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애

몇 해 전 맥도날드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친구 10명을 지우면 버거를 공짜로 준다고 했다. 그랬더니 일주일도 안 돼서 무려 23만 명이 지워졌다고 한다. 버거 한 개만도 못한 관계가 그렇게 많았다는 뜻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디 인간관계만 그렇겠는가 생각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여 철 지난 옷은 집어넣고 앞으로 다가올 계절의 옷을 새로 걸어 놓는다. 한 계절이 다 가도록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으로 옮겨가는 옷들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지 고가로 샀다는 이유로, 추억이 깃든 옷이라고 버리지 못하고 한 해 두 해 옷장 속에서 묵혀 가던 옷들. 사계절 상관없이 가볍게 꺼내입고 편하다고 하여 즐겨 입던 옷들은 소매 끝이 낡고 헤져서 실상은 집 앞 마트에 갈 때조차 입지 못하기도 했다. 버리기는 아깝고 집 밖을 나설 때 입기가 망설여지는, 옷장을 가득 차지하고 있던 옷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기로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은 멀쩡한 옷을 버리고 또 버린 만큼 사들인다고 하면서 구시렁거렸다. 머피의 법칙은 아닌데 버리고 나면 갑자기 그 옷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한 철만 더 두고 보자고 하던 것이 어느덧 몇 해가 지나버린 것이다. 가령 양말 발뒤꿈치가 헤져서 이번만 신고 버려야지 해놓고 저녁에 아무 생각 없이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돌린다. 그리고 다시 신으면서 오늘만 신고 꼭 버려야지 다짐하던 날들. 결혼 전 남편에게 당시 유명한 브랜드의 운동복 한 벌을 선물한 적이 있다. 남편은 그 운동복을 소맷부리와 발목 부분이 다 닳아서 헤어지고 올이 풀릴 때까지 입었다. 매번 볼 때마다 이젠 좀 버리라고 하면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버리냐고, 아직은 10년은 더 입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10년은 무슨. 그냥 버려~ 다시 사줄게. 했다. 남편은 다시 사주는 건 사주는 거고 이건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연애할 때의 추억이 깃든 물건인데 너무 쉽게 버리라고 한다고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정작 정리해야 할 곳에서는 정리를 못 하고 미적거리던 관계들.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랬고, 옷이나 신발이 그랬고, 책도 그랬다. 때로는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도 있다. 볼링장에서 공을 던지기 위해 공을 들고 어디로 던질까 너무 오래 고민하면 안 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만다. 그냥 과감하게 던져야 한다.

몇 해 전 거실 책장을 정리하다가 한구석에 얌전히 있던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상자를 열어보니 아이들 어렸을 때 주고받았던 생일 카드와 직접 만들어주던 조그맣고 앙증맞은 선물들이 있었다. 작은 꽃잎, 수많은 스티커, 여행지에서 나를 생각하며 사 온 선물들. 소중하다고 생각하여 상자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잘 열어보지도 않았던. 활자로 느낄 수 없는 일상의 디테일한 감정들이 생생한 시각적인 언어로 내게 건너왔다. 우리가 서로 하지 못한 많은 대화를 넘어 마음을 쓰는 결이 전해져 왔다. 겉으로 표현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동일 관점에서 비롯된 아주 작은 관계들이 그곳에 있었다. 온 거실에 그 보물 꾸러미들을 다 펼쳐놓고 추억하며 앉아 있노라니 아이들이 아직도 이런 것을 갖고 계셨냐고 하면서 신기해하고 감동하고 있었다. 내게는 그렇듯 소중하고 고마운 의미였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도 그 운동복은 그런 의미였으리라. 길들면 고마운 마음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길든다는 것은 편안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많은 사람과 수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오죽하면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사돈의 팔촌이고 아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싶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니 깊이는 얕아지고 인연의 끈은 길지 않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수많은 인연이 옷깃만 스치고도 지나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그 많은 인연 중에 진정 오래될 인연이 어디에 어떻게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그냥 딜리트(delete)키 한번 누르기는 순간이다. 그렇게 삭제된 인연은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다. 때로 깨달음은 너무 늦게 오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