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신영애
ㆍ작성일	2019-10-15 19:40

ㆍIP: 1.xxx.78

휴식 하나 사야겠다

신 영 애

초등학교 때쯤이었나 보다. 우리 집에 TV가 들어왔다. 나무로 된 케이스에 자바라 손잡이가 있고 네다리가 있는 금성 흑백 TV. 그보다 훨씬 전 아버지는 ‘GOLD STAR’ 마크가 찍힌 전축을 들여놓고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고향 역’ ‘가지 마오’나 남진의 ‘님과 함께’ ‘가슴 아프게’ ‘마음이 고와야지’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크게 틀어놓고 듣기를 좋아하셨다.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이웃 어르신들은 그 노래를 듣고 아버지가 먼 외지에서 돌아오셔서 집에 계시는 것을 알 수가 있던 때였다. 그 이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한참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께서 먼 길 출타 중이시면 엄마는 이미자의 노래를 틀어놓으신 채 포목점에서 끊어온 예쁜 천으로 나와 내 동생의 원피스를 만들어 주셨다. 때로 패티킴이나 하준화, 김세레나의 노래를 틀어놓고 털실로 겨울 바지나 조끼를 떠 주기도 하셨다. 그때 엄마가 즐겨 들었던 이미자의 ‘아씨’나 ‘열아홉 순정’ ‘섬마을 선생님’ ‘동백아가씨’는 지금도 내가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이다. 그렇게 전축이 유일한 낙이었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그 ‘GOLD　STAR＇ 마크가 찍힌 TV를 들여놓으신 거다. 이유는 딱 하나. 당시 유명했던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레슬링을 보기 위해서였다. TV가 없었을 때 아버지는 엄마와 영화 구경을 즐겨 가셨는데 종종 나를 데리고 가셨다. 아버지는 집에 계실 때 레슬링을 하지 않는 날이면 뉴스나 드라마를 즐겨 보셨다. 나시찬 주연의 전쟁드라마 ’전우‘를 보거나 구미호가 나오는 ’전설의 고향‘을 볼 때면 일찍 저녁을 물린 동네 어르신들은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를 바구니에 담아 들고 우리 집 마당으로 모이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안방에 있던 티브이를 마루에까지 끌고 나와서 틀어주셨다. 그런 날이면 밤늦도록 우리 집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엄마는 괜히 부엌을 왔다 갔다 하시면서 숭늉에 때때로 식혜를 대접하곤 하셨다. 그렇게 TV는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물건이다.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큰 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책이 많아져서 책장이 부족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TV를 보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데 없애자는 거였다. 당시만 해도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지만, TV를 켜놓고 소파에 드러누워 있으면 수면제 역할도 곧잘 했다. 그리고 아침 출근 전 뉴스를 보기 위해서 잠깐잠깐 틀어 놓기도 했는데 그것을 없애자는 거였다. 책이 많아서 여기저기 쌓아 두느니 TV를 없애고 책장을 놓자는 거였다. 34평 아파트에 책이 많으면 뭐 얼마나 많았을까. 가족회의 끝에 거실에서 TV를 내오던 날 옆집 할머니는 새로운 걸 장만하느냐고 물어보셨다. 아예 없애는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심심해서 어쩌누 하셨다. TV를 없애고 나서 우리는 주말이면 책을 읽었고 어쩌다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갔다. 아무도 TV가 없다고 해서 불편해하지 않았다. 다만, TV가 없으면 가족 간의 대화가 많을 것 같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아쉬움도 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주말이면 학원에 다니느라 늦게 귀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부터인가 TV가 밀려난 자리는 스마트 폰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DMB 기능이 때때로 TV의 기능을 대신 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갔다. 자기들만의 시간을 갖고 생활하다 보니 남편은 퇴근 후 딱히 즐길 만 한 것이 없어서였는지 TV를 즐겨보기 시작했다. 물론 핸드폰 DMB 기능으로. 나는 애들이 다 컸으니 거실에 책을 좀 정리하고 TV를 다시 들여놓자고 했다. 가족이 모두 동의를 했다. 유아 시절의 책이나 어린이 동화책들은 사촌과 이웃들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초등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놓는 위치만 바뀌었을 뿐 공간이 그다지 늘어나지 못했다. 결국 TV를 사느니 마느니 하던 일들은 다시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가끔 친구들 모임에서 요즘 핫하다는 드라마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 집은 TV가 없다고 말하면서 영세민 구제하는 셈 치고 티브이 하나 선물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정작 누가 선물해준다고 해도 TV를 둘 자리가 아직 없다.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한다고 그러는 듯하다. 그러나 TV의 악영향만 있는 게 아니다. 정보의 홍수화 시대에 사는 요즘. 핸드폰의 작은 글씨가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TV를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뉴스, 날씨, 경제정보, 교양, 건강 등 TV는 수많은 콘텐츠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줌으로써 간접 경험을 하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보지 못한 세계 각국의 풍경이나 풍물을 접한다거나 드라마 시청을 통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뇌의 휴식이 필요하다. 그럴 때 휴식의 방법으로 여행이나 명상, 멍하니 있기 등 뇌를 잠깐 동안 비워두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혹은 드라마를 보면서 뇌의 수동화를 시킴으로써 쉬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TV보다 매력적인 일들도 많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운동을 하거나 동네를 산책하는 일.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떠나서 때때로 온가족이 모여 TV를 시청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가볍고 즐겁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오랫동안 타지에서 계시다가 오랜만에 집에 오셔서 그저 휴식이 필요하셨던 것 같다. 그 휴식을 위해 전축을 들이고 TV를 들여놓으셨던 게 아닐까. 이제 우리 집에도 바보상자가 아닌 휴식을 하나 들여놓아야겠다.

전병일 2019-10-16 10:01	`신영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 옛날 부자집이셨나보네요 TV에 전축을 가지고 있었으면 우리시골에서도 처음 TV 들어올때 그집에 모여서 TV를 보았던 추억이 생각남니다 얼마나 책이 많으면 TV를 놓을 자리가 없었을까요? 집안이 책을 많이 보셨나보네요 우리집도 애들 어릴때 구입한 전집등 모두 몇년전에 처분했어요 처분하려고 하니 그많은 책 3만원 준다고 하길레 그냥 아는분하고 교회에 기증했어요 지금쯤 아이들이 분가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긴긴시간 지낼 바보상자 하나 들여놓는것도 괜찮을것 같네요~~ㅎㅎ 바보상자 旺松全炳日 내 안에 바보상자가 있다 상자 안은 뉴스, 시사, 영화, 극이 등장한다 나는 그 속에 빠져든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보고 나면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고 일을 하면서도 졸면서도 리모컨 부 등 껴안고 그 시간을 기다린다. 내 안의 바보상자 TV가 있다

임정수

2019-10-17 00:22

`신영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신영애 작가님!
저도 초등학교때 동네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전설의 고향을 보며
한여름 더위를 잊을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네발달린 티비를 사오셔서
양쪽으로 미닫이 문을 열고 티비를 보던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고전 유모어 극장에서
코메디언 서영춘씨와 임희츈씨가 하던 대사...
테레비젼을 타라비젼이라 부르며
네발달린 티비에 올라타며
타라비라 부르던 때가 떠오릅니다.


임정수	김일 선수가 나오는 프로레슬링과 구미호... 저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돗하네요.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합니다. 아무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겨울을 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_()_	10/17 00:27

정찬열 2019-10-17 00:42	`신영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신영애 작가님 어쩌면 작가님의"휴식하나 사야 겠다" 에서 어쩌면 선친께서 나의 일상을 함께하신다는 느낌이 강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초기 메이커 제품이 나오기전 학고식 라듸오도만들고 커다란 진공관식 전축도 조립하여 판매도수리도 하면서 4~50년전 전파사를 손수 운영하면서는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스링을 보러오신분들 이며 오가는 사람들께 LP레코드 판을 돌려 커다란 트롯트 노래를 들려주곤했지요 그레서 인지 지금도 저는 늦은 밤시간까지 만사 제처두고 레스링을 즐겨보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하루빨리 TV를 들여 놓기가 망설여지신다면 요즘에는 인터넷 모니터가 겸용 하니 조금 큰것으로 하신다던지 벽걸이도 자리를 차지 하지 않으니 들여 놓으시면 실보다 득이더 많다고 권합니다.

신영애 2019-10-16 10:27	《Re》전병일 작가님 , 성인이 되어서 생각해볼때면 아버지는 참으로 멋진 분위기있는 남자였더라구요. 아버지께서 저를 많이 예뻐하셔서 어디를 가실때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시기도 했지요.. 작년까지만해도 집에 TV를 들여놓는쪽으로 얘기를 많이 했는데 어느순간 그얘기가 없어졌어요. 최근 핸드폰 갤럭시노트10 5G로 기기를 교체하고보니 DMB기능이 아예 제공이 안되어서 또다시 TV를 사야겠다고 가족들을 보체고 있는 중입니다~ㅎ 그동안 큰불편함없이 지냈는데 뜬금없이 TV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대학생 두딸이 엄마에게 심심풀이를 해결해줄수있는 뭔가가 있기는 해야겠다고 하네요.. 바보상자이든 휴식이든.. 뭐든 있어야 겠지요? 행복한 날 되세요~^^

김상훈 2019-10-17 00:54	조금은 더 오래전의 역사겠지만, 제가 어릴 때 듣던 음악 도구가 있었지요. 전설에 의하면....... 1. 4후퇴 때 할아버지의 축음기를 머리에 이고 피난을 감행하셨던 할머니의 전설입니다. 삼촌과 고모에게 듣고 어린 저도 얼마나 웃었던지요. 온나라가 먹성 입성이 부족했던 50~60년대의 어쩌면 대가족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지만 문명 최고의 이기로 여겼던 그 TV를 물리치고 컴퓨터가 지상을 장악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뭉개버린 폰 때문에 가뜩이나 개인주의로 변한 이 시대가 가족의 공동 관심사였던 것들로부터 각각 개인의 관심사로 더 깊이 뿌리박는 것 같습니다. TV의 존재와 부재가 이제는 거의 상관 없는 시대랄까요. 제 방도 그놈은 없고 책상에 컴과 라이브 시스템, 좌우, 뒤로는 책장이 병풍처럼 서 있습니다.

신영애 2019-10-17 15:40	《Re》임정수 작가님 , 저의 서재에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메디언 서영춘얘기는 저도 많이 들어서인지 왠지 정겨움이 느껴지고 괜시리 웃음도 납니다. 시골동네가 의례 그렇듯이 긴 여름밤이나 여유로운 겨울이면 동네 어르신들께서 우리집에 오셔서 밤늦도록 테레비를 보시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온갖 성능이 좋은 TV가 있으니 언제 기회되면 놀이삼아 하나 들여놓고 싶은마음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신영애 2019-10-17 15:45	《Re》정찬열 작가님 , 요즘은 기능이 다양한 TV가 많이 나왔더라구요 그러나 거실에 책장을 붙박이 형태로 짜놓은거라서 TV를 다시 들이려니 책장을 뜯어내야 히는 작업이 있더라구요. 안방 천장에 달까, 주방에 달까 이런저런 의견들만 많고 아직 휴식(TV)은 우리집에 올 기미가 없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실보다는 득이 많을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웁니다.ㅎ 다녀가신 발걸음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신영애 2019-10-17 15:51	《Re》김상훈 위원장님 , 그쵸.. 요즘은 컴퓨터로 많은 것을 할수 있고 스마트폰의 성능이 워낙 좋아서 저희 가족들도 그렇게 애타게 찾지않는듯 합니다.ㅎ 가족이지만 다들 바쁘다보니 위원장님 말씀처럼 개인의 관심사가 더크게 뿌리박힌듯 합니다. 많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매일 TV를 산다,산다 하면서도 아직도 사지않는것을보면 그리 절절하게 필요하지않거나 뭔가 새로운 대체제가 자리를 차지하였음이 틀림이 없는듯요.. 감사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합니다. 건강하시고 늘 좋은날 되세요~^^

김상화 2019-10-17 23:51	오랜만에 재미있는 글을 읽어봅니다 어쩜 친정과 시집을 절묘하게 묘사하셨는지요 읽으면서 입가엔 엷은 미소가 피어있었답니다 신영애 작가님 친정 아버님이 매우 낭만적인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집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바보상자를 지금까지 없다고 하니 대단하십니다 바보상자도 때로는 재미가 있습니다 스포츠 중계라든가 재미있는 사극 드라마는 역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신영애 작가님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매우 큽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신영해 작가님!!

신영애 2019-10-18 09:44	《Re》김상화 작가님 , 왠지 친오빠같으신 친근함이 느껴지십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저 제가 겪어보고 나서야 부모님의 수고로움을 조금 이해하게 되니 저는 참으로 불효한 자식인듯하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어릴때는 그게 사랑인줄 몰랐는데 이만큼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저는 멋진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 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특히 친정 아버지의 멋스러움은 제가 두고두고 아버지를 생각할때마다 눈물과 함께 다가오는 그리움이 됩니다. 남편에게 휴식이라도 주고싶은마음인데 정작 당사자는 휴식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그리 간절하지 않은지 아직 TV를 들여놓지 않았네요..ㅎ 다녀가신 발걸음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

박목철

2019-12-07 10:51

올리신 글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14인치 칼라 TV를 처음 들이던 날이 어제 같이 생생합니다.
TV문학관이란 프로인데, -삼포 가는 길-이란 영화였습니다.
그때의 인상이 아주 오래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TV시청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큐나 여행기 등 프로를 즐겨 본답니다.
늘 행복하시고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신영애	박목철 감사님께서 자녀가셨군요.. 고맙습니다. 칼라TV를 들이던때 그 화려한 색감에 신기해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2/7 19:36

전병일 2020-01-02 13:17	작가님 안녕하세요. 2020 경자년 새해 첫업무시작입니다 경자년 새해 소원하시는“일” 모두이루시고 건강하시고 행복이 넘처나는 나날 되세요.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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