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선희
ㆍ작성일	2018-03-07 15:50

ㆍIP: 182.xxx.139

소설/ 딸의 고통

-단편 소설-

1960년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남녀 차별에 먹고 살기조차 힘겨웠던 시대가 있었다. 후대를 살고 있는 현 시대에서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선조들의 힘겨웠던 삶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20세기를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태어난 생명을 마구 다루는, 비인간적인 이야기를 가끔 접할 때가 있다. 이 이야기가 젊은이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써내려간 글이다.

-딸의 고통-

목차-

1. 어머니 출산의 고통
2. 첫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3. 어머니 출산의 기쁨
4. 두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5. 세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6. 네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1. 어머니 출산의 고통

“에이! 빌어먹을, 딸만 줄줄이 낳으니 무슨 살맛이 나겠어?….”
영재는 네 번째의 딸이 태어나자 방금 태어난 갓난아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툇마루에 앉아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며 한숨만 토해내고 있다. 한나절이 되도록 끼니도 잊은 채 눈은 쾡 해져있고 앙상하게 보이는 광대뼈가 깊게 패여 져 보이며 비쩍 마른 작은 체구가 더 수척해 보인다.
아내인 순복은 한숨만 쉬어대는 남편을 보니 억울하고 분하기만 한 생각에 순간 오기가 생기고 울분이 용솟음친다.
“여보! 나 혼자만 딸을 낳은 건 아니 잖우! 무슨 말 좀 해 보라니까요? 에휴, 나두 사는 게 지겹다 구요!….”
순복의 서러움이 치밀어 오르는 악다구니 소리였다.
세 딸들이 앞마당에서 뛰어다니다 놀라서 우르르 달려왔다.
“엄마, 어디 많이 아파요?”
“엄마, 배고파요….”
영문도 모른 체 서로 눈치를 보다 유난히도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뜬 셋째 딸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순복은 셋째 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눈을 떠 보이고는 한숨으로 애처로운 딸들을 바라다보고 있다.
순복은 게슴츠레 푹 꺼진 눈과 피죽도 못 먹은 핏기 없는 얼굴로 웃음마저 사라지고 있는 세월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딸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용기를 내어 살아내고 있었다.
허리가 잘록하다 못해 부러지기라도 할 것 같은 여린 몸뚱이는 산후 후유증으로 온몸에 짓눌리는 것 같고 갑자기 퉁퉁 불어난 커다란 무게같이 느껴졌다. 7월의 한여름인데도 몸이 으슬으슬 한기가 돌며 다리가 후둘 거리고 장작개비로 흠씬 두드려 맞은 듯 온몸이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
점심도 못 먹인 딸들은 검게 그을린 얼굴이 지쳐 보이는 모습에 더 이상 아랫목에 등대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순복은 문지방을 잡고 애원하듯 몸을 일으키며 당장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이제 남편 손에 미역국이라도 얻어먹긴 다 틀렸으니 흐느적거리는 몸뚱이로 부엌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천근 같이 느껴지는 몸뚱이를 엉거주춤 일으켜 기둥에 매달려있는 미역을 잡아 뜯었다.
그을린 억세진 손으로 멀건 미역국을 끓여내고 부뚜막에 차디찬 양은솥에 쌀알이 듬성한 시커먼 보리밥을 한 주걱 말아 후루룩 마시듯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엄마, 나도 미역국 먹을래요!”
딸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투정을 부린다.
“미역국 많으니까 동생들하고 어서 먹어라.”
큰딸이 고사리 같은 작디작은 손으로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두 동생들을 챙기는 사이 순복은 안방에서 늘어진 채 인기척이 없다. 남편은 밤새 들어올 생각도 않고, 딸들과의 밤은 그렇게 날이 저물어갔다.

다음날 어제 남은 미역국으로 딸들과 아침상을 물리고 아이에게 젖을 먹여 재워놓고는 큰딸에게 보라고 당부한 뒤 지게를 지고 소먹이 풀을 베러 야산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천근만근 버거운 몸은 움직일 때마다 손발이 후둘 거리고 덜덜 떨려온다. 그러나 분통 터지는 오기로 이를 악물고 지게에 철철 넘치도록 풀을 베어 밧줄로 단단하게 묶으려고 버둥댔다.
마비가 된 듯 감각도 별로 없는 손에 힘을 주어보지만 밧줄이 엉성하게 묶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산길엔 순복의 끙끙 앓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퍼져가는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휴! 에구 에구 하느님,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팔자는 어찌 살아야하누!….’
대문을 들어서는 아내가 보이자 영재는 방에서 마루로 문지방을 넘어서며 소리를 버럭 질러댄다.
“어딜 갔다 오는 게야? 애는 빽빽 우는데, 에이! 빌어먹을!”
영재는 어젯밤 밤새 마신 술 취기가 가시지 않아 번들거리는 벌건 화상의 쌍 커플은 음푹한 눈이 더욱 쾡 해 보이기까지 한다. 길고 시커멓고 찌들어 보이는 비쩍 마른 손엔 여전히 담뱃대가 들려있다.
순복은 급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는 목으로 치미는 서러움에 한풀이하듯 악을 쓰며 하염없는 눈물만이 숨통을 열어줄 뿐이었다.
“아이구! 하느님 날 잡아 가슈! 이꼴루 더는 못 살겠다구요!”
순복의 악다구니 소리 뒤에 흐느끼는 뒷모습은 강하게 떨리는 어깨가 처절하게 보였다. 고단한 세월로 살아야 함에 고추밭에 나가 고추도 따야하고 채소밭에 김도 매야하고 논에 나가 피 뽑는 일에 논매는 일까지 모든 농사일을 남편과 둘이서 해야 했다. 아이는 홀로 키워내야 하는 힘겨움으로 가부장적인 시대의 서러움을 겪으며 사는 나날들이다.
그 뒤 산후 후유증으로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희수의 탄생을 바라지 않았던 미운 딸이 되어버린 셈이다.
희수는 그렇게 60년대의 출생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인생으로 시작되었다.

2. 첫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희수가 세 살이 되던 어느 초 여름날 낮잠에서 깨어났다. 동그란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인걸 알아채자 금세 집안이 떠나가라 악을 쓰며 울어댄다. 그렇게 울고 또 울다 엄마 등에 업혀서 매일 갔었던 산 너머 논을 향해 걸어 나갔다. 아장아장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계속 소리쳐 울며 하염없이 무작정 올라가고 있었다.
“으아 앙! 엄마 아! 엄마, 엄마, 엄마.”
산골짜기엔 소나무가 무성한 산들이 이어져있고 사이엔 계단식의 다락 논과 화전 밭이 층층으로 되어있는 울퉁불퉁한 돌길로 어린아이의 걸음엔 너무도 험한 길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저만치 화전 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가 귀를 의심하며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는 분명히 이 서방네 넷째 딸로 보이는데 우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너머엔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던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눈이 휘둥그레 올려다보았다.
“에그머니나! 이를 어쩐데?”
‘저 너머엔 날이 저물면 산 짐승들이 우글거릴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다 갑자기 아주머니는 김을 매던 호미를 집어던졌다. 바지의 허리춤을 치켜 올리면서 계속 아이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숨이 차도록 정신없이 쫒아 올라갔다.
먼발치에서 산짐승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오싹하는 음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많은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쭉 뻗어있는 산속으로 깊은 산길이 이어져있다.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느덧 침침한 아주머니의 눈으론 어렴풋이 저만치 보이는 아이가 점점 작아지는 듯 멀어지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순간 아이를 놓칠세라 허겁지겁 달려갔다.
“으앙! 어 엄마! 엄마!”
“아가야! 여길 어디라구 겁두 없이 왔누! 호랭이가 물어 갈라, 어여 느그 집에 가자!”
아이는 얼마나 울었던지 벌겋게 잔뜩 경직된 얼굴에 온통 얼룩진 눈물 자국으로 뒤범벅이 되어있었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작디작은 맨발은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며 흙투성이로 아랫도리는 계집아이의 벌거숭이가 된 모습에 그 순간 아주머니는 기함을 했다.
아주머니와 마주친 아이는 순간 제 어미인 냥 와락 달려든다.
“으아 앙! 엄마! 엄마!”
더 크게 악을 쓰는 울음소리는 이미 목이 쉬어버린 채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치맛자락을 꽉 움켜진다.
“아가야, 산짐승한테 잡혀 먹힐 뻔 했구나.”
“어여 내려가자!”
아주머니는 얼른 아이를 달래서 업고 후둘 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저만치 희수의 어머니가 놀란 모습으로 마구 달려오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 구! 윤희 어머니 우리 애가 왜 여기까지 왔어요?”
“아, 애가 글쎄, 울면서 계속 올라 가 길래 나도 놀랬지 뭐유.”
“에구, 울 애기, 여길 어디라구 왔누!”
희수 어머니는 딸을 덥석 끌어안고 숨을 헐떡이며 급히 희수에게 젖을 물리고는 짐승 같은 소리로 한바탕 목 놓아 통곡을 하며 설움을 토해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는지 아주머니를 향해 눈물진 웃음을 보인다. 희수는 온통 눈물범벅이 된 채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얼룩진 얼굴이다. 엄마 품에 허겁지겁 달려들어 요기를 채우더니 어느새 반쯤 젖을 문 채로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
“윤희 어무니, 우리 애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해야 할지…, 애 잊어버린 줄 알고 울매나 놀랬는지 몰라요, 휴!….”
희수는 그렇게 세 살 때의 죽을 고비로 산짐승에게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을 보냈다.

3. 어머니 출산의 기쁨

어느덧 사 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희수가 7살이 되었다. 그해 봄에 어머니는 바라던 첫 번째 아들을 낳게 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 왔다.
2년째 되던 해에 둘째 아들을 또 낳았고 이어서 일 년 터울로 셋째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은 아버지가 산파를 부르러 간 사이 어머니 혼자서 출산하게 되었다. 아이가 거꾸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만 아이 목에서 힘을 멈추게 되어 어머니는 다 낳은 줄 알고 옆으로 옮겨 보다 기절할 뻔 했다. 이미 사망하고 말았던 긴박한 사건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애절한 사연을 아주머니들의 신세한탄과 함께 들으며 지켜보는 희수는 아들이 뭐 길래 저렇게 연연하는지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이해가 안가는 게 당연한 어린나이인 것이다. 그래도 남동생이 둘이나 태어났으니 이젠 부모님도 희수가 복덩이라 남동생들을 봤다며 보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입에 침이 튀도록 자랑을 했다.
“우리 딸이 복뎅이지 뭐유.”
“에그, 애 아부지는 그렇게 모질게 하드니….”
담장 넘어 옆집 사는 혜옥 어머니가 어머니의 손을 슬며시 잡아준다.
“어이 구! 희수 엄니 그동안 맴 고생 많았시유! 이젠 두 다리 쭉 뻗구 큰소리치며 살아유?”
보는 사람마다 혀를 차며 안쓰러워한다. 그럴 때마다 고단한 웃음이지만 같은 말의 대답이다.
“말하면 뭐 하겠어요, 이젠 일을 해도 재미있고 신이나요….”
핏기가 하나도 없는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엔 그나마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잠깐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영문도 모르는 어린 마음의 희수도 덩달아 크게 따라 웃곤 했다.
어머니는 이제 대를 잇게 되어 남편에게 기를 펴게 됐다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자식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선 먹고사는 일에 부딪히는 현실로 다시 생활전선의 고된 일상이 이어졌다.
희수는 아홉 살이 되어 남동생들을 업어주고 놀아주는 일이 일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칠남매의 자식들 입에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일이라면 거의 매일 논일과 밭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어머니는 젖먹이 아이 때문에 동네 근처에서만 허드렛일을 다녔다. 두 세 시간마다 퉁퉁 불어있는 젖가슴을 얼싸안고 허겁지겁 달려와 젖을 먹이고는 다시 급하게 일터로 나가야 하는 바쁜 일상의 날들이 거듭되었다.

4.두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희수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친구와 개울가로 미역을 감으러 나섰다. 같은 반인 민희와 윗동네에 있는 개울에 가기로 결정하고는 산길로 산딸기를 따먹으며 신나게 달려갔더니 동네 아이들이 벌써 물놀이에 첨벙거리며 놀고 있다.
“와! 물이다.”
둘은 얼굴을 마주보며 환호성을 쳤다.
“민희야! 얼른 들어가자.”
“희수야! 같이 가.”
수영 할 줄도 모르는 희수는 옷도 벗지 않은 채 물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첨벙거리며 싱글벙글 민희의 팔을 잡아끌었다. 민희는 그렇게 좋아하는 희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바탕 웃어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로 윗동네에 사는 서너 살 더 되 보이는 사내아이가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 지나가는 바람에 옆으로 비켜섰다. 희수는 그만 물살에 떠밀려서 깊은 웅덩이 쪽으로 회오리처럼 마구 떠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헉! 어 어, 엄마, 푸아! 푸아!…!”
희수의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휘저어질 때마다 점점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 희수가 물에 빠졌어요!”
함께 있던 민희가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사내아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저쪽 바위가 있는 쪽으로 한없이 앞질러 가고 있다. 휙휙 물살 가르는 소리에 이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 멀어지고 있었다.
희수는 팔 다리를 움직일수록 더 빨리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느껴졌다. 그 순간에도 팔 다리를 천천히 움직여 보는데 이젠 아예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수영을 전혀 못하니 물속에서 무작정 팔 다리를 휘두르기만 하는 건 엄청난 무리였다. 이백 미터가 넘는 물속 깊이에서 공포에 떨며 허우적대고 눈앞이 뿌옇게 보이며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다.
‘이제 죽는 구나….’
하는 생각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으로 물과의 힘겨운 투쟁은 오직 죽음의 생각밖에 아무런 생각조차 날 수도 없었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젖 먹던 힘까지 온갖 총 동원해보지만 입으로 물을 품어내며 코로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위로 떠오르려는 몸부림의 필사적인 연속은 가녀린 소녀의 처절함 이었다.
순식간의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던 그 시간은 팔다리를 움직여 보는 힘도 점점 탈진 되어감에 수면위로 튀어 오르는 한계가 지나니 고통까지 포기 할 정도로 최고 절정에 달하고 육신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마비 상태로 접어들게 될 때의 순간에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암흑 같은 지옥의 길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젠 버둥대는 힘도 지칠 대로 지치니 탈진되어가는 몸으로 휘말리는 물살에 밀려 모두가 죽음의 정지로 되어가고 있었다. 지옥으로 행하는 무서운 외로움이 스쳐감과 동시에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이 갑자기 다른 세계인 양 무지개 색깔로 보이는 순간의 아련한 기억은 최고 절정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무지개가 저렇게 아름답다니….’
몇 초의 짧은 시간 속에서 극에 달한 모든 고통을 놓아버리니 육신에서 남은 아주 잠깐의 순간이지만 아름다운 환상으로서 무지개 색깔의 빛은 신이 주는 희수의 마지막 선물이 되고 있었다. 아찔한 죽음만의 순간에서 행복한 죽음도 있을 거라는 기발한 믿음이 위기의 두뇌에서 뇌리를 스치며 고통이 환희로 바뀌는 절정의 순간이었다. 두뇌 한쪽만이 간신히 살아있는 것 같은 세포로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 나는 천국으로 가는 구나…, 저 물방울의 반짝이는 무지개 빛깔들…,아름다운 나의 선물인데….’
지옥과 천국을 넘나드는 순간을 그렇게 발버둥치는 시간 속에서 팔다리를 휘두르며 발악하는 고통의 연속은 몇 분이나 흘렀는지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난생처음 겪어본 암흑의 순간이다.
희수의 아련한 기억으로는 긴 시간의 고통과 아주 짧은 시간의 환희와 교차하는 감동을 감히 신비롭다고 생각되었던 기억을 말할 엄두도 낼 수 없었으며 마지막 순간의 선명했던 환희는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른다.
다행히도 그 사내아이의 발견으로 사내아이의 어깨가 몸에 닿는 순간 희수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잡게 되고 목숨부지의 아찔한 순간을 모면했다.
“얘가 물에 빠졌어요!”
하며 사내아이는 지칠 대로 지친 축 늘어진 희수의 몸뚱이를 버거운 표정으로 끌어안고 돌이 깔려있는 편편한 곳에 급히 눕혀놓았다.
“야! 너 괜찮니? 정신 차려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웅성거린다.
“얘가 어디 사는 애지?”
“큰일 날 뻔 했다 그치?”
윗마을에 사는 낯선 아이들이 수근 대자 민희는 놀라서 아이들을 제치고 달려와 말을 더듬기까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얘 우리 동네 살아! 저 오빠 땜에 얘가 죽을 뻔 했잖아, 얘네 엄마한테 이를꺼야!”
희수는 그렇게 죽은 시체처럼 누워 혼수상태의 잠에 빠지고 있었다.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은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아무생각도 날 기력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민희가 수선을 피우는 바람에 희수는 어렴풋이 정신을 차리며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았다. 또렷하게 올려다 보이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너무도 맑아 보인다. 어느 순간 풀렸던 팔 다리의 힘이 생기며 일어나 앉으려고 몸을 일으켜보았다.
물을 어찌나 많이 삼켰는지 펭귄을 연상케 하듯 볼록해진 배는 차츰 꺼지는 듯 했지만 의식하지 않은 채로 정신을 차리려고 몸을 흔들었다. 희수는 민희와 윗마을의 뒷산을 가기위해 눈에 힘을 주며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야! 너 괜찮아?”
민희는 놀라는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리고 다그치며 팔을 잡아끌었다.
“응, 아무렇지 않아, 너 우리 엄마한테 물에 빠진 일 이야기 하지 마?”
“그래 알았어, 약속할 게.”
희수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뱃속에서 출렁거리는 물소리가 느껴졌지만 비틀거리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아이들이 몰려서서 들여다보는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제치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나 이리저리 쏘다니다 배를 만져보니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듯 배가 푹 꺼져있다. 갑자기 허기증이 느껴지고 저만치 바위틈에 탐스럽게 달려있는 굵직한 멍석딸기가 눈에 띄었다.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자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쪽으로 마구 달렸다.

희수는 두 번째의 아찔했던 생사를 그렇게 치룬 뒤 시간만 나면 동네 앞개울로 달려 나갔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제법 넓은 한쪽 개울 장소에 자리를 잡고 비장한 결심으로 개 수영에 맹연습을 시작했다.
홀로 실전 수영을 터득하는 연약한 어린 가슴에 들개와도 같은 야심이 드리워졌던 엄청난 자아의 깨우침 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날들의 연습에서 들이켰던 개울물은 몇 리터로 계산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물을 들이키는 절규의 시간들이다.
지난 날 물에 빠졌던 기억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입으로 코로 물을 뿜어내며 팔다리를 휘젓는 희수의 몸뚱이는 떠오르는 물방울들과 전쟁을 치루 듯 수없이 그렇게 싸우며 전진하는 인생의 고통을 비장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희수는 어느덧 사년 후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드디어 개 수영의 선수로 친구들과 나란히 줄서는 영광을 얻었다. 깊은 산골로 가면 큰 길로 뻗어있는 이어지는 개울 한쪽에 바위가 층층대로 놓여있고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큰 돌로 막아놓은 깊은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삼층 바위에 올라가 다이빙까지 하는 수준급이 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천방지축 독학의 맹연습은 필사적인 승리의 기쁨과 여유로움으로 고귀한 정신력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희수는 우여곡절로 운명의 죽을 고비를 치러야했던 경험으로 성숙된 모습은 사내아이처럼 돌변해가고 있었다.
어느 봄날 쌍꺼풀이 유난히도 예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지만 병증으로 첫 돌도 치루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보상이라도 하듯 다음해에 코가 오똑한 여동생이 태어났다. 아홉 남매에서 일곱 남매로 기박한 팔자의 어머니는 자식을 둘이나 가슴에 묻어야하는 가슴앓이와 산후 후유증에 몸 고생으로 시달리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인생이었다.
희수는 남동생이 둘이나 생긴 덕분으로 학교생활도 그럭저럭 무난했지만 동생들을 돌보며 살림살이와 집안일로 몸 고생을 치러야 했다. 밤이면 허리 통증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허리도 밟아드려야 하는 임무가 떠맡겨졌고 그렇게 해야만 엄마가 잠을 잘 수 있기에 중요한 엄명의 일이었다.
세 언니들은 객지에서 공장에 다니고 언제나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건 희수의 몫이다.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일상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에 파고들었고 갈구하는 외로움의 일상에서 인내를 익힐 줄 아는 천성으로 살림꾼 역할의 듬직한 딸이 되어가고 있었다.

희수는 어느덧 미소를 많이 가진 열여섯 살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억척스런 품성으로 영어나 수학의 실력이 선두를 보였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부장적인 집안에 명문 고등학교 입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희수의 중학교 성적은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 어느 명문 K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완비된 장학금제도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소식이 전해왔다. 현재 다니는 중학교에서 서울 명문 K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이 되어있었고 그 학교에서 스카웃 제도가 있었는데 세 명의 장학금 지원으로 기회가 온 것이다.
코가 삐죽하고 처진 눈썹에 크지 않은 눈이 자상하게 보이는 덩치 좋은 담임선생님은 부모의 허락을 받기위해 삼일동안이나 희수의 집을 들락거렸다.
“희수 어머니! 고등학교는 당연히 보내시는 거죠? 이 아이의 재능이 얼마나 기특합니까!”
선생님의 설명도 들으려하지 않는 희수의 부모님이다.
“선상님! 저희는요, 기집애는 절대로 객지에 못 보냅니다! 머슴아도 아니고, 기집애는 조신하게 공장에 가서 돈 벌어갖고 시집만 잘 가믄 되는 거지, 어딜 내보내요?”
“돈도 안 드는데 왜 그렇게 반대 하시는지 저로선 이해가 안갑니다, 어머니, 희수가 얼마나 자랑스러워요, 학교에서 일등으로 공부를 잘한다고요!…”
학식이 전혀 없는 어머니의 개념으론 설명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결국 알아채고 선생님은 삼일 째 되는 날은 대문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다.
“휴! 너희 부모님 진짜 고집이 보통 아니시구나? 기회가 너무 좋은데…, 선생님 갈게.”
희수는 눈물을 훔치며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린다.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리자 어머니는 얼굴빛이 벌개 지도록 악을 쓰며 소리쳤다.
“이눔어 기집애가 무슨 공부를 한다고!, 어여 개울에 가서 걸레나 빨아와!”
희수의 지금 심정은 가출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로 더욱 크게 통곡을 멈출 수가 없다. 딸의 터질듯 한 마음을 어머니도 짐작은 하지만 지금 형편에 어쩔 수 없는 어머니는 그렇게 엄포를 해놓고 부엌에 가서 딸의 분통을 참으려 입을 막아보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볼을 타고 내려서 딱딱한 흙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딸년이 공부를 잘하면 뭐해!”
“애두 봐야 하구, 일거리가 태산인데 어딜 간다는 거여?….”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솥뚜껑을 잡은 손에 한풀이로 내동댕이치듯 힘을 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며칠 후 희수는 그렇게 학업을 포기하고 정신을 차리니 부모님과 대면하는 것조차 끔찍했다. 손발가락하나 꼼지락 거리기도 귀찮게 여겨지고 도저히 이정신으로는 집안에 붙어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낸 결과로 큰언니가 다니는 서울 방직공장에 입사하는 길만이 집에서 탈출하는 도피방법이라 생각했다.

희수는 아침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심각한척하며 어머니한테 천천히 말을 붙였다.
“엄마, 나 큰언니가 다니는 공장에 취직해서 돈이나 벌어 올게요, 공부는 그만둘 거니까 안심하구요.”
어머니는 희수의 기가 죽은 모습에 눈치를 살피며 굳어진 표정이 이내 마지못한 웃음으로 말 대신 고개를 흔들며 허락을 했다.
삼일 후 큰언니가 어머니께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급히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엄마, 얘 데려가면 기숙사에서 같은 방 쓸 거예요,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래, 큰언니 속 썩이지 말구 말 잘 듣구 잘 있어야해 알았지?”
어머니의 눈에는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이 보였지만 아닌 척 얼른 눈물을 훔쳐내며 몸을 돌렸다.
“알았어요, 엄마! 이제 잔소리 그만하세요!….”
희수는 옷가지와 속옷을 챙긴 뒤 언니를 따라 기차역전으로 갔다. 드디어 자유로운 날을 기대하던 끝에 희망을 가지고 열차에 올라탔다. 부모님과 떨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작정이었기에 월급 타는 대로 엄마 통장에 이체 시켜야 되는 조건이라도 그 당시는 그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므로 신나는 기차 행으로 달려가며 통쾌한 기분이었다.

5.세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희수는 큰언니의 소개로 서울 쪽 00섬유공장에 중요한 기술직 부서로 취직을 했다. 그런 기숙사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었다. 삼년 째의 십이월 어느 날 남들은 월급날이면서 망년회를 한다며 시끌벅적 수선스러운 날이었다. 어차피 희수의 월급은 어머니 통장으로 자동이체 되기로 했으니 월급날이 오히려 서글픈 날이다. 끝날 시간이 거의되니 사장님이 상냥한 표정으로 웃으며 들어오는 모습에 눈이 딱 마주쳤다.
“희수야, 수고가 많네? 너의 월급은 집으로 보냈다!”
희수는 불만스러운 모습으로 혼자 중얼 거린다.
‘누가 모르냐고요….’
훤칠한 키에 우렁찬 목소리와 눈웃음이 매력인 예의바른 사장님의 모습은 희수의 뒤쪽으로 다가선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오만 원을 슬쩍 밀어 넣고는 실실 웃으며 희수를 곁눈질로 쳐다보는 그 마음씨에 순간 눈물이 찔끔했다.
“사장님, 매번 감사 합니다.”
그날따라 오만 원을 만지는 순간 목으로 치미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아니다! 너도 용돈이 필요할 텐데, 더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흥얼거리며 총총 걸음으로 힘차게 문을 닫는다. 희수는 닫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홀로 남은 지독한 외로움에 치를 떤다.
“휴우!….”
순간 번쩍 떠오르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정신없이 대충 청소를 마치고 회사 맞은편에 매점으로 달려갔다.
“아줌마, 소주 하나 주세요.”
희수가 술의 도수를 고르자니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망설이자 아주머니가 얼른 권했다.
“그래, 진로로 줄까?”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구나?”
희수는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퉁명스런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을 한다.
“예, 오늘 월급날이거든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희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이다.
“와아! 희수는 좋겠다, 그런데 좋은날 네 얼굴빛이 별루인 것 같은데 뭔 일 있니?”
“아니 예요, 돈 거슬러 주세요.”
조금 전 사장님이 넣어준 돈을 한 장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자꾸만 희수의 예전과 다른 표정이 이상한 듯 눈치를 보고 있지만 모른 체 꽁무니를 빼며 다시 작업실로 달려갔다.
식당에 가서 스텐레스 국그릇을 챙겨 누가 볼세라 재빠른 희수의 뒷모습은 진지하고 비장한 순간이었다. 처음 마시는 소주 맛의 호기심과 비장한 마음은 이걸 마시는 순간 지금까지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복수로 오기가 발동하는 기발한 생각으로 ‘자살’이라는 단어였다.
‘그래, 미련 없는 세상, 자유가 없는 세상…, 끝내는 것이다!….’
결심을 하고는 갑자기 희수의 손이 다급한 손놀림으로 제정신이 아닌 절정의 순간으로 변해버렸다. 소주를 그릇에 부으니 에누리 없는 꽉 찬 한 그릇이다. 쓴 냄새가 코끝으로 퍼져왔지만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숨을 길게 내쉬며 왼손으로 코를 잡는 순간 단숨에 힘차게 삼켜버렸다.
소주가 식도로 흘러 내려가는 동안 코를 막아 냄새도 모르고 잠깐 숨도 쉬지 않는 순간이다. 냄새도 맛도 모르고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것과 같은 실감만이 느껴지며 잡았던 손을 놓고 다시 쓴 냄새를 토해내듯 길게 숨을 내쉬어 보았다.
‘일초, 이초, 삼초….’
갑자기 작업실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이더니 제자리에 있던 기계들이 폭풍을 일으키듯 빙빙 돌고 있다. 희수는 중심을 잡을 기운이 없이 휘청 거리며 두 손으로 중심이라도 잡을 듯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이번엔 위장에서 놀랐는지 구토증으로 고통을 연발하며 식도를 타고 입으로 배설되는 조금 전의 소주맛보다 더욱 쓴 역겨움에 몸부림쳐야하는 순간이 왔다.
작업실 바닥에는 내장을 휩쓸고 올라온 더러운 찌꺼기들이 누르스름한 배설물로 흥건하게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오히려 소주의 냄새보다 배설물의 냄새로 식도와 위를 더욱 꼬이게 할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더욱 참아내기 어려운 관문 이었다. 소주 때문에 토하고 배설물 때문에 토하고 그렇게 토하는 고통으로 식도의 쓰려오는 고통의 시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지고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여덟시를 넘기고 퇴근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썰렁한 작업실 안에는 소주의 취했던 정신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며 기계들은 다시 제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 했던 것이다. 희수에겐 목의 통증만을 남긴 체 비장한 자살 시도가 실패작으로 끝나고 허망함만이 바닥에 널브러져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버렸다.
이렇게 결국엔 세 번째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죽는 것도 마음과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걸 또 한 번 느끼는 경험으로 남아버렸다. 희수는 그 후 말이 없어지고 혼자 산길로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

6.네 번째의 죽을 뻔한 위기

희수가 열아홉 살이 되는 어느 초가을 코스모스가 나란히 피어있는 버스길을 걷게 되었다. 산뜻한 핑크색의 코스모스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희수의 머리를 내리치는 무언가의 생각에 멈춰 섰다. 발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기숙사를 향해 달리다시피 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기숙사 방안엔 어두움과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가을바람은 싸늘함마저 몸을 웅크리게 하고 적막함이 느껴 온다.
희수의 얼굴표정은 차츰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다시 도전해보는 오기로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큰 가방을 뒤지니 팬티스타킹이 손에 잡히는 순간 오싹해지는 기분이 짜릿한 스릴로 다가왔다. 희수는 결심을 한 듯 눈을 크게 뜨며 입은 굳게 다물고 숨을 가라앉힌 후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내쉬며 온 몸을 경직시켰다.
기발한 희수의 두뇌 회전으로 벌써 손에는 스타킹에 매듭을 지어 목에 감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스타킹을 계속 목에 칭칭 감으며 이번엔 힘으로 당기어 혈액이 얼굴로 고이기 시작하는 숨 막히는 답답함으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젠 숨이 턱에 차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번도 제대로 못 참고 그만 손에 쥔 스타킹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희수는 그 자리에 엎드린 채 크게 울부짖었다.
‘넌! 바보! 바보! 멍청아! 넌, 진작 죽을 마음이 없었잖아?’
희수는 갑자기 서러움과 원망으로 통곡이 터져 나오고 발버둥 치며 목이 쉬도록 한참을 흐느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밖에는 아무 인기척이 없다. 죽음 앞에서 실패로 거듭나는 죽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지만 현실을 실감하며 자포자기에 빠졌다.
그러다가 그 무엇에 홀린 듯 다시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 자신을 한없이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인생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선택의 시도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의 능력이라고 스스로 반성해본다.
외로움을 복수로 삼았던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소녀의 삶에 사춘기로 그렇게 지나가는 극복이 되고 있었다. 죽을 용기는 비겁함이요 사는 용기는 용감함의 위대함이다.
희수는 이십대의 젊은 인생에서 살아가는 고통으로 성숙한 여인의 성장이 되는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소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권미영

2018-03-08 15:19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옛날 우리네 모습이 그려지네요.
벽을 함께 쓰는 뒷집 현숙이네라고 있었지요.
내리 딸 셋에 네번째 딸이 태어나자
엎어놓았던 일이 문득 생각납니다.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으니~~
추억이라기보단 마마자국 같은 상흔이지요~~
아릿한 마음으로 머물러 갑니다


장선희	권미영 시인님 긴 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그 시대의 아픔을 잊을 수가 없지요 남녀평등을 외쳐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아직도 생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플때가 있습니다 줄줄이 딸로 태어나 본 딸들은 아픔의 기억이 있을겁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대라 딸들이 힘들었지요 오늘은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궂은 날씨에 바람이 차갑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시인님~^^ `	3/8 18:19

문익호

2018-03-09 00:33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오래전 이야기 같네요.
짧지만 긴 이야기가 있군요.
앞으로 차츰차츰 실력이 늘어서 멋진 소설가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장선희	문익호 시인님 하나씩 다 보아주시고 챙겨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아직 서투른 이야기지만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치고 여러 소설가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야 하는 실천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이야기에 푹 빠져보겠습니다 오늘도 건강 꼭 챙기시고 화창한 날 보내세요.	3/9 14:36

성경자

2018-03-13 00:30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소중히 올리신 글 배독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멋진 작가님~


장선희	성경자 시인님 긴글 배독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완연한 봄 날씨 따뜻한 날이 왔네요 벌써 행사날이 다가오고 기쁜 맘으로 그날 반갑게 봽겠습니다	3/9 15:03

수필/혜화동 목욕탕 가는 길

신인 소설 작가로 인사드립니다~