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배고프다고 했냐고~]

                             /신영애

아버지는 밥상을 물리시면서 생선구이 한 점을 남겨 두셨다. 밥상 앞에 앉아서 깨작거린다고 엄마한테 혼이 났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아침부터 온 동네로 퍼지는 고소한 고등어구이 냄새. 나도 먹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도 했다. 곁눈질로 저 생선구이 남은 것이 내 차지가 되었으면 하고 은근 바랬다. 오빠들은 아버지께서 일어나자마자 엉덩이에 불이 난 듯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내 옆에 앉은 동생만 해결하면 된다. 나는 엄마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오늘은 밥알이 몇 개더냐? 네가 셀 수 있을 만큼 만 담았는데 아직도 세고 있어.” 김치나 계란후라이 만으로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동생이다. 동생을 무시하고 혼자 낼름 덜어 올 자신이 없다. 동생이 생선 도막을 들어다가 손으로 툭 반을 갈라 내 밥 그릇위에 턱 올려놓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생선조각만큼만 밥을 먹고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의 식단은 밥, 물, 간장, 어쩌다 올라오는 생선 조각, 계란이 전부였다. 과일도 가리는 게 많아서 복숭아나 자두도 안 먹고 그 흔한 사과도 안 먹고 꼭 비싼 배만 고집한다고 혼났다. 여유롭지 못한 살림에 입이 짧은 둘째 딸이 엄마에게는 어쩌면 아픔이었을까.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번 씩 고향에 갈 때마다 객지에 보내놓은 둘째 딸이 고향 집에 왔으니 엄마는 뭐든 해주고 싶어 하셨다. 까탈스러운 나는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어도 왠지 뭐라도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뜬금없이 백설기와 잡채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내가 고향에 내려 갈 때마다 항상 백설기와 잡채를 준비해 주셨다. 방앗간에서 갓 찌어온 순백의 백설기와 참기름 냄새가 고소한 잡채를 먹고 있노라면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나에게 있어서 백설기와 잡채는 그렇게 아련한 향수였고 ‘엄마’였다. 나중에든 생각이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집에서 매번 백설기 떡을 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엄마 마음이다.

  결혼을 하면서 변해버린 식성은 큰아이를 낳고 몸무게가 16키로가 늘어나게 했다. 원래 마른 몸이었고 주위에서도 다 빠진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기에 그냥 맘껏 먹은 탓이다. 한번 늘어난 몸무게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은 오히려 식단을 조절하여 적당히 단식을 해야 할 정도이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애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엄마의 손길이 없어도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집에 뭐 먹을 거 있어?” 늦은 시각 아르바이트를 하고 들어오는 둘째 딸아이의 문자다. 20대 대학생인 딸들은 한창 미모에 신경 쓸 나이라 다이어트 한답시고 소식을 한다. 그런데 이런 문자를 보낸 거다. 엄마가 필요하다. 아니다. 엄마가 해준 무언가 먹고 싶다는 거다. 나는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져서 평소 내가 자신있어하고 애들이 잘 먹는 꼬마김밥을 준비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식탁위에 준비해 두었다.

‘띠띠띠띠..’ 현관문 번호키를 빠르게 누르는 소리. 우리 가족은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만으로도 누가 들어오는지 알 정도로 각자 특징이 있다. 딸아이는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나왔다. 냉장고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었다. 그러고 마치 냉장고 안에 있는 물건들과 대화하듯이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냉장고 문을 쾅 닫았다. 나는 식탁에 네가 좋아하는 거 해놓았으니 먹으라고 했다. 딸아이는 한번 힐 끗 쳐다보더니 그냥 휙 지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빠르게 심장이 콩알만큼 급속도로 줄어드는 듯 했다. ‘뭐가 맘에 안드는가?’ 나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해 놓은거 안 먹느냐고 물었다. “응” 딸아이의 간단 명료한 한마디. “왜? 집에 뭐 먹을거 있냐고 물어봤잖어? 그런데 왜 안먹어?” “생각 없어” “엄마가 맛있게 해놓았는데.. 조금이라도 먹어봐~” “안 먹어.” “배고프다며” 그러자 “누가 배고프다고 했어? 그냥 물어 본거잖아” 명치 끝이 차르르 하고 아파온다. 나쁜 자식... 엄마가 이 늦은 시각에 직장에서 퇴근하고 와서 피곤함에도 무릅쓰고 자기를 위해서 해 놓았는데. 그저 사랑하는 딸자식 먹이겠다는 마음으로 정성들여서 만들었는데. 조금 먹어보는 흉내라도 내면 어때서.. 한 때는 내가 만든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김밥장사 하자고 꼬시더니. 그러면 자기네 친구들을 다 데리고 와서 많이 팔아주겠노라고 하더니. 이제는 내가 밤늦게 만든 김밥에 눈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감정을 그대로 토해낸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꼬마 김밥 한 개를 먹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생각이 났다. 결혼 전 어쩌다 고향에 가면 엄마가 나를 위해 정성들여 만들어 주시던 음식들. 비록 산해진미는 아니었어도 엄마만이 낼 수 있는 맛. 작년 겨울 강원도 속초 작은 식당에서 점심으로 나온 깎두기 반찬에도 엄마 생각을 했었지. 젓갈을 넣지 않고 시원하고 담백하게 맛을 내어 겨울이면 동네 인기였다고 했는데. 어릴 적 잘 먹지 않는 나를 위해서 맵지 않게 하얗게 담가 주시던 백김치도 그립다. 나이 들면서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왜 그렇게도 맛있고 그리운 건지. 배고프면 찾게 되던 엄마의 손길이 지금은 향수로 남아 있다.

 요즘은 계절에 상관없이 먹거리가 풍성하다. 돈만 들고 나가면 어디서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 전문 요리사가 해 놓은 음식은 집에서 해 먹는 것 보다 더 맛있을 때도 있다. 장봐서 요리하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며 이런 저런 수고로움에 비하면 오히려 가끔은 사먹는 비용이 더 저렴할 때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외식을 많이 한다는 소식을 본적이 있다. 어릴 때처럼 배가 부르도록 먹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 않다. 배가 고파서 무엇을 먹는다기보다 건강을 위해서 챙겨 먹는다는 것도 맞다. 차려 준 사람 성의로 예의상 먹는다는 것도 옛말. 맛이 없으면 과감하게 쓰레기 통으로 버려진다. 음식 문화에서도 삭막해 지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집 밥의 향수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어릴 때 먹던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그리워하면서. 요즘 문화에 익숙한 둘째 딸 아이도 역시 언젠가는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을 그리워 하겠지. “아~ 배고파. 집에 뭐 먹을거 있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