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애

  세무회계 관련 일을 하다 보니 1년 중 상반기 6개월은 늘 허둥지둥 정신없이 보낸다. 작년 3월. 한 달 동안 법에서 허용한 절세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보냈다. 수고한 자들이여 즐겨라. 회식이 있다는 말에 다들 보너스와 휴가를 꿈꾸며 참석했다. 회식하는 자리에서 건배 하는데 대표님이 “000 의 하드캐리를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하셨다. 하드캐리(무겁게 옮긴다?). 요즘은 너나없이 대체로 대화에 영어를 자연스럽게 끼워서 사용해야 유식한 듯, 좀 배운 듯 인식하는 게 대세다. 대표님 역시 공공연하게 영어를 섞어가면서 나름 듣기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러나 그것도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되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뭘 알아야 손뼉를 치고, 환호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영어가 많은 대화를 하면 똑같은 만남에도 극도의 긴장감이 온다. 친구들이나 동네 엄마들과의 대화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스트레스다. 특히 업무상 외국인의 전화를 받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전화를 끊고 나면 왠지 기가 다 빠져나간 듯한 느낌에 온몸이 경직되었음을 느낄 정도이다. 내 딴에는 그래도 의사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내 통화내용을 녹음해서 듣고 보니, 어설픈 콩글리시가 내 온몸에서 소름으로 돋아났던 기억이 있다.

 우리 세대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진 점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그저 나와 다른 방법으로 의사소통이 조금 더 가능하구나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나의 주특기인 배움에 망설임이 없다는 점이 외국어에는 작용하지 않았다. 아니다. 외국어 공부를 했으나 하다가 말다가 했다. 어쨌든 외국인과 대화만 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말을 사용하는 같은 한국인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마당에.

 옆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하드캐리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약간 취기가 있는 흥에 겨운 자리에서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직원이 “에이~ 다 암시롱~ 사실 저도 무슨 말인지 몰라요.” 한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그대도 몰라서 엄청 위로 된다며 슬쩍 눈을 흘겼다.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은 절대로 그냥 넘기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화장실 간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들고 나가서 검색을 했다.

하드캐리[Hard carry] - 실력이나 역량이 월등하게 뛰어난 플레이어가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일.

 그러니까. 빡빡한 업무량을 정해진 시간 내에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일조를 했다는 뭐 그런 뜻인 듯했다. 우리는 그런 걸 ‘일당백의 노가다’라고 했는데. 새로운 영어 단어 습득으로 바로바로 공부가 되니 보람찬 회식이라고 옆에서 킥킥거렸다. 정 과장은 일당백의 노가다를 시키고 영어로 말해서 못 알아듣게 하고 미안하니까 보너스를 쥐여 줄 거라고 말했다. 한바탕 박장대소를 했다. 직원들의 수고로움에 그들만의 표현으로 하드캐리이던 일당백의 노가다이던 보너스만이라도 두둑이 쥐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함께 수고하고 땀 흘리면서 남들 꽃구경가고 들로 산으로 놀러 갈 때 열심히 먼지 풀풀 나는 서류 뒤져가면서 국가의 세수확보에, 거래처의 절세에 지대한 공헌을 한 직원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위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제 다시 3월이 온다. 묵묵히 제 할 일에 열중인 직원들을 위해서 파이팅 응원을 보낸다. 부디 힘들고 지칠지라도 서로 하드캐리가 되어 멋진 3월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