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과 은행 한 움큼

                                                                                                                         신 영 애

  출근길에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이 있다. 나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 길로 출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봄이면 초록 나뭇잎이 가득한 푸르름이 좋고, 여름이면 적당한 그늘이 있어서 좋다. 가을이면 바람결에 스스스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낙엽 위를 걷는 것도 좋다. 가로수 길의 은행나무에서는 은행 열매가 가을바람에 시달렸는지 노란 은행잎 뒤에서 맥을 못 추고 바닥에 떨어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은행을 밟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 가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여 슬쩍 웃음이 난다. 맞다. 행여 떨어진 은행을 밟기라도 하면 신발에 베인 냄새 때문에 어디 실내에 들어갈 때 난감할 때가 있다. 

  나는 냄새가 고약해서 은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 즈음이면 시어머님은 기침에 좋다고 누누이 강조하시면서 봉지에 몇 번씩 묶어서 은행을 보내주시고 있다. 어머님이 보내주시는 택배 상자를 열면 인절미 몇 조각, 다져 얼린 마늘, 각종 밑반찬과 잡곡들, 참기름 들기름과 함께 한쪽 구석에 까만 비닐봉지에 겹겹이 싸인 은행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면 꼭 은행 몇 알을 구워서 먹였다. 은행을 구울 때 나는 그 꼬릿꼬릿한 냄새가 싫어서 나는 잘 먹지 않았다. 어느 해 인가 202호 옆집 할머니가 순댓국과 구운 은행 몇 알을 가지고 오셨다. 손녀딸이 할머니 드시라고 포장해 온 순댓국인데 맛있다고 하면서 한술 떠보라는 것이었다. 순댓국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구운 은행을 들고 오셨는데 차마 나중에 먹겠노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들어오시라고 해서 할머니께 과일을 내드리면서 순댓국을 다시 데워 은행과 함께 먹었다. 아이들도 집에 있어서 옆집 할머니께서 주신 거라면서 순댓국을 맛보게 했다. 아이들은 그때의 기억이 아주 좋았는지 순댓국 얘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202호 할머니 얘기를 했다. 우리 가족은 그 이후 종종 순댓국을 먹으러 가기도 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202호 할머니는 아들 부부와 손녀 둘과 함께 살고 계셨다. 이사 오던 다음 해 2002년 월드컵이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우리 아이들은 세계가 축구로 열광하는 모습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했다. 우리 부부만 신나서 지금은 없애버린 TV 앞에 앉아서 열심히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나 옆집 두 딸은 빨간 티셔츠에 볼에는 태극마크를 그리고 붉은 악마처럼 빨간 뿔난 머리띠를 하고 밤이면 시청 앞 광장에 응원하러 간다고 했다. 아들 내외는 성남 어디에서 실내 골프장을 운영한다고 하였는데 늘 늦은 시각에 퇴근하는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별일 없으면 온종일 마을 노인정에서 지낸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리셨다가 오셔서 아이들이 학교 다녀오자마자 가방을 두고 놀이터에서 노는 거 봤다든가, 둘이서 나란히 손을 잡고 오더라 하는 식으로 근황을 알려주셨다. 고구마를 삶아서 주려고 했더니 엄마가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면서 그래야 한다고 에둘러 칭찬도 해주셨다. 나는 아이들이 소풍 가거나 운동회 행사가 있으면 김밥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202호 할머니와 같은 층에 사는 분들과 경비 아저씨, 그리고 아파트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 나눠드리기도 했다. 또 약식을 만들면 작게 썰어서 비닐로 감싼 다음 이웃분들과 나눠 먹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그런 모습이 기특하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간혹 시어머님이 보내주시는 도토리묵이나 쑥떡, 인절미, 청포묵도 비록 조금이지만 드시라고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내기도 했다. 애들 키우면서 남편과 투덕거리고 마트 간다고 휑하고 나오면 “남자들이 바깥일만 해서 잘 몰라. 그저 애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그렇게 202호 할머니는 때로는 친정엄마처럼 때로는 외할머니처럼 나에게 힘이 되어 주셨다.

   어느 해 늦은 봄 한동안 뵐 수가 없다가 퇴근길에 현관 앞 복도에 우두커니 서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키도 크시고 허리도 꼿꼿하시면서 부지런하게 아침 운동도 다니시는 분이라 항상 건강하게 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기력이 없어 보이시면서 우울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고 계셨다. 오랜만에 뵙는데 어디 다녀오셨냐며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할머니는 넘어져서 고관절 대퇴부 뼈가 다쳤다고 하시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지 며칠 되었노라고 말씀하셨다. 한눈에 봐도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는 지금은 괜찮으시냐고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펼쳐 보이는데 탁하고 뿌연 노란 물주머니를 목걸이처럼 끈을 매달아 목에 걸고 계셨다. 그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혼 초 시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간호해 주면서 보았던 그거. 소변 주머니. 202호 할머니는 이게 너무 창피해서 사람들 만나기도 싫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는 게 지옥 같다고 하셨다. 왜 안 그러시겠는가. 더구나 부지런하시고 깔끔하시던 분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닥친 현실에 얼마나 힘들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나는 감자볶음이나, 장조림, 도토리묵이나 호박죽 등 부드러운 음식을 가끔 준비하여 출근길에 할머니께 전해드리기도 했다. 아들 부부 보기가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하셨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얘기는 고작 그런 생각 하시면 안 된다고 하거나 그만하기 다행이시다는 얘기, 하루빨리 회복되시기를 바란다는 말 정도였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은행을 볶아서 먹어보라고 건네주시던 분인데 참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된 순댓국과 은행 알을 볶아서 건네시면서 먹어보련? 하시던 할머니는 지금은 안 계신다. 몇 해 전 돌아가셨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깨닫는 것 같다. 할머니가 아기엄마인 나에게 건네준 순댓국과 은행 볶음은 어쩌면 이야기할 친구가 필요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늦게 들어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의사소통 할 사람이 필요했겠지. 어느 날 꼬맹이 둘이 나타나서 복도를 지나가다 만나면 손 배꼽 인사하면서 방긋방긋 웃는 모습에 이제는 다 커서 할머니 손길을 벗어난 손녀들을 그리워하셨겠지. 오늘 은행이 떨어진 길을 은행을 밟지 않으려고 피해 걷다 보니 문득 그 시절 202호 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