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한영택
ㆍ작성일	2020-04-04 21:52

ㆍIP: 110.xxx.89

길 위의 인생 3

길 위의 인생 3 (VIP 팔순 영감님)

10월 넷째 일요일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오후 3시경,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하던 중 그랜드호텔 앞에서 차를 멈추자 팔순이 넘어선 영감님이 '좀 멀리 가야 하는데' 하며 현대공원묘원에 가자고 한다.

34년 전 고향이 대구였는데, 부모님과 같이 서울로 상경해 젊은 시절 외교관 및 유엔대사로 공직생활을 하고 10년 전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한다. 고국에 돌아왔을 때 비약적인 한국경제의 발전에 놀랐고, 5년 전에 한 번 다녀간 뒤 대구의 달라진 모습에도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부모님 묘소를 돌아보려 5년 전 다녀간 뒤 이번에 또 간다는데, 그냥 갈 수 없어서 꽃집에 들러 꽃이라도 사 들고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꽃집이 문을 닫아버려 어쩌나? 하고 가까이 있는 꽃집을 검색해 알아보니 마침 한곳이 있었다. 즉석에서 만든 꽃다발 3개를 사서 곧바로 현대공원묘원으로 향했다. 공원묘원 안쪽 산길을 돌고 돌아 맨 위쪽에 위치한 곳에까지 올라간다. 차를 세워두고 좀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묘소를 찾는 동안 산 아래를 내려 본다.

각자는 남모를 사연을 남겨두고 떠난 수많은 영혼이 잠든 곳이다. 고인들이 잠든 현대공원묘원은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거리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다. 휴일 오후 현대공원묘원엔 인적이 뜸한데, 깊은 잠에 빠진 무덤 속 영혼들의 넋은 누가 달래주고 있을까?

영감님은 묘소를 못 찾는지 몇 번이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헤매고만 있다. 시간은 오후 5시 갈 길은 멀고 해는 넘어가는지라 안타까운 마음, 서둘러야 하기에 차를 세워두고 비석에 비문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는 확인 후 위아래로 몇 번 둘러보고는 잽싸게 3곳을 찾아 ‘이곳이 아닌가요?’ 하고 안내하자 ‘아 맞네!’ 하며 마냥 기쁜 표정을 짓는다.

아버님, 어머님, 큰아버님 세 군데의 묘소에서 꽃을 하나씩 놓고 무릎 꿇고 풀을 뜯으며 손에 움켜쥔 모습으로 혼자 쓸쓸히 침묵하며 돌아보는 팔순노인의 뒷모습이 서글프게만 보인다. 영원하지도 영원한 것도 없는데, 젊은 시절 알뜰히 챙겨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홀로 흐느끼고 있었다.

자주 찾지도 못하는 부모님 묘소를 특별히 남긴 흔적이 없어 찾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되어 다음엔 잊어버리지 마시라고 현장에서의 사진을 폰카메라로 찍어드렸다. 거기까지 생각지 않았던 모양인지 정말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시내 모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누님댁에 들렀다 가야겠다고 한다. 저녁 7시 30분 열차표가 예매되어있으니 그 시간까지 같이 하기를 바랐다.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 주차하고는 한참 있노라니, 영감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님이 나이도 있고 불편한 몸이라 같이 식사도 못 하고 용돈만 드리고 나왔다는데, 아쉽고 안쓰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저녁 시간이라 식당에 들러 밥 먹고 갔으면 좋겠다 하고 갈 만한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열차 시간까지는 1시간 30분의 여유가 있었기에 인근 해장국집을 찾아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이름을 밝혔는데 검색하면 누군지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 혼자 서울에서 내려와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4시간을 동행하며 여러 일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며 택시비로 팁 삼만 냥을 더해 십일만 냥을 주었다. 친절하게 잘 챙겨주는 모습 두고두고 기억하겠다며, 다음에 대구를 찾으면 꼭 부르겠다고 하셨는데, 짧은 만남이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일이다. 영감님의 건강과 평안을 바랄 뿐이다.

조상이 있기에 부모가 있고, 부모가 있기에 자신이 있고, 자신이 있기에 자식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조상을 봉안(奉安)하는 것을 꺼린다. 망각(忘却)되어가는 효(孝)의 미덕(美德)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일이다.

17.10.22.

박수길(1933년생, 경산, 84세) 고려대대학원. 외교관(1980~1995). 1995년 유엔 대한민국대표부 대사, 199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2005년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2006년 유엔 한국협회 명예회장, 2009년 유엔협회 세계연맹 회장.

장선희 2020-04-06 14:48	`한영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무려해지고 있는 요즘 봄햇살 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이야기에 제 마음도 강동으로 따뜻해집니다 아무리 택시 하시는 분이라도 이렇게 꼼꼼하게 살펴주시기 까지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인데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보며 작가님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전병일 2020-04-10 09:17	`한영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한영택 작가님 아름다운 동행을 하셨네요 요즘 젊은이들 한테는 흔하지 않는 일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 느껴집니다 작가님의 따듯한 동행길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주의 끝자락 금요일 입니다 불타는 금요일 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정찬열

2020-04-11 08:04

`한영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한영택 작가님~1
물론 지업이라지만 좋은 일 하셨군요
허나 그분도 후손이 없으시나 보지요
아니라면 젊은 친인척이라도 동반하시지 않고
그노령의 연세에 혼자서 외롭게 조상의 선묘를
찾아오신 모습에 오날날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나름의 이유와 애로 사항이 있으시겠지만.

작가님 같은 훌룡한 분들이 계시기에 나라의
발전과 비전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구도 좀 조용해진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하시는 업무가 대중을 상대하시기에 늘 걱정이 되었습니다.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고 보람있는 4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영택	정찬열 작가님 잘 계시지요? 그 연세에 혼자서 먼 길 다녀가셨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경로사상이 몸에 배어 당연하다 생각하고 알아서 하지만 요즘 신세대는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기에 차이가 있는 거 같습니다.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뿐입니다. ㅎㅎ ‘코로나19’ 불안심리 확산으로 영업 피해도 크네요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휴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4/11 09:43

한영택 2020-04-07 19:28	《Re》장선희 님 , 장선희 작가님 안녕하신지요? 가시는 걸음마다 즐거움이 함께 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별의별 경우가 다 있습니다. 서비스업이라 할 수 있으면 손님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합니다. 실제로 일하면서 겪은 일 중 아주 특별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요. 이번의 경우에도 특별한 경우입니다. 올해 1월 9일 밤 11시 대구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손님 태우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자정 무렵 인근 광안대교 야경도 보고 김상훈 작가님에게 왔다간다고 한 적 있었답니다. ㅎㅎㅎ 평상시엔 간간이 장거리도 가고 휴일엔 더 수월하게 일합니다만,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뒤부터는 타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택시는 완전 휴업중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택시 요금에 관한 정보 알려드릴게요. 현재 기준(지역별 다를 수 있음) 기본요금: 2km 3,300 (할증 4,000), 거리: 134m 100, 시간: 34초 100 (자정 ~ 새벽 4시까지 20% 할증), <시외 요금은 조견표가 있으나 대충 계산하는 방법: 1km = 1,000 × 110% = 1,100, 예) 부산 118km = 118,000 × 110% = 129,800> 위험국가들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감소세로 돌아서니 조금은 희망이 보이는 듯합니다 어렵지만 빠른 회복으로 예전처럼 활기찬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봄 되시고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한영택 2020-04-11 09:37	《Re》전병일 님 , 전병일 작가님 반갑습니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상대를 잘 알아주는 것이겠지요? 물질적인 것도 좋지만, 덕과 감동으로 정신적 즐거움을 준다면 그 사람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德不孤必有隣’ 덕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온하게 하고, 화목한 길로 인도해주면서 그 길을 함께 나아감으로 외롭지 않은 것이다. ‘才勝薄德’이란 말이 있지요? 뛰어난 재주에 덕을 갖추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재주보다 덕을 갖춘 사람이 더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이 따름은 당연하겠지요. 행복한 봄날 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길 위의 인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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