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감문주
ㆍ작성일	2007-11-2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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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계단에서
제목/ 육십 계단에서
감문주/ 수필

뒤 돌아 서서 몇 계단을 올라 왔는지 헤아려 보았다. 첫 번 계단을 오를 때, 왼쪽 앞가슴에 손수건을 달아주시던 엄마 볼이 복숭아처럼 발그레하고 우리엄마 손이 참 예뻐 보였다. 삼남매 우리 어머니가 20대 새댁시절이었다. 두 번째 계단 을 올라섰을 때, 남동생이 서너 명 더 생겼고 아버지가 불어나는 자식들 때문에 나날이 성장해가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초조하고 힘들어 보였다. 남자아이를 진학시켜야 할 것인지? 딸아이 진학을 포기시켜야 할 것인가? 아버지의 고달픈 고뇌를 꿰뚫어 보고 섰던 세 번째 계단에서 내 마음이 점점 초라해지고 몸이 작아지는 외소 한 소녀가 되었다. 포기해야 하는 학업문제로 밤마다 수많은 별을 헤아리며 궁리를 했던 내가 이성의 여자아이로 변성해가는 길 위에서 파도를 타고 넘어서야 할 험난한 인생길을 일찍 선택해야만 했다.

아버지에게 “학업을 포기하겠습니다.” 스스로 포기선언을 했다. 부모님에게 등짐을 하나 내려 드리는 순간이지만, 부모가슴에는 영원히 뽑지 못하는 공부 못시킨 못 하나를 쾅쾅 박아놓은 자식이 되었다. 그 후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나의 마음과 눈은 모든 사항에 대하여 ‘안 된다,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밤 낮 마주하는 책 그리고 책, 겨울밤이면 새끼줄을 꼬아대는 아버지의 손 비빔 소리가 멜로디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싹싹 쓱쓱 저 소리, 벼 짚 밑둥치를 쿵쿵 찧어 부드럽게 하는 모습이 삶의 그림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인생길을 돌고 돌아 걸어가시면서, 내 쉬는 한숨 소리와 고달픈 생활고에 다투시는 날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저 분들이,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음악인이 되기도 하는. 내 눈에 내 마음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느껴 져 왔다. 드문드문 금침 줄을 매달어시고 환 하게 함빡 웃으시는 아버지! 응애 하고 들리는 아우들 잉태.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은 날마다 새로 만들어져서 떠오르는 불 쟁반처럼 새롭고 신기하고 꼭 약속을 지켜 가면 떠오르는 우주의 마술 그리고 사람들의 삶, 이런 풍경이 미치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나의 십대 계단은 온 통 무지개 꿈이다.

명주 올 같은 오색 꿈을 고이간직하고 봄바람처럼 피어나서 붉은 꽃으로 피어오르던 시절 은 계절 따라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내 유년의 시절은 차가운 무서리 에 상처받은 국화꽃이 향기만 가을바람에 훨훨 날려 보내듯이 그렇게 떠내려 보냈다. 나에게 결혼 은 겨울이었다. 어느 계단에 내가 버텨내었는지 조차 모르겠다.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는 오히려 따스했다. 사람과 사람사이 는 무섭고 냉철 했다. 결혼은 사회 속에 삶과의 새로운 갖가지 전투였다. 사회 속에서 가족과 더불어 경영을 하는 사업체였다. 내가 사장이고 남편은 회장이다. 지구위에서 주인공으로 무대를 설치하고 공연하는 것이다. 공연장에 지지하는 구경꾼이 없어도 그 공연은 멈추지 말아야 했다.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사물에 대하여, 못 한다는 것과 탐내는 것, 부러워하는 것들은 없어야 했다. 그렇게 낙천적으로 삶을 엮어보았다. 남들과 나를 키 재기 그것은 낭비다. 오르지 나의 신념으로 살아온 것이다.

지금 육십 계단에서 내가 발걸음을 머뭇거리며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첫째 아우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예복을 입고 큰 누님이라고 큰절을 정중히 올리면서 하는 말이 “ 공직에서 퇴직하면 대학 강단에서 젊은 늙은이로 시간을 활용하려고 준비를 갖췄습니다.” 노년기를 위하여 공학박사 논문을 완성했다고 보고하는 아우님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아우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 아우들을 위하여 진학 을 포기해야 했던 쓰리고 아픈 지난날들이 영사기 필름 돌아가듯이 줄줄이 펼쳐졌다. 나만 의 사춘기 좌절이 아니었다. 큰 아우도 그 아래 동생에게 등을 내밀어 자기 등을 밟고 대학정문을 들어서게 해 놓고, 자기는 대학진학을 접어야 했던 시대, 고교실력으로 3급 갑 공무원 합격 받던 날도 나에게 인사를 왔던 큰 아우님이다. 그 후 꾸준히 공부하여 몸이 쇠약하여 가족들 걱정을 한 몸에 받아가며, 책가방 끈에 모질게 매달려 포기 않더니, 오랜 후 성공하는 모습이 가슴 벅차도록 훌륭해 보였다. 둘 째 아우도 무사히 석사 졸업장을 받았다. 그 아래 또 그 아래,,,,,,.

시골 농사꾼 아버지가 자식들 여러 책 보따리를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찼던 보릿고개다. 3월은 어린 것들의 가슴에 피맺히는 봄이었다. 모두가 봄볕처럼 따뜻하게 웃고 있지만, 꽃샘추위의 모진 쓰라림을 견뎌가며 피어나는 예쁜 꽃들의 서러움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저마다 열심히 피고지고, 숫한 세월 속으로 지나가는 계절 바람들에게 전해 줄 뿐이랴.

학력을 속이고 졸업장이 없다고. 흉보는 요즘, 학력 없다 졸업장 없다고 너무 질책 말고 흉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옛 사람들 중에 실력이 모자라서 학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밥 먹고 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자식들 중에 딸은 살림을 떠맡아 부모님 가사노동을 도와야 했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벅찬 생활고를 나누어 짊어지고 가야 했다. 우리들, 그리고 부모님 시대 사회 환경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래도 잘 다독이고 살아온 졸업장 없는 사람들의 과거를 뒤 돌아 보면, 이 시대 젊은이에게 한 점 부끄러울 것 없다. 부러워 할 지금의 졸업장도 별로 탐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사회 교육 제도가 엄청나게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졸업학력으로 사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우리 기성세대들도 떳떳하게 “나는 학력이 없다.” 그렇다고 학력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더 더구나 없다. 스스로 무식하다고 부끄러워하며 죄인처럼, 없는 졸업장에 졸업 했다고 거짓 말 할 필요조차 없다.

나는 학력 졸업장이 없어도 내 동생들에게 공학 박사의 길을 인도했고 최첨단 과학을 연구 개발 하는 아우들과 나란히 어깨 높이를 같이 한다. 여러 사람들을 잘 살 수 있는 경제를 가르쳐 주는 봉사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몸은 늙어가도 스스로 바른 생활에서 올 바른 정신에는 나이먹지 않으련다. 잘난 사람이나 못 난 사람이나 닥쳐오는 황혼 앞에는 아래위가 없다. 조금 남아 있는 인생, 멋지게 살아갈 또 다른 인생 계단을 올라갈 마음의 자세를 위하여 이 모든 부족함을 신선한 겨울 바람으로 씻어 내버리고, 2008년 육십 갑자년에 새로운 꿈을 펼쳐 일어서 보리라. 까마귀 같은 내 얼굴에 때 묻지 않은 체험과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엮어서 두루미 닮은 그 이 이목구비에 걸어 놓고 참새 들새 친구들을 불러 모우며 아기자기 살아 볼 꿈을 꾸다.

최평균: 작가님은 관상화가 아니라 들길의 야생화 같습니다.
남의 손에 키워지기 보다는 여린 꽃대 세워 비바람에 맞서며
당당히 꽃을 피우고 나그네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하는 야생화.
야생화 닮은 작가님의 일갑자를 미리 축하하며, 뒤 돌아본 계단계단
작가님의 꽃물이 들어 아름다운 발자취로 흔적을 남기고 있는것 같습니다.
오늘 휴일도 이제는 여유로운 삶과 창작의 시간으로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11/25-14:11]-

감문주: 최평균 님 에께 큰절 올립니다. 큰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11/26-21:00]-

대한문학세계 편집국: 감문주 시인/수필가님...위 글을 이번 대한문학세계 겨울호 수필산책 코너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늘 넉넉한 가슴으로 문학의 열정을 꽃피우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며...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11/30-04:09]-

감문주 : 어머나!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편집국 운영진 여러분! -[12/05-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