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제목 / 끼니

시골에서는 한 끼 밥을 먹는다는 것을 매우 소중히 했다.농사일은 하루 세끼 밥을 든든히 먹어야 일에 능률이 오르고 일 할 기운도
생긴다. 농사짓는 일이 육신으로 움직이는 중노동이다. 아침을 배불리 잘 챙
겨먹고도 새참이라고 하는 간단한 분식 종류를, 점심 먹기 1시간 전에 간식
으로 먹기도 했다. 그렇게 먹어도 땀 흘리는 일에는 허기가 쉬 찾아들었다.
196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여름, 겨울, 정규방학 말고도 봄가을
두 차례 단기방학이 더 있었다. 바쁜 농사철에는 죽은 귀신도 일어나 일손을
거든다는 시골 민담이 있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거들면 얼마나 거들어 주겠
는가? 하겠지만 그 시절 장녀로 태어난 나로서는 집안에 한 몫 단단히 거들
어 주는 일꾼으로 대접받았다.
가을 추수가 막바지로 치달았을 즈음, 아버지께서는 나더러 점심밥을 타작마
당으로 갖다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 그 당시 내 나이가 어름푸시 열다
섯 아래라는 사실이다. 나는 넷째 동생 젖먹이를 데리고 집을 보면서 타작마
당에 점심을 만들어 가야 하는 일거리를 명령받은 것이다.
탈곡기가 수동식이라, 발로 밟아 벼를 털어내는 것이라 힘이 들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시골에서 별안간 시장을 봐 와야 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시장역시 너무 멀어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어머니는 날마다 볕 좋은
날, 벼 타작에 매달려 시장가서 고기나 생선을 사다 놓을 틈도 없나보다.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김치 냉장고나 일반 음식을 저장하는 냉장고가 없었다.
내 어린 생각에도 아버지의 명령에 당혹스러운 기분이다. 집안어른들은 추수
를 한답시고 들판으로 다 나가고 나 혼자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한숨이
저절로 터졌다.
그래도 아버지의 명령인데 내가 김치에 밥만 해 가면 나의 의무는 잘못된
것이 될 것 같았다. 집안을 세세히 살펴보니 닭장에 병아리는 두 달만 있으
면 계란을 낳을 존재라 귀한 몸이고 한 마리 잡아서 찌개를 한다면 어른 넷,
먹기에는 부족하다는 계산이다. 남새밭에 무를 뽑아 생채를 묻혀놓고 가을
상추를 뜯어 겉절이도 해보았지만, 채소반찬만 먹으니, 쉬~배가 고플 것 같은 내 생각 꼬리에 고기를 마련 할 대책을 세웠다.옳거니, 우리 집안에서 제일 잘 먹고 빈들빈들 낮잠만 즐기고 있는 저 녀석
을 보양식으로 부모님 입맛을 놀라게 해 드리리다. 아무리 잘 키워도 농가
소득에 별 보탬을 주지 못하는 저 녀석들, 토끼장을 들여다보니 토끼가 새끼
를 12마리 낳은 지, 1개월이 넘었다.
어미가 순하고 살이 토실통실 찐 모양새가 안성맞춤으로, 토끼를 잡아 요리
를 한다면 좋겠다는 판단이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부엌 식칼을 장독뚜껑에다 쓱쓱 싹싹 문질러 갈았다. 닭장 앞에다 짚 가마니
를 깔고 큰 나무도마를 그 위에 갖다놓았다. 닭장 속에 닭들이 놀란 자세로
모가지를 빤빤히 세우고 꼬꼬 댁이다.
토끼장에 가서 아기 토끼들을 옆으로 물리고 어미토끼 귀를 모아 쥐고 밖으로 끌어내니, 토끼는 뒷다리를 있는 그대로 뻗쳐 버둥대고 저항했다. 거적가
마니위에 토끼를 옆으로 눕혀, 내 양쪽 발로 토끼 앞다리, 뒷다리를 야무지
게 밟고 모가지를 비틀어 숨통을 막는 방법으로 도살했다. 네 발바닥을 제거
하면서 두 귀까지 절단했다. 얼굴 정면 십자로 칼 선을 넣고 목선 아래까지
길게 칼집을 그렸다 가죽을 벗기는데 녀석 엉덩이에서부터 거꾸로 벗겨내는
과정에서 토끼 머리 부분이 잘 벗겨지지 않아 무척 애를 썼다. 털가죽이 엄
청 두꺼워, 가죽으로 버리기에 살점이 묻어 나갈까하여 아까운 생각도 들었
다. 가죽을 다 벗겨 놓은 토끼 몸은 형편없이 작아 보여 무척 실망스러웠다.
초등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토끼가 거북등에 업혀 용궁으로 가는 이야기
속에서 토끼 간이 약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고기토막 작업을 하면서 토
끼 간을 썰어, 참기름 소금소스에 적셔 먹어 보았다. 달콤하고 고소했다. 기
운이 당장 솟아나는 기분이다. 무를 뽑아 씻어, 무쇠 솥에 엇 비슷 얇게 썰
어 넣고, 토막 친 토끼고기와 고춧가루마늘을 넣고 참기름을 치고 달달 볶은
다음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자작하게 얼큰한 찌개로 끓였더니, 맛난 냄새가 진동했다.
커다란 둥근 싸리 바구니 가운데에 찌개를 냄비를 앉히고 그 위에 밥 냄비를 올려 무게 중심을 잡아놓고. 야채 반찬통으로 흔들리는 빈틈을 채웠다. 기어 다니는 동생을 허리에 줄을 매여 문고리에 묶었더니, 문이 댕겨져 열리면서 묶은 줄이 늘어나 동생이 마루에서 떨어질 위험성이 컸다. 차라리 마당에 내려놓을 참으로 짚단을 풀어 마당에 깔고 짚단으로 사각 행 우물 둑을 쌓아놓고 애기 토끼를 그 속에 넣고 동생을 안아다가 짚단 안쪽에 앉혀 주니 애기 토끼랑 잘 놀았다.
문제는 누가 밥 바구니를 머리위에 올려줘야, 타작마당으로 달려 갈 텐데 궁
리를 해 보았다. 마루 앞 끝 부분에 바구니를 놓고 마루높이만큼 내가 앉은
자세를 취하고 내 정수리에 수건을 접어 올려대고 살살 바구니 밑을 잡아
당겨 내 머리 정수리 위로 반반히 올려놓은 순간, 무릎에 힘을 꽉 주어 반듯
한 자세로 힘차게 일어섰다.
빈 물주전자를 들고 바른 한손으로 바구니를 붙잡고 타작마당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40분 거리였으니 내 머리정수리는 쥐가 나고 목뼈가 시큰 둥 했다. 타작마당으로 들어서니 행랑채 어멈이 “애기 씨가 밥
을 이고 온다고 소리쳤다.” 어서 받아주라는 아버지 말씀이고 어머니 웃으시는
소리가 들렸다. 행랑어멈 도움으로 밥 바구니를 내려놓고 빈주전자를 들고
그 마을 에 살고 있는 男동기생 집에 가서 물을 얻어다가 어머니에게 주고
곧 바로 집으로 달려 왔다. 마당에 내려놓은 동생이 걱정되었기에.
그날 저녁에는 토끼 잡은 당돌한 애기 씨로 별명이 붙었고 행랑채 어멈이
나를 엄청 무서운 처녀라 하면서, 토끼 고기가 그렇게 맛날 줄은 몰랐다는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찌개에 토끼간이 안 보였다고? 물어 보시기에 나는 담담하게 대답해 드렸다.
“제가 큰 보약으로 여겨, 참기름에 소금 뿌려 쿡 찍어 먹어 심더”
“아부지 예, 참말로 토끼고기가 맛이 있었는지요? ”
“말도 마라, 엄청 맛나더라! 그래 니는 점심밥도 못 묵었제? 준비 한다고”

우째 상상도 못했다. 토끼 잡을 생각을 다 했노” 식구들의 한 끼, 끼니를 위해, 내 집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던 한 생명을 거둘 줄을 몰랐구나. 아버지 말씀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교훈과 채찍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부모님한태 맡 딸인 내가 살림밑천에 무슨 큰 도움이라도 되었는지? 참참 생각하니, 궁금했지만 물어 볼 수도 없는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