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0점이 아니어도]

                                                                      신 영애

몇 년 전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두통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간적이 있다. 혈액검사, CT촬영, 엑스레이, MRI촬영까지 하였으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물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트레스 받는 거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원하지 않아도 현대인들은 갖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물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대해 가장 흔한 요인으로 꼽을 만큼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로운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직장생활, 결혼, 육아. 직장인이면서 아내, 주부, 엄마, 며느리, 딸, 등 각각의 역할에 대해 늘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며 살았다. 내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도 관대해지지 않은 옹졸함이었다. 인생이란 게 마냥 좋은 날만, 마냥 흐린 날만 있을 수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행동은 달았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이나 삶의 방식이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이 만나 결혼과 동시에 어떻게 하루아침에 딱 의견일치를 보면서 살아 갈수가 있단 말인가. 이해라는 명목 하에 적당히 눈감아 주고 모른 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눈감아 주고 넘기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만 억울하다는 이기적인 계산으로 마음을 혹사시켰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 나와 상반된 상대방의 입장에 꼿꼿이 날을 세우고 마찰을 일으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진심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게 보인 불편했던 행동들도 사실은 고의가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되고 비로소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정을 찾아가게 되었다. 자존심이 강해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국은 나와 내 주변 모두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도 두통에 대한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좀 더 세밀한 진찰을 위해 담당 의사를 예약했다. 예약한 날에 찾아간 의사는 내게 ‘선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이라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병명에 당황하는 내게 철 결핍에 대한 조혈제를 처방해주면서 지속적으로 지켜보자고 하였다. 가끔씩 앉았다 일어설 때면 핑 도는 어지럼 증세가 있었기는 하지만 그게 병명으로 들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새끼손톱의 1/4보다 작은 분홍색 알약을 매일 한 알씩 평생 먹어야 한다고 했다. 대단한 효능이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챙겨 먹었다. 그러나 이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딱히 식욕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살이 찌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상쾌하지 못한 기분도 들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차츰 두 달에, 여섯 달에 한번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지겹도록 혈압, 맥박과 더불어 혈액 채취를 하여 빈혈검사를 하여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오진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 약을 먹다 말다 했다. 그렇다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봐야지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병원을 쫒아 다니느라 미뤄둔 회사일과 곧 있을 아이들 기말고사도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험 보는 것도 아니면서 시험 때만 되면 아이들보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회사 업무도 대강 하지 못하는 성격인 탓에 궁금한 것은 잠을 줄여가면서 까지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징그러울 만큼 쓸데없이 완벽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나 자신을 볶으면서 살았다. 누가 그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빈혈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일하는 것하고 아무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약을 복용하기를 게을리 했다. 가족들이 약을 잘 챙겨 먹는냐고 물어오면 건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3년가량 부지런히 병원을 다녔으나 호전되거나 악화되거나 하지않고 제자리 걸음 이었다. 처음 병명을 진단 받았을 때의 충격도 퇴색되어 갔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내의지로 이겨내 보고자 약을 처방받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나 자신의 건강에 대해 내가 무책임했던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건강을 위해 식단을 챙기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게으름으로 대했다. 아침을 차려 주고 출근준비를 하다가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식탁을 치우면서 아침을 대강 먹었다. 그마저도 먹지도 못하고 출근하기도 부지기수. 그러다보니 한번 아프면 쉽게 낫지도 않았다. 또한 아파서 병가를 내고 쉬고 있어도 마음은 회사에 가 있을 때가 많았다. 며칠 출근하지 못하면 미루어질 내 업무들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스트레스로 왔다. 예전 같으면 이삼일 병원 다니고 약 먹고 주사 맞고 하면 툭툭 털고 있어났을 일이다. 몸이 힘든 만큼 나약해 지는 마음도 보게 되었다. 집안 곳곳에 내손이 가지 않은 흔적들이 눈에 거슬린다. 얼른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몸은 근질거린다. 이렇게 말하는 내게 아픈 김에 좀 쉬어 가라고 걱정어린 위로의 말을 해주기는커녕 그렇게 남의 일도 내일처럼 하니 몸이 견뎌내겠느냐고 타박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해낸다는 생각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서 바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훈계다. 모두 나를 걱정해서 해 주는 말인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을 어쩌란 말인가.

빈혈 약을 처방 받지 않는 대신 내가 택한 방법은 운동이었다. 걷기. 유산소 운동.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기. 계단 오르기. 실내자전거 타기. 일주일에 두 번 요가. 그리고 물 마시기. 물은 갈증해소 정도만 마시던 내가 지금은 하루에 500미리 3잔을 마신다. 어쩌다 느끼던 기립성 빈혈도 없어졌다. 퇴근해서 밤늦도록 집안일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는 일들에 대해 느슨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기로 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조금씩 실천하는 일들이 건강에 있어서 당장은 눈에 띄게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오랫동안 반복되면 나의 건강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난 100점짜리 인간이 아니다. 꼭 100점을 받아야 한다고 누가 다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혼자 종종걸음으로 100점을 받고자 안간힘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병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정작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은 ‘나’아닌가. 나라는 존재가 제일 중요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때 건강하고 행복함, 그리고 즐거움이 동반된 진정한 멋진 인생의 드라마가 나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