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애

  중독이란 어떤 무엇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오랫동안 하여 그것이 없이는 생활이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됨을 말한다.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나는 중독까지는 아니어도 무엇을 좋아하면 거기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다.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을 굳히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서 오직 그 일에만 빠져서 집중한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빠져 있는 게 현재 내가 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세무 컨설팅 업무이다. 요즘은 인사 노무 업무도 함께하며 일을 하고 있다. 해마다 바뀌는 세법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어느 정도 귀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숫자와 연관된 업무라서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세금이 늘었다 줄어들었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늘 신경을 쓰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함께 근무하던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물러나서 가정으로 돌아갔다. 이젠 쉬고 싶다는 말과 함께.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으리라. 나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으나 잘 견디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이유가 크다.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워라밸을 즐기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워커홀릭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더구나 즐기면서 경제활동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그다음으로 내가 빠져있는 게 게임이다. 아니 게임이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늦게 귀가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다가 돌아오면 하루 일을 얘기하고 잠자리에 들고는 했다. 퇴근하고 아이들이 오는 동안 책도 읽고 가끔 글도 썼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하므로 퇴근한 후에는 가능한 컴퓨터를 멀리했다. TV도 없으니 딱히 시간을 보낼 일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러는 내게 아이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해 줄 요량으로 내 핸드폰에 게임 앱을 깔아 주었다. 그러니 횟수로 7~8년은 족히 되는 게임으로 그 게임을 하는 나를 보면 애들은 그 게임회사에서 상을 줘야 한다고 할 지경이었다. 

  처음 게임을 할 때는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이면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했다. 눈이 나빠진다고 주위에서 얘기해도 귀에 들려올 리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료한 시간을 대신해 주는 단계를 넘어섰다. 시간이 날 때마다 게임을 했다. 주로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준비를 하면서 식탁 옆 조그만 소파에 앉아서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레벨이 높아져서 아이템도 보너스로 많이 주니까 더없이 신나서 집중적으로 게임을 했다. 가끔은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번만 하고 끝내야지 하면서도 멈추지 못해서 허겁지겁 출근한 적도 있다. 대학 다닐 때 했던 테트리스나 갤러그, 그 이후에 나온 DDR, 퍼즐 마작, 게임 엔젤 등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레벨 업을 하면서 즐겨오던 게임을 지금은 하지 않는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따라 인터넷을 보다가 뭐가 잘못되어 강제 종료시키는데 잘 안 되니까 빨리 꺼지도록 하려고 핸드폰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그 게임 바로 가기가 삭제되어 버렸다. 핸드폰을 다시 켰으나 게임 앱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하니 비어있었다. 내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이 갑자기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껴지면서 어떤 공포감 같은 게 밀려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가만있어보자. 그동안 레벨업 시켜 놓은 걸 아까워서 어떻게 하나. 아~정말 미쳐버리겠네. 어쩌다가 바보처럼 내가 그걸 삭제하였을까. 공든 탑이 한순간에 바보짓으로 와르르 무너져 버렸네. 어이구나.'하면서 성급했던 내 행동을 한탄하고 있었다. '아이고. 게임도 없이 이제는 무슨 낙으로 사나. 아침마다 찌개 올려놓고 하던 걸 이제는 뭘 하나. 아이템 보너스도 많이 받았었는데 실컷 써보지도 못하고 어쩌나. 아끼다 똥 된다더니 보너스 아이템이라도 실컷 써볼걸.'하며 억울해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뭐라고.  

  한 때, 서울시 교육청에서 초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컴퓨터 중독에 대하여 상담을 했다. 많은 아이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컴퓨터 중독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컴퓨터 중독에 대하여 위험한 상황을 알리고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속이면서까지 컴퓨터 중독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 아파했다. 그렇게 중독으로 상담을 해온 학생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공부도 안되고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런 중독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 사람들과 교류를 단절시키고 정신을 피폐하게 했다. 나는 학생들이 그런 무의미한 것에서 빠져나와 뭔가 건설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리고 많은 학생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도 받았다. 그런 내가 심심풀이로 마련해준 핸드폰 게임에 빠져서 게임 앱이 지워졌다고 잠을 못 자고 억울해하고 있었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다더니. 이것이야말로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게임 앱을 지워버렸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심초사, 안절부절못하며 레벨 업을 시키려고 시간만 나면 하던 게임에서 나는 당당히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