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신영애
ㆍ작성일	2020-02-13 16:55

ㆍIP: 1.xxx.78

이건 비밀인데

신 영 애

인터넷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려고 보니 회원가입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비회원으로 주문해도 되지만 회원가입 할 경우 받을 혜택을 강조하면서 유혹한다. 어쩌면 이번 한 번으로 거래가 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데 귀찮게 굳이 회원가입을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회원가입 한 번만으로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고 하니 귀찮음을 무릅쓰고 회원가입을 했다. 비밀번호를 단순하게 하면 안 된단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특수문자를 조합해서 하라고 메시지가 계속 깜박거렸다. 에이~ 회원가입 하지 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만원 할인이 어딘데. 그렇게 해서 회원가입을 해 놓고 보니 아이디와 비번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메모를 해 놓아야 했다.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았으니까 비밀이 유출될 리스크를 차단했다고 안심했다. 그러다가 주문한 물건이 제날짜에 도착하지 않아서 그 회사에 전화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런데 비밀번호를 어디에 적어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낭패다. 비밀번호 변경을 신청했다. 내 개인 메일로 보내온 임시 비밀번호란 것이 복잡하기만 했다. 이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조합된 단어만으로도 비밀이라는 의미가 부여되는구나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함께 여고를 가서도 늘 붙어 다녔다. 친구들은 그 친구 안부가 궁금하면 나에게 물었고 내 소식이 궁금하면 그 친구에게 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친구는 부산으로 나는 서울로 왔다. 우리는 일 년에 서너 번 시간을 내서 만나고, 전화는 더 많이 했고 가끔 손편지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신학대학을 다니는 남자였다. 친구는 자기의 연애담을 시시콜콜 내게 말했다. 남자친구와 서울에 올라와서 함께 명동을 쏘다니기도 했다. 남대문 시장에 가서 쇼핑도 하고 경복궁과 덕수궁도 거닐면서 연애를 했다. 그 가운데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때로는 끼면 안 되는 자리에 엉거주춤하게 끼여서 어울려 다녔다. 그 친구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오빠가 있었다. 여고 시절 자신과 아버지가 다른 오빠 얘기를 하면서 “이건 너만 아는 비밀이야”라고 했다. 나는 비밀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그냥 남의 얘기라서 입밖에 전혀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아마 잊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친구가 내 전화를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나한테 배신감이 들었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유인즉슨, 나에게만 했다던 오빠의 일을 남자친구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내가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우리 두 사람만의 약속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얘기를 했으나 그 친구는 서운하다는 말과 함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감추고 싶었을 자신의 가족사를 남자친구가 어찌 알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나를 의심하는 친구가 서운했다. 그걸 의심할 정도의 우정이었다니.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소원해졌고 연락이 끊겼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서 그 친구 소식을 물으면 지금은 목사님의 사모님이 되어 바쁘게 사는 듯하다는 얘기만 들려왔다. 그 일은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 친구와의 일을 마음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두었다. 소중한 친구를 오해로 잃어버렸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최근 4~5년 전 고향에 갈 일이 있었다. 그 친구와 한동네에 살았다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길거리에 서서 서로 이러쿵저러쿵 안부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어디선가 “야~ 000”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뭐지? 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그 친구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오빠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져서 오는 길에 친구가 말했다. “저 오빠하고 친구 누구하고 아버지가 다르다.” 나는 마치 처음 듣는 사람처럼 능청을 떨었다.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 “왜 몰라~ 한동네에 살았는데. 걔 신랑도 여기 와서 들었을걸? 넌 걔랑 친하면서 몰랐니?” 정말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어쩌면 ‘비밀인데’하고 말한 순간부터 이미 그 비밀은 비밀이 아니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 친한 친구는 다른 사람들은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일들을 나에게 비밀이라고 해놓고 오해를 한 거였다.

외부로부터 내가 원하지 않았으나 받게 되는 상처나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실상은 비밀의 가치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비밀. 세상 밖으로 이미 나왔다면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을 비밀.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비밀이 지켜지거나 혹은 드러나는 것이 신뢰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기억력의 문제, 혹은 조심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비밀의 내용은 기억하는 대신 비밀을 영원히 봉인할 수 있는 그 ‘비밀이야’라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의 수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니까. 어쩌면 그 친구는 지금쯤 이제는 비밀도 아닌 일로 나와 연락을 끊고 지냈음을 후회하고 있으리라. 내가 아직도 그 친구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비밀처럼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장선희

2020-02-14 15:23

`신영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신영애 작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때는 많이 속상하셨겠네요
언젠가 그 친구와 화회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수필 글을 읽으면서 저도 그런 일을 당했던 생각에
왠지 또 무언가 불끈 올라오는 기분이 됩니다
그런 친구는 비밀이라면서 너만 알고 있으라고 하고는
분명 다른 친구에게도 또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제 기분만 생각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본인이 다 퍼뜨리는 식이지요
저도 이렇게 아직도 그 생각에 감정이 생기려 하는데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언젠가 그 친구를 만나면 오해 푸시고 웃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신영애	장선희 작가님~ 제일 먼저 달려와 주셨네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랫친구였는데 그렇게 되어버려서 아직도 뭔가 마음한구석은 공허함을 감출수가 없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게 제일 상처가 크다고 하저라구요.. 작가님도 마음상한일이 있으시다면 이제는 툴툴 털어버리시고.. 무엇보다도 건강을 제일먼저 챙기시길 바래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15 19:13

한영택

2020-02-14 16:21

`신영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정보화로 바뀌면서 암호 및 비밀번호 중요성은 그만큼 커지게 되었습니다. 금융이나 각종 인터넷 거래 등등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에서도 보편화 되었습니다. 편리한 부분도 있지만 일일이 다 기억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에 있어서 당시엔 대단한 것처럼 생각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이 아닌데도 때론 오해 받을 때도 있지요. 당시엔 남자친구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한 친구가 과잉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었겠네요.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데, 긍정의 시각에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며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되리라 믿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서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해한 친구도 속상한 작가님께 미안해 할 거예요. ‘이건 비밀인데’요 친구의 연애 담 작가님의 글 재밌어요. ㅎㅎㅎ 집필하신 글 잘 보고갑니다.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십시오


신영애	한영택작가님. 긴글 읽어주시고 긍정의 응원메세지 감사드립니다. 살아가다보면 본의아니게 오해를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듯합니다. 나만 아니면 돼..하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친한 친구여서 제마음속에는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응원의 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향필하세요~	2/15 19:16

김상화

2020-02-15 01:11

`신영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글이 재미있고 사랑스럽네요
신영애 작가님
어쩜 이리도 감칠맛 나게 썼는지 글에 폭 빠지고 말았답니다.
비밀이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지요
여기저기 말해놓고 마치 내게만 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기 남자 친구가 그 비밀을 안다고 내가 했다고 착각하고 절교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섭섭했을까요?

신영애 작가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밖을 나가면 희고 검정 마스크를 쓰고 온 국민이 데모를 하는 듯합니다.
어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 때문에 마음 놓고 활동도 못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빨리 코로나를 몰아내 평온한 나라가 되길 기다립니다
밤이 깊었네요
아름답게 집필하신 이건 비밀인데란 글 행복하게 읽고 갑니다
아무쪼록 행복한 꿈 꾸시길 기원합니다


신영애	루수 작가님.. 그동안 건강하게 잘 계셨는지요? 이렇게 칭찬과 응원을 담뿍받은 메세지를 받고보니 너무 기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게되는 오해는 지나고보면 참 별거아니어서 오해의 감정을 풀어도 될일이건만 아직도 이렇게 어정정하게 지내간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플때가 있습니다. 조만간에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봐야 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15 19:24

전병일

2020-02-15 07:37

작가님 안녕하세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말실수도 많이 하지요
어쩌면 은연중에 말을 했을수도 있습니다
한동네서 다아는 사실을 어찌 작가님만 안다고 생각해서 오해를 했는지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잖아요
언젠가는 그 오해가 풀리는 날이 오겠지요

주말 꽃샘추위가 온다는 예보가 있네요
건강관리 잘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신영애	전병일 작가님.. 주말 일찍 다녀가 주셨네요. 거의 20년가가이 저에게는 상처였던 일들이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있는 일에대한 어쩌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어서 늘 마음한구석이 아릿합니다. 이제는 제가 먼저 연락을 해봐야 겠습니다. 다음주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구요. 향필하세요~	2/15 19:26

정찬열

2020-02-15 09:53

신영애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살다보면 본의아님 오해가쌓여
신뢰를 잃거나 신으를 저버린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대체로" 너한태만 일러주는 비밀이야" 하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또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를 종종 들었습니다.
지금쯤 그친구는 스스로가 정황판단을 했겠지요
날씨가 고르지못합니다.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십시요


신영애	정찬열작가님~~~~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함께 무엇인가를 공동으로 나누고 소유하고 있음으로 위로받고 의지하려는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아파했던 일인데 이제는 제가먼저 연락을 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기원드립니다.	2/15 19:29

김종덕

2020-02-17 16:51

신영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글을 맛있게 올려 두셨네요. 글은 맛있어냐 하는데 하는 일들이 맛있는 일이 아니어서 맛잇게 표현이 잘되지 않습니다. 이건 비밀인데 하면 비밀로서의 생명이 다한다는 것,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되는 일 같습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신영애	김종덕 작가님. 안녕하세요. 글을 맛있게 올려두었다는 칭찬가득한 말씀에 힘이 막 솟아납니다. 글쓰는 두려움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여 매번 고민이 많습니다. 작가님의 댓글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쓰도록 해봐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2/18 09:28

김상훈

2020-02-18 16:52

상태가 약간 안 좋아요. ㅎㅎ
들렀다는 흔적만 남기고 갈께요.


신영애	존경하는 김상훈위원장님..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격려와 힘을 실어주시기위해 발자국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날씨도 둘쑥날쑥. 신종코로나로 주위가 어수선합니다. 건강이 얼른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2/18 18:34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더니

내가 그렇게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