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버님]

                                            신 영애

북촌 한옥마을 길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일주일 동안 바쁜 업무에 휘둘려 허둥지둥 보내온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풍경 구경도 좋지만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좋다. 각양각색의 생김새와 차림을 하고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해 걷는 사람들. 웃거나, 혹은 심각하거나, 혹은 무덤덤하게 하고 지나쳐 가는 사람들. 이 낯선 길 위에서 뜬금없이 아버님이 그리워진다.

지금도 기억난다. 처음 인사드리러 가던 날 대문 앞까지 마중 나오셔서 환하게 맞이하여 주시던 그 미소. 아버님 환갑잔치에 초대받아서 가게 된 길. 어색하고 낯선 자리.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모두 제자리에서 분주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예비 며느리였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주방에 계속해서 들어오는 그릇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 밖에 없었다. 그 때 아버님께서 주방으로 들어오셔서 처음 온 자리에 이렇게 설거지만 시켜서 어쩌냐 하시면서 내가 와 주어서 너무 기쁘고 고맙다고 하셨다. 다정하고 친근하신 아버님과의 첫 대화였다. 약혼식 준비를 하면서 예물 문제로 옥신각신 한 것 외에는 나는 시부모님의 크나큰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결혼을 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깔끔했던 내 성격도 많이 무뎌졌다. 그러나 그 당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에도 뭐하나 질서정연 하지 않고 청소가 되어있지 않으면 피곤함에도 기어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꽤나 힘들어 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편의 어설픈 수고로움을 못마땅해 했고 나와 같지 않은 남편에게 화를 냈다. 그런 내가 결혼하고 시댁에 갔을 때였다. 농사를 크게 짓는 시댁은 어수선했다. 먼지가 쌓여 있는 툇마루, 소를 키워서 그렇다면서 많이 모이는 파리 떼, 흙 마당으로 인해 하루 종일 닦아도 닦아도 쌓이는 먼지들, 볼일 보기위해 들어가면 빠질 것 만 같던 재래식 화장실, 특히 밤에 가려면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운 비닐하우스가 있는 마당을 지나 새벽에 일어나느라 일찍 잠들어 있는 닭장을 지나 누군가가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커다란 감나무 밑을 지나 화장실을 가기까지 느껴지던 음산한 분위기, 온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불편한 샤워시설, 마당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던 온갖 농작물들. 생각 같아서는 차곡차곡 정리를 하여 어디에 쌓아두고 싶을 만큼 어수선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는 환경을 이제 갓 시집 온 둘째 며느리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만 할 뿐.

농사일에 서툰 나는 주로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 했다. 그렇게 종종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치우고 다니는 둘째 며느리가 안쓰러우셨는가보다. 어느 해는 마당을 모두 시멘트로 깔아 호스로 물만 뿌리면 금방 시원해지고 먼지도 날리지 않도록 해 주셨다. 나는 당시 그렇게 한번에 물만 뿌리면 청소가 되는 마당을 너무 좋아 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계속 사실 부모님께 흙을 밟고 사실 기회를 뺏어버린 것도 모르는 철부지 며느리였던 것이다. 어느 해는 집에 방충망과 유리문을 달으셔서 겨울에도 춥지 않고 여름에도 파리나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해 주셨다. 또 어느 해에는 아버님께서 욕실을 만드시고 좌변기도 설치 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좋아 하는 내게 온수까지 나오도록 했다고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 한번 씩 서울 오실 때마다 형제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고궁이며 서울에 있는 산에 오르곤 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나서 가족이 모두 인왕산을 오를 기회가 있었다. 나는 한창 배가 불러있었고 남편은 회사일로 참석하지 못한 자리였다. 그때 다른 가족들은 내가 힘드니까 아래에 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님은 당신이 손잡아 줄 테니까 함께 올라가자고 하셨다. 그때 처음 아버님 팔짱을 끼고 인왕산을 올라가면서 이런 아버님의 아들과 결혼해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은 당뇨를 앓고 계시는 친정 엄마의 안부도 궁금해 하셨으며 식사 요법도 중요하니 틈틈이 시간 날 때 마다 전화 드리고 챙겨드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느 날, 치과를 다녀오셨는데 의사 양반이 시원찮게 치료했는지 자꾸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읍내에 가신 김에 재대로 치료를 받고 오셨어야 한다고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셨다. 당시 큰 병원의 수간호사였던 손 위 동서는 언제 시간을 내서 서울 한번 다녀가시라고 하였다. 계속 아프다고 하시는 아버님 말씀에 나는 치료 받으신 쪽이 어느 쪽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버님은 마치 그렇게 물어봐 주길 기다리셨다는 듯이 이쪽이라고 하시면서 입을 크게 벌리셨다. 나는 또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라서 아버님 입 속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어디가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다. 내가 봐서 뭘 알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아버님께서 아프다고 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려드리고 공감해드리고 싶었다.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일 때 “조심하지. 왜 그랬어? 별거 아니네.”하는 말 보다 “많이 아프겠구나. 얼마나 힘드니? 잘 참고 있네. 내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다.”그런 한마디에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기도 한다는 것을. 그렇게 아버님 입 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동서는 입 속을 며느리에게 보여주는 시아버님이나 그렇다고 고개 들이대고 쳐다보는 동서나 똑 같다면서 놀리곤 했다.

나는 결혼한 이후로 아버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님한테 잔소리를 들으셔도 늘 허허 웃기만 하셨다. 그런 아버님께서 간암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당뇨를 앓고 계시면서 간암 초기여서 바로 다빈치 수술로 용종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꾸준하게 건강 관리를 받으시느라 예전보다 자주 서울에 올라 오셨다. 그러나 당뇨까지 앓고 계셨던 아버님에게는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그 해 여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 하시게 되었다. 어머님도 서울로 오셨고 간병인을 두고도 형제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아버님 병간호에 정성을 쏟았다. 어느 날, 아버님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좋아지시면 곧 퇴원할 수 있다고 남편이 말했다. 여름이라서 시원하게 씻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제대로 닦지 않아서 꿉꿉하다면서 남편에게 화를 내셨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화를 내신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면서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밤늦게 돌아온 남편이 식탁 앞에 앉아서 울었다.

그 해 겨울 넘어지시면서 다친 부위가 지병인 당뇨 때문에 출혈이 멈추지 않아서 결국 우리들 곁을 떠나신 아버님. 수많은 조문객들의 아버님을 애도하는 말들 속에서 생전의 아버님의 다정하고 따뜻하고 훌륭하셨던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빈소에 마련된 아버님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 아버님과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철딱서니 없고 부족함이 많은 둘째 며느리를 너무나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는데. 염을 하기 전, 고인에게 드릴 말씀을 한마디씩 하라고 했다. 어제까지 나를 먼저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시고 따뜻한 미소 보내주시던 아버님. 지금은 이렇게 아무런 표정없이 누워 계신다. 왜 그렇게 춥게 누워 계시는 건지. 난 아직 아버님과 더 많은 추억을 갖고 싶고 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데. 이별은 늘 예고 없이 다가오고 준비할 겨를도 없이 온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다. 더구나 원하지 않은 이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러기 전에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함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처럼 북촌로 길을 걷다가 불현 듯 아버님이 그리워지면 길가 정자 밑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추억한다. 아버님과 가족들의 공간으로 들어온 낯선 나를 따뜻하고 세심하게 반겨주시고 사랑을 주신 아버님을. 나이 들어갈수록 아버님을 닮아가는 남편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