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13-09-06 16:00

ㆍIP: 112.xxx.120

뱀장어 잡던 날

뱀장어 잡던 날 / 임정수

낙동강을 막아 하구둑을 만든 이후로 강에서 낚시다운 낚시를 한 번도 못해 본 것 같다.
오늘은 큰맘 먹고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강 낚시를 갔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어차피 젖을거라 슬리퍼를 신고 가려다
장화를 꺼내 신고 강으로 갔다.

예전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있어 어디쯤에 낚시를 던지면
어떤 고기가 잡히는지 대충 짐작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산복도로를 만들어 수 많은 차량들이 지나다니기에
마땅히 낚시를 던질 포인트를 찾을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이랴...
물길을 막아놓으니 생태계가 파괴된 때문인지 어류들이 지들 맘대로다...

굳이 이것저것 따지며 세세하게 늘어놔봤자 구설수에나 오르고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될테니 이쯤에서 대충해두고...

암튼, 요즘은 붕어와 잉어를 잡기도 힘드는데 다른게 잡히랴싶어
적당한 위치에 낚시를 던져 두고 천천히 고독을 씹었다.

어차피 손맛만 보려고 온 것이기에 이런 고기면 어떻고 저런 고기면 어떨까...
무조건 한마리라도 잡으면 되는거지...

30분쯤 지루하게 기다리다 보니 입질을 하는 폼이 에사롭지 않다.
그래도 낚시라면 장어를 잡는게 나의 전문이 아니던가.

이왕이면 민물장어 한마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낚시를 올리는데...
역시나...아직은 예전의 실력이 녹슬지 않아 기분이 좋다.

춤을 추듯 꿈틀거리는 굵직한 장어가 잡혀서 올라오는게 아닌가.
'앗사라 삐야~'

처음에 강으로 올 땐 어떤 고기가 잡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단순히 손맛만이라도 좀 보았으면 했었는데...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여 한마리를 잡고 보니
한마리를 더 잡았으면 하는 욕심이 앞선다.

그래, 한마리만 더 잡자...

삼십분을 더 기다려도 피래미새끼 한마리 잡히질 않는다.
아무래도 한마리로 만족하라는 것 같다.

하긴...손맛만 볼려고 온 것이니 고기를 담을 훌라같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비닐 봉지도 없고...

낚시 도구를 챙기고(별로 챙길 것도 없지만...) 보니 가늘고 작은 막대기 하나가 눈에 띄어서
1미터 가량 낚시줄을 끊어 막대기에다 묶었다.

장어가 매달린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고 걸었다.
오늘 같은날엔 어깨에 힘도 좀 주고...

도로가로 나오니 차들이 바람처럼 쌩쌩 달린다.
저만치에서 신호 대기중이던 활어차가 나를 보더니 내앞에서 멈춰 선다.

'누구지? 나를 아는 사람 같은데...'

예전에 거래하던 거래처 사람이다.
마침 자연산 장어가 필요했었는데 잘 되었다며 자신에게 장어를 팔으라고 한다.

얼마에 팔지?
초짜도 아니고 빠꿈이라서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도 없다.
어차피 더 달라고 해도 더 줄 사람도 아니지만...

그는 차에서 내리더니 제법 묵직한 돈다발을 꺼내어 한장씩 세었다.
도대체 얼마를 줄려고 하는건지...

"십만원이면 되요?"
"십만원? 치아뿌소..."
"아따...십만원이면 되지...자, 이만원 더 줄께요."

"이거 갖고가면 삼십만원은 더 받을낀데..."
"나도 좀 남가 먹어야죠, 자, 그만하고 어서 이거나 받으소."

"그라먼 그거라도 주소, 아참...장어 있능교?"
"지금 배달 가는 길이라 많이는 없고..."

"한 마리면 되요, 장화를 신고 나왔더니 지금은 비도 그치고 햇볕이 나올려고 하는데
장어라도 한마리 매달아서 가야지 이대론 쪽팔려서..."
"아...그라먼 있지요."

내가 잡은 자연산 장어는 이렇게 팔고...
양식 장어 한마리를 얻어서 장어를 꿰어서 온 낚시바늘에다 매달았다.

횡단 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다 장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 해볼겸
장화발로 툭 툭 건드리듯 살며시 찼더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데 한 성질하는 장어가 가만히 있을리가 있겠나,
이리저리 요동을 치며 마구 발악을 해대는 것이다.

마침 내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의 조수석 유리창이 내려가더니

"아저씨..."
"예?"
"그거 장업니꺼?"
"예...와예?"

"한번 볼 수 있습니꺼?"
"예, 보이소."

'짜슥...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지금 보고있는게 바로 장어인기라...'

그사람은 비상등을 켜더니 한쪽 가로 바싹 붙여 댄다.
그리곤 황급히 차에서 내려온다.

"히야...참 좋다..."
"좋지예..."

"근데 장어가 와 이렇게 하얗습니꺼?'
"그건 잘 모르겠네예...비가 와서 물이 싱거워서 그렇나....?
사람도 추우면 시퍼렇게 질린다 아입니꺼."
"맞지예..."

'맞긴 뭘 맞아...
이사람...장어가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내가 장화를 신고 이렇게 장어를 매달고 있으니 금방 잡아온 것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애초에 먼저 물어 본 것도 아니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 양식장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이거...저한테 팔면 안됩니꺼?"
"예? 한마리 뿐인데예..."
"괜찮습니더....가지고 가서 우리 어무이 푹 고아드릴려고 그란다 아입니꺼."
"효자시네예..."

"아입니더...지금껏 고생만 시켜드렸다 아입니꺼..."
"어무이 고아드린다 카는데...그냥 가지고 가이소..."
"어데예...공짜로 갖고가면 별로 효험도 없을낍니더."

그러더니 지갑에서 5만원짜리 지폐를 두장 꺼내더니 앞으로 내민다.
"뭡니꺼?"
"이래 하면 안되겠습니꺼?"

"허어...이양반...사람 잡을 일 있나....그냥...한 장만 주이소."
"그래도 되겠습니꺼?"
"그냥 드리고 싶은데 자꾸만 돈을 내미시니까 한 장이라도 받는겁니더."
"고맙습니더이."

'고맙긴...나도 지금 죽을 맛이거든요...'

경찰 순찰차가 지나가다 우릴 지나치더니 저만치에 차를 세운다.
조수석에서 한 명이 내리더니 천천히 걸어오는게 아닌가.

'이러다 사기로 잡히는건 아닌지...'

"저기...얼른 차 빼야겠네예...스티카 끊기면 과태료가..."
"앗...얼른 도망가야겠습니더. 고맙습니데이..."
"퍼뜩 가이소.."

'짜슥아...내가 더 고맙데이...'

그는 순찰차를 지나며 얼른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찰은 내게로 곧장 다가왔다.

"방금 그거...장어 아입니꺼?"
"맞습니더."

"강에서 장어가 잡히던가예?"
"예...30분만에 한마리 잡았다 아입니꺼."
"햐~기술이 좋으시네예."
"기술은예...평소 실력이지예 뭐...하하하..."

"어디쯤에서 잡았습니꺼? 나도 비번날 와서 낚시 좀 할라고예."
"저기...저쪽에 보시면....다리 있지예? 세번째 교각에서 던지면 됩니더."
"예...고맙습니더..."

'아저씨예...니도 아까 글마하고 마찬가지네예...'

"나중에 쉬는 날 많이 잡으이소."
"예...마이 잡으께예."

순찰차가 내눈앞에서 점차 멀어지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에휴~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이렇게 살려곤 안했는데...

따지고 보면 나는 죄가 없는기라...
강에서 낚시를 하고 싶어서 낚시를 했을 뿐이고~

지나가던 활어차에서 팔라고해서 팔았을 뿐이고~
신호대기하던 승용차에서 돈을 쥐어 주어서 받았을 뿐이고~

지나가던 순찰차가 장어가 잡히더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도 어쩐지 뒤통수가 건질건질한건 왜일까?

이상하다...
아저씨!
아저씨 니는 알겠습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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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2013-09-06 19:44	임정수 작가님! 안녕하세요. 맞습니다. 임 작가님은 죄가 없지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으니 그들은 불만이 없었을테니까요. 도라지도 산삼이라고 여기고 먹으면 그 효용은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저도 언젠가 임 작가님을 따라 장어 잡으러 가야겠습니다. 더도말고 딱 한 마리만 잡으면 의정부에서 그 곳까지 멋진 추억과 함께 경비 빼고도 좀 남겠는데요.ㅎㅎ 임 작가님의 경쾌한 글 잘 감상하고 머물다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나중에 장어구이 드실 때 한 토막이라도 택배 부탁드립니다.^^

박용규 2013-09-10 17:13	재미있는 일화를 엮은 솜씨 대단합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염규식 2013-11-03 01:53	생생한 스토리 구성이 뛰어납니다--늘 건필하십시요

주응규 2014-02-20 18:58	가슴에 아늑히 번지는 좋은 글 가슴에 담습니다 봄향이 스물스물 불어 오는 듯합니다 작가님의 글 향도 봄꽃같이 향기를 더하기를 소원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임정수 2014-04-01 14:30	안녕하세요, 박용규 작가님! 부족함이 많고 엉성한 글을 그토록 예쁘게 봐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서재에도 자주 들어와보고 꾸준히 습작하면서 인사도 올려야 도리이온데 사는게 뭔지... 늘 시간에 쫓기듯 빠르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실날같은 희망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발버둥 치다보니 늘 마음만 앞설뿐 맘처럼 쉽게 되질 않는군요. 하긴... 산다는 그 자체가 쉬운게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늘 건안/건필하세요. ^.^

임정수 2014-04-01 14:43	안녕하세요, 이인철 작가님! ^.^ 지난 번에 답변 댓글을 올렸던 것 같은데... 오늘 모처럼 시간을 내어 들어와보니 댓글이 사라진 것인지...아님, 제가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건강히 잘 지내시죠? 그동안 무척이나 바쁘게 뛰어 다니다 보니 이제서야 겨우 들어와봅니다. 심신이 편해야 서재에도 자주 들어와볼텐데... 늘 바쁘게 살다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게 무척이나 힘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사월에도 좋은 일들이 가득 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임정수 2014-04-01 15:06	《Re》염규식 님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들어와 인사드리질 못해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너그로히 이해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임정수 2014-04-01 15:13	《Re》주응규 님 ,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자주 서재에 들려서 습작도 하고 인사도 들려야 도리이온데 늘 바쁘게 살다보니 좀처럼 뜻대로 되질 않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개한 봄꽃이 즐비하게 늘어선 둑길을 달리면서 문득 이 향기가 서재에도 전해질까 생각하며 들어왔는데 역시나... 앞으론 서재에서 편히 쉬면서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로 자신을 돌아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늘 건안/건필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나를 찾아 떠나는 사월에

나비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