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09-08 15:24

ㆍIP: 121.xxx.48

빈말

빈 말

낙엽을 밟으며 가을의 정취에 물신 취해 넋을 놓고 걷다 보니 지난날 추억들이 가을바람처럼 스쳐 간다. 내가 살아온 인생 70이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보다는 고달 펐던 추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린 시절 6·25란 한국 동란을 거치며 살아온 세대라 1950~60년대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보낸 가슴 아팠던 추억들이 풍전등화같이 가물가물 스쳐 갔다.
내가 어렸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즘 아이들 생활 모습을 비교해 보니 믿어지지 않는 외계의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꾀죄죄하게 살아왔던가? 그런 세상에서 가난을 벗어나 보자고 발버둥 치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고 내 가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쪽에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면서 걷다 보니 문득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떠올라 입 언저리에 웃음이 스쳐 갔다. 아마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쯤으로 기억이 되는데 우리 사회에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고등학생들에게 하나의 유행어로 떠돌았던 적이 있었다. 이 말은 어느 친구가 말을 하면 열심히 듣고 있는데 끝에 가서 하는 말이 '아니면 말고' 할 때 그 기분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허전했다. 친구에게 우롱당한 듯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특히 남의 말을 잘 믿는 나 같은 사람은 맨탈이 더 크게 느낄 수뿐이 없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여 많은 세계 명작과 위인전을 읽어 왔다. 가난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의 바쁜 일손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크게 받지 못해서 그런지 나름대로 가난에서 벗어나 보자고 하는 욕망이 어려서부터 일찍 나타났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자란 순박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거짓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약속이든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왔다. 그런 나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약속을 세 번만 어기면 절대로 그를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 습관이 생겨났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살기가 어려웠던 세상인데도 고집스럽게도 약속을 중하게 여겨 온 것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는 남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사회였나 보다. 그리고 시간관념이 별로 없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코리안 타임'아란 유행어가 나타나기도 했던 때로 어찌 보면 약속이란 의미를 모르고 살던 사회였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약속을 철칙같이 지켜 온 나 같은 사람은 바보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는 친구들의 말을 찰떡같이 믿으며 듣고 있는데 실큰 이야기해 놓고 '아니면 말고'라고 하니 맥이 빠질 수뿐이 없었다. 그러다 보면 다정했던 친구도 헛소리 몇 번 하면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군대에 가서 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다 믿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남자들이 술좌석에서 한 이야기는 거의 믿을 수 없었으며 군대에 있을 때 술좌석에서 한 말은 믿을 것이 10%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70년대는 오죽하면 유행으로 그것 “뻥이야”라는 말이 유행하기까지 했을까? 아마 술을 먹으면 자신도 모르게 너나 나나 대부분 큰소리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약속해 놓고 다음에 만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따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러다 보니 술 마시고 한 이야기는 다 무효라는 유행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나는 이런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사업을 잘하려면 첫 번째가 술을 잘 마셔야 한다고 한 때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약속도 잘하므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술좌석을 만든 것이다. 이때 술이 상대보다 강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고 해서 술 잘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 나는 이런 술좌석에서 한 약속도 꼭 지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술에 취해서 잘 모르겠는데" 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면 그런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인식되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점점 도태되는 것이 이 사회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것을 아는 나도 어느 날부터 술을 마시면 큰소리를 쳐 놓고 자신도 모르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점점 변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칠십이 지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성격의 변화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어느 모임에 참석하여 기분이 좋았나 맥주에 소주에다 친구가 가져온 인삼주를 다른 사람들은 독하다고 피하는데 겁 없이 그라스로 몇 잔을 받아 마셨으니 술을 잘한다고 해도 도가 넘었나 보다. 대리운전으로 친구 차를 타고 왔는데 탈 때 기억만 남아 있고 차 안에서 있었던 일은 사라져 버렸다. 그날 분명 집에 와서 친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고 핸드폰을 찾으니 없어서 타고 온 차에 빠트린 모양이라 생각하고 친구에게 연락하여 차에 빠진 핸드폰을 식구에게 찾아오게 한 것은 기억이 있는데 같이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 내렸으며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는지 전연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몇 시경에 어디서 내렸는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집에는 잘 와서 핸드폰을 찾은 것을 보면 꼭 거짓말 같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이 작년에 작고한 친구의 기일인데 공원묘지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전화였다. 나는 갑자기 받은 전화라 난감해하니 그는 지난번에 차를 타고 오면서 공원묘지에 내가 먼저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단다. 그래놓고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실언이 되고 빈말이 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이제는 나도 빈말이나 하는 늙은이로 변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씁쓰름했다. 젊은 시절 유행했던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며 이제는 술좌석도 조심해야겠다는 마음 다짐을 하며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만끽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세월의 아쉬움이 나를 서글퍼지게 한다.

정찬열

2020-09-10 17:45

안녕하세요
김복희 작가님~
9월에 작가님으로 등단 하셨는데
환영에 말씀마져 드리지 못해 몹씨 송구 합니다.
늦었지만 저의 작가 방 회원이 되신것을 환영 합니다.

의미깊게 지펴놓으신 "뒤태" " 빈말"을 단숨에 배독하며
어쩌면 작품의 줄거리나 내용으로 보와 저와 많은 생각이
동일한 부분이 많으신 분이구나 하고 하면서 배랍했습니다.

1950~60대에 초중등 학교 를 다니신걸 보아도 거의 같거나
비슷한 연배가 되실것 같구요
술이라는 것은 참 좋으면서도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이
때로가서는 아니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아무래도 젊은 시절의 보다
술에 약하기 마련 이지요
예로부터 술좋아 하면서 실수가 없다는 건 밑기가 힘든 구설이지요
술도 힘으로 먹는 다고 했습니다.
이젠 건강을 위해서도 조금은 절주해야 될 연세인가봅니다.
아뭏튼 저의 수필방에서 뜻깊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비록 서재 에서나마 뜻깊은 서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끝나지 않은 코로나와 환절기에 가내 건안 하시고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리며 승필을 기원드립니다.


김복희	정찬영 작가님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겂없이 느직막하게 문인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살다보니 어느날부터 가진 것은 시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얼마 남지않은 시간은을보람되게 쓰고 싶어 도전해 보았습니다. 작가님의 아낌없는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환절기와 코로나19에 건강 유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9/11 10:24

두대바리와 멍청이 부부

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