지? 아냐. 혹시 나를 기다리며 산속에서 웅크리고 떨고 있진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난다. 나는 아들이 둘이라서 평소에 농담처럼 “한 놈이 없어도 나에게는 또 한 놈의 아들이 있소이다.” 했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짧은 강아지가 돌아오지 않아서 마음이 안절부절 이니, 내 아들이 집에 못 돌아온다면 오죽 더 마음이 아프겠어? 아마도 가슴이 다 녹아내리겠지. 앞으론 그런 농담은 입에 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해본다. 일단 밥을 해서 먹고 술도 한 잔 곁들이고 나니 1시간도 더 훌쩍 지난 것 같다. 이제는 확인해서 없으면 별수 없이 다시 산에 올라가야 되겠는데,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내려올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쁘다. 그래도 최선은 다해 봐야지? 주섬주섬 등산복을 챙겨 입고 스틱을 뽑아들고 나가다 대문 옆의 콩 집을 들여다보니, 앗싸! 콩이 돌아와 있는 거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다시 어두워지는 산에 오를 필요가 없어졌으니 생고생도 면했지. “콩! 어디 갔다가 이제 내려왔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런데 이놈이 평소하고 다르게 불러도 시큰둥, 뭘 줘도 본체만체. 아마도 저 혼자 팽개쳐 두고 저희끼리 내려왔다고 삐쳐도 한 참 삐쳤나 봐. 챙겨 입은 참에 시험 삼아 다시 눈이 덮인 주위의 산책로에 데리고 갔는데, 역시 앞에 서고 뒤에 서서 나를 따르는 건 여전하지만, 간간이 불러도 콩은 내게 오지를 않는 거야. 정말 많이 삐쳤네. 미안하다 콩.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할게. 미안한 나는 내가 저녁에 먹을 김치찌개에서 꽁치 큰 토막을 건져 콩에게 선물했다. 오늘의 일을 사과하는 마음으로.......

좌방산은 하얀 눈에 결박당해 꼼짝 않고 서 있다. 내 눈꺼풀도 어둠에 결박 당해 꼼짝을 못하겠다. 내일 아침에는 빙어낚시도 못 가니 일찍이 목욕물 데워놓고 눈이나 신나게 치워야겠다. 이런 고립을 나는 은근히 기다린 것 아닌가? 펑펑 내려라. 꼼짝도 할 수 없는 고립으로 나를 묶어라. 이 산촌에.......

2015년 1월 18일 저녁에 좌방산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