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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9-22 17:44
ㆍIP: 223.xxx.117
결혼, 그 붉은 실로 묶이는 것은
결혼, 붉은 실로 묶이는 것은...

          권영심

권씨가 그리 흔한 성씨도 아니건만 울 가게는 여러 명의 권씨 손님이 찾아 온다
나름 참 독특하고 재밋는 성향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내가 유일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손님이 있다
양주만 마시는데 예전엔 기분이 내킬 땐 두 병도 마셨으나 한 번 쓰러진 이후 지금은 키핑해 놓고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신다
한 달에 두어번.
대화는 종횡무진으로 서너시간 동안  우정에서 여행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고 흥미롭기 짝이 없다
서로 말이 통하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시간을 주객을 떠나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낭만적이고 이해의 폭이 넓고 정의롭고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고 삶의 굴곡을 순응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무언가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은 기분이 된다

어제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서도 나만의 감동을 느낀 날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든지 일상사에 대해 묻지 않는 성향인데 어제는 그가 집안과 가족 이야기를 주로해서 자연스럽게 그의 아내와의 결혼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편의 고전을 듣는 듯한 단아하고 아름다운 남녀의 만남의 이야기...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지금은 사라진 남녀간의 예의와 여성이 남성에게 향한 순정.
그리고 섬세한 사랑의 감정의 원형 이었다
너무나 재고 계산하고 맞추고 서로를 겨누는 요즘의 다소 거부감이 드는 사랑이 아니라 한 겹 베일이 드리워져서 신비감이 있는 우리 젊은 시절의 정갈한 사랑의 모습에 미소지었다

그는 아내가 될 여인을 친구의 친구의 여동생을 통해 소개를 받고 한 달여 쯤을 만나고 있었다
결혼을 염두에 둔 만남이었기에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만남이 한달여 쯤 되었을 때 그는 기다리던 영화를 보러 갔는데 챔프라는 영화였다
그는 정말 보고싶은 영화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보는 성격이었고 챔프도 혼자 예약 관람하면서 그 감동에 깊이 젖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그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얼굴을 봤는데 여자들은 울어서 눈주위가 너구리 처럼 변해 있었다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가 번진 때문 이었다

그 역시 많이 울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흉했을 여자들의 그 얼굴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단다
그런데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말간 표정 그대로의 여자들은 그 순간 그렇게 싫고 미워졌고 저렇게 감동이 없는 여자들은 절대 결혼 대상자가 되어 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후 연인을 데리고 다시 챔프를 봤는데 ... 세상에 !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절교를 결심했고 다음 날 부터 소식을 끊고 연락을 차단했다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가 그렇게 냉정한 성품인 것을 그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 때 여인의 오빠의 부인이 그의 직장을 찾아와 간곡히 부탁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연락 두절이 되자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 누웠는데 이를 어쩌면 좋으냐고.
대체 무슨 일인지 연유라도 알고 싶다고 , 우리 시누이 좀 살려 달라고 그렇게 간곡히 읍소하자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는 안되었다
한 번은 만나서 마음을 이야기하고 정식으로 이별을 통고해야 된다고 생각한 그는 만날 약속을 하고 이윽고 그 장소에 정시에 갔다
그 곳은 그 당시에 종로에서도 핫한 곳 이었는데 여인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여인의 애잔하고  우아한 모습에 그는 단번에 사로잡혔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고 진심을 다해 사죄 했단다
여인 또한 챔프를 보았었고 연인이 보러 가자고 하자 본 영화라고 말할 수가 없어 함께 보았다는 내용이다
이 단순하고 별 것 아닌 내용에 내가 감동한 요소는 몇 가지인데 이미 지나간 시대의 남녀들의 서로에 대한 단정한 예의와 배려를 느낀 때문이다
요즘은 올케가 시누를 위해 그런 수고를 하지 않고 연인끼리 서로의 섬세한 감정 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이기 십상이고 아니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런 배려가 살아있던 시대가 있었고 그것이 낭만이었다
시대는 급변하고 사랑의 모랄도 달라 지고 이제 우리는 무엇을 그리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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