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감문주
ㆍ작성일	2008-05-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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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가난
행복했던 가난
감문주/ 수필

경기복부지방을 군인가족들은 전방이라고 했다. 첩첩산중 산골에서 오물오물 아이 셋, 연년생을 데리고 부사관 직책을 가진 남편과 오붓하게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 달 월급으로 다섯 식구 배 채우기에는 참으로 힘겨운 봉급이지만, 그래도 매월 10일이 되면 누런 봉투 겉봉에 조목조목 각각 이유를 붙여 이리저리 떼고 난 다음, 알뜰히 담아온 돈은 6000원 남짓 하다. 5인 가족이 1개월 먹을 양식 쌀 소두 4말, 눌린 잡곡(납작 보리쌀)4말 4000원과 나머지는 적금과 전기료 기타 비상금이다.

한참 군것질을 하고 싶어 하는 이 녀석들을 위하여. 그 옛날 훈련장으로 사용했다는 묵정밭을 일구어 감자, 고구마, 무 배추 고추 농사, 옥수수도 심었다. 그 뿐만 아니라, 농사를 잘 지어 김장 배추를 팔아보기도 했었다. 김장 하는 날이면 동태 포 한 짝 뜨고 굴도 1관씩 샀다. 몇 리어카 배추를 김장하여, 소대원들과 한 쪽 씩 나눠먹었던 것이다. 비료를 안 쓰고 인분과 퇴비로 농사를 가꿔서 식 생활을 하다 보니, 식구대로 기생충 때문에 배가 아파서 달콤한 과자 같은 (약 이름. 산토니) 약을 자주 복용해야만 했다. 군부대에서는 기생충 물약을 자주 권장하는 모양이었다. 전방 지역 오지 마을이다 보니 약국이 멀고 하여, 의무 반에 사정하여 기생충 물약을 자주 얻어먹었다. 물론 약 효과가 좋다는 것은 그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증명되었던 것이다.

셋째를 임신하고 둘째를 업고, 큰 아이에게 삶은 고구마 보따리를 들려 산에 나무를 베러 다녔다. 세 살짜리 아들놈이 부르는 얼룩송아지를 따라 부르면서 산에서 억새풀 을 베어 한 없이 펼쳐 놓았다. 고구마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3시경까지 억새를 베어 말려 두고 엊그제 베어놓은 것을 둘둘 말아 묶어서 키 작은 소나무 위에다 밀쳐 세워 올려놓고 모가지를 들이밀어 정수리를 나뭇단에 잘 받쳐 올려 이면, 아들놈이 좋아라고 손뼉을 치고 등에 업힌 딸년은 얼굴을 내 등에 꼭 붙여주었다. 어미에게 힘을 보태주는 모양이다. 은근히 무겁고 폭신한 마른 풀 나무 다발을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산에 올라가는 오르막보다도 더 힘이 들었다. 앞으로 엎어지는 날이면, 업은 아이의 놀라움과 엄마를, 힘센 부리부리 박사(TV어린이 방송에 나오는 주인공)만큼이나 존경하는 큰 아들 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기에, 목 줄기에 있는 핏 줄에 힘을 세워 버텨내는 인내심으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그 해 겨울에 또 한 녀석 을 집에서 해산했다. 해산하는 과정에 이 양반이 내 머리맡에서 양쪽 다리를 무리하게 잡아당겨 올리면서 힘내라! 힘주라! 산파노릇 하는 바람에 오른 쪽 대퇴부 인대가 늘어나서 엄청 고생했다. 그 후로 해마다 봄이면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통증으로 한의원신세를 져야 하는 평생 맞춤 골병하나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래도 새 식구를 완벽하게 생산하여 2남 1녀 단란한 5인 가족을 이루게 된 셈이다. 입이 하나 더 늘어난 생활고는 지혜롭게 살아가지 않으면, 부도가 나는 것이다.

여름이 다가오니 도로 변 구멍가게 얼음과자에 눈독을 들이댄다. 그야말로 얼음 녹듯이 푼돈이 녹아 났다. 참다못해 이 녀석들을 데리고 참외밭으로 갔다. 원두막에서 참외를 세척 해주면, 품값으로 하루 종일 공짜 참외를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외 밭 주인은 맛도 없고 험 있는 참외로 점심을 때우는 것이다. 긴 긴 여름, 나도 아이들 모두, 아니 그곳에서 품팔이 하는 엄마와 아이들은 점심을 굶었다. 그래도 무엇이 그래 좋은지, 하하 호호가 떠나지 않았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 올 때는 험 있는 참외를 한 보따리 얻어오는 것이다.

직업군인은 정해진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와야 왔나 보다 하는 이 양반이 우물가에서 발을 닦고 나더니 참외보퉁이를 풀어 썩은 것을 죄다 도려내고 성한 쪽을 오려 골라 깨끗이 닦아 크다 란 함지박에 담아 들고 와서 맛있게 깎아 먹는다. 아이들은 오줌 싸려 다닌다고 바빴다. “아빠가 내일은 옥수수 따다 줄게” 이 녀석들 밤에 오줌 싸서 아빠가 떠내려가겠다는 말에 응답으로 잠자리 발치에 자기들이 벗어놓은 옷으로 쭈르르 담장을 쳐 놓는 모양이다. 고구마줄거리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오늘 따라 맛나다. 짜디 짠 오이지 맹물 김치도 시원하고, 납작보리잡곡밥 한 사발이 푸짐하다. 더도 덜도 말고 아무 탈 없이 건강한 가족들을 위하여 내가 지켜나가야 하는 희망이라는 꿈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있었다.

내 연약한 가슴속 자물쇠에 이양반과 셋 아이들의 동아줄이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의지의 울타리가 행복의 원천이기에, 가난은 오히려 참된 행복의 뿌리를 튼튼히 길러 주었다. 앵앵 날아드는 모기들을 쫓느라 쑥대 풀에 불을 붙였다. 향긋한 쑥 연기가 기름종이 지붕 판잣집이라도 내 집이라는 듯이 구석구석 편안하게 기어드는 모양이다. 그 해 여름과 변함없이 여러 계절이 바뀌어도 아기자기 행복했던 가난이 오래도록 되풀이 되었지만 절망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젊었다는 것과 젊음은 미래가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 달 후, 1978년. 3월 이곳 양평으로 이사를 왔다. 중부전선 대궐 같은 시골 집 대지65평 건평 두 칸 30만원에 몽땅 팔아서, 방 두개짜리 아주 작고 허름한 전세방을 얻었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으로 남의 집 셋방살이 (그 당시 KBS드라마 셋방살이 흉내로 소꿉놀이 했던 아이들이다.) 라는 어설픈 설움을 맛보게 되었다. 주인 댁 조카 어린놈과 내 막내 놈의 심리전투는 많은 힘겨루기와 도덕적인 인내심을 요구했다. 산골에서 있었던 자유롭고 천진스러운 마음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문화 경쟁과 생활방식, 보이는 시선들의 유혹 그리고 도시화의 세계와 내 것이 특별나게 없다는 열등의식들이 아이들을 기죽게 하는 모양 이다.

그러한 삶의 아픔에서 미래의 꿈이라는 내 집이 그것도 1981년 여름에 이루어졌다. 마당 우물 옆에 사람이 들어갈 만큼 큰 고무 통에 열무 물김치를 담았다. 매운 풋고추를 슬금슬금 썰어 양념하여 흰 가루 물풀을 끓여 식혀 붓고 냉수를 풍풍 몇 바가지 퍼 넣어 휘휘 저어 놓았다. 20키로 정부미 한 포대 떡시루 쪄 놓고 포기배추 양념 속 넣고, 돼지 머리고기 삶았으니, 집들이 음식이 푸짐했다. 긴긴 여름 날, 참으로 피곤하고 힘이 들었다. 집들이 오신 군부대 아저씨들 대접을 끝마치고 난 다음, 너무나 고단하여 길게 쓰러져 오래 잠들었던 그날 여름밤은 무척 더웠다. 한 밤중 매미소리는 참, 시끄럽다는 걸 그때 알았다.

머나먼 세월 속으로 숭덩숭덩 열무김치는 몇 해를 거듭 시원스럽게 익었다. 어떻게 담았기에 감씨(甘氏)네 열무김치가 그렇게 맛나더라는 소문이다. 그런 솜씨로 맛을 좀 내보라는 남편들의 투정에 은근히 밉살스러운 질투로 나를 얄미워했다는 푸념들이다. 집들이 오신 남정네 부인들의 농담이 키 큰 해바라기 씨앗에 쟁쟁 매달려 영글어가는 행복하고 가난했던 여름날의 전설이다.

최 평균: 감문주 작가님 글 감사합니다.
행복했던 가난은 불행할 틈이 없어서
차라리 행복하셨던것 같습니다.
그런 억척이 자제분들을 훌륭하게 키우신듯 합니다.
더군다나 한 자제께서는 목회자라 하시니 어머님의 그 사랑이
밑걸음 된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감문주 작가님의 살아 오신 인생 여정을 가슴저리게 읽었습니다.
이제 작가님 앞에 또 뭐가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이 주말도 물이 맑은 양평에서 여유롭게 즐기시길 기원합니다. -[05/17-16:49]-

감문주: 최평균 시인님에께, 감사합니다. -[05/18-10:38]-

안정순 2013-05-09 09:39	감문주님의 글 속에 가난하였지만 행복이 곳곳에 소복소복 쌓여있습니다. 아이들 셋 키우시면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오신 날들이 이렇 듯 아름다운 글을 주시게 되었나 봅니다.. 그래도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시절이 그립지 않으신가요? 그럴 것 같습니다.. 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요.. 장문의 글 잘 보고 갑니다.. 글 감사합니다. 늘~~ 평안 하시길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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